바비인형 65년전 탄생… 年 5800만개 팔리는 스테디셀러
바비인형 65년전 탄생… 年 5800만개 팔리는 스테디셀러 미국 여성 루스 핸들러는 1945년 남편과 함께 장난감 회사 ‘마텔’을 창업했다. 루스는 어느 날 딸이 종이 인형으로 어른 역할 놀이를 하는 것을 보고 성인 여성 모습의 인형을 구상했다. 그러다 유럽 여행 중 독일 인형 ‘릴리’를 보게 됐고, 미국으로 돌아와 딸 바버라의 이름을 따 ‘바비(Barbie)’라는 인형을 만들었다. 바비는 1959년 3월 9일 뉴욕 장난감박람회에서 첫선을 보였다. 파란 눈에 금발의 바비는 키 29㎝에 잘록한 허리와 늘씬한 몸매로 줄무늬 수영복을 입고 처음 등장했다. 아기 인형이 주류였던 시절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첫해에만 35만 개가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1초마다 3개꼴로 팔린다는 바비인형은 지금까지 150여 개국에서 10억 개 이상 판매됐다. 아이들의 새로운 장난감으로 부상한 스마트폰·태블릿PC 등 디지털 기기에 밀려 2000년 이후 매출이 감소했으나 아직도 해마다 약 5800만 개가 팔리는 스테디셀러다. 판매량만큼 논란도 많았다. 사람으로 치면 가슴 36, 허리 18, 엉덩이 33인치의 비현실적인 비율이지만, 아름다운 체형의 표준으로 간주돼 성형수술에 중독되거나 거식증 등을 앓는 증상을 일컫는 ‘바비 증후군’이란 용어까지 생겨났다. 미에 대한 기준을 왜곡한다는 비판에 마텔은 여러 인종뿐 아니라 다양한 체형과 모습의 바비를 출시했다. 통통하거나 키가 작은 바비, 보청기나 의족을 착용한 바비, 휠체어를 탄 바비도 등장했다. 바비는 성 역할의 고정관념을 깨기 위한 노력을 하며 비판을 넘어서려 했다. “당신은 무엇이든 될 수 있다(You can be anything)”는 철학으로 시대 변화에 맞춰 진화를 거듭했다. 인류가 달에 첫발을 내딛기 전인 1965년에는 우주비행사, 1973년에는 외과 의사, 1992년에는 대통령 후보 바비를 선보였다. 60년 넘게 당대 여성상을 반영하며 200여 종의 다양한 직업을 가진 바비들이 태어났다. 작년에는 바비인형을 실사화한 영화 ‘바비’가 개봉됐다. 영화는 전 세계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했고, 15억 달러(약 1조9000억 원)를 벌어들였다. 주연 배우 마고 로비가 아시아에선 유일하게 한국을 방문하며 공을 들였지만, 국내 흥행에는 실패했다. 이에 대해 바비의 페미니즘 유머가 한국 관객에겐 통하지 않았다는 해석이 있다. 일부 외신은 “한국에서는 페미니스트 꼬리표를 두려워하기 때문에 고전하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바비인형을 가지고 놀았던 추억이 있는 여성이 많지 않은 것이 큰 영향을 미쳤다고 보는 의견도 있다. 한국 여자아이들의 대표 마론인형은 바비가 아닌 국내 브랜드 미미나 쥬쥬였기에 정서적 공감대를 이루지 못했다는 것이다. 김지은 기자 kimjieun@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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