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가장 중요한 시기에 가족처럼 나를 믿어준 은사님[보고싶습니다]

  • 문화일보
  • 입력 2023-12-06 09:12
  • 업데이트 2023-12-06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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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대구여자고 2006년 졸업앨범 중 이현령 선생님의 모습.



■ 보고싶습니다 - 고2 담임 이현령 선생님

나의 고등학교 2학년은 대학 입시의 고민보다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열여덟 살의 시작이었다. 공부보다는 친구들과 놀기에 바빴다. 그 와중에도 서울에 있는 대학을 가리라 노래를 불렀으니 어찌 보면 나는 망상가에 가까웠는지 모른다. 2학년 첫 학기를 시작하는 교실. 짧은 머리에 우아한 자태, 멜란지 그레이빛 코트에 웃는 ‘둘리 엄마’를 처음 만났다. 학생들 사이에서 둘리 엄마라는 애칭으로 불린 이현령 선생님은 나의 2학년 담임이셨다. 하필 가장 흥미가 없었던 수학 선생님이셨다.

2학년 1학기 중간고사 마지막 날. 시험 시간이 문과는 3시간, 이과는 4시간이었다. 문과생이었던 나는 시험의 마지막 한 시간이 자습이라는 말에 친구들과 처음으로 ‘땡땡이’라는 시간표를 짜고 동성로로 향했다. 그 50분이 뭐라고….

그 결과, 돌아온 월요일에 우리는 쉬는 시간마다 복도에서 무릎을 꿇고 지나가는 선생님들께 한소리씩 들어야 했다. 차례대로 선생님께 혼이 나고서야 큰 잘못을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날 저녁 나는 미안한 마음을 담아 선생님을 그림으로 그리고 사과 편지를 썼다.

일주일쯤 지났을까. 하교 후 집에 왔는데 엄마가 그림을 배워서 디자인과에 진학하는 건 어떠냐고 물어보셨다. 패션디자인과 또는 의상학과에 진학하고 싶었던 터라 실기가 없어도 갈 수 있다는 생각에 처음에는 엄마의 말이 와닿지 않았다.

엄마는 오후에 담임선생님께 전화가 왔었다며, “연진이는 그림에 재능이 있는 것 같다. 그림을 시켜보는 건 어떠시냐”고 말씀하셨다고 하셨다.

그 당시 실기를 준비하는 친구들은 이미 중학생 때부터 시작했었기에 늦어도 너무 늦었다는 생각이 들었고 고민하는 시간은 길어져만 갔다. 고민 끝에 고등학교 2학년 2학기가 시작될 무렵 친한 친구가 다니는 작은 화실에 함께 다니게 되었다. 그 당시 나는 입시를 준비하기에는 한참 늦은 시기였기에 기초가 아닌 무엇부터 시작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디자인은 참 재밌었다. 나의 적성을 찾은 것이다. 즐기면서 그림을 그리다 보니 그림 대회에서 대상까지 받게 됐다. 선생님의 조언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나는 서울에서 입시 준비를 했고 대학에 진학했다.

대학생이 된 나는 늘 바빴다. 그리고 대학교 3학년이 지나던 해 슬럼프가 찾아왔다. 그때 잊고 지낸 선생님이 생각나 대구교육청에 스승 찾기를 신청했다. 한동안 연락이 닿지 않았던 선생님께 연락이 왔다. 선생님의 근황을 들을 수 있었다. 내가 고등학교 2학년 때 그려서 드린 그림을 잊지 않고 간직하고 계신다며 함께 보내주셨다.

펑펑,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내 나이는 스물여섯 살이었다. 그때 ‘은사님’이라는 단어의 뜻을 정확하게 느낄 수 있었다. 인생에서 잊지 말아야 할 감사하고 또 감사한 분이라는 것도.

한 해 두 해를 문자 너머의 글로 안부를 이어갔지만, 그 안부도 오래가지 못했다. 나는 외국으로 나가게 되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어느덧 30대 중반이 되었다. 다시 새로운 출발선에 서 있는 나를 보게 되니 선생님이 생각난다. 인생의 가장 중요한 시기에 내 가족처럼 나를 믿어준 은사님. 세월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사람 중 한 분이다. 선생님과 다시 한번 연락이 닿았으면 하는 마음이 든다. 참 많이 그립다.

배연진(서울 용산구청 주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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