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천사지 석탑’ 반환 결정적 역할, 헐버트 기고문 첫 공개

  • 문화일보
  • 입력 2018-08-09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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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일본인에 의한 경천사지 10층 석탑의 무단 반출을 비판해 석탑 반환에 기여한 1907년 4월 4일자 ‘재팬 크로니클’ 기고문의 원문 사진.(왼쪽) 개성에 있던 원래의 경천사 10층 석탑 모습. 헐버트기념사업회 제공


- 69주기 추모식 여는 ‘헐버트기념사업회’ 日서 원문 입수

111년전 ‘재팬 크로니클’紙
기고문·해설기사 함께 실어

순종 결혼식 축하사절로 온
궁내부 대신 다나카 만행 고발

개성서 현장 사진·증언 확보
국제이슈 만들며 귀환 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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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 본관에서 관람객을 맞이하는 국보 86호 ‘경천사지 10층 석탑’. 이 석탑이 대한제국 당시 일본인에 의해 무단 반출됐다가 독립유공자인 미국인 호머 헐버트(1863∼1949·사진)와 영국인 어니스트 베델(1872∼1909)의 지속적인 국내외 언론 기고로 국제문제화되며 돌아올 수 있었던 사실은 알려져 있다. 111년 전인 1907년 헐버트가 일본 고베(神戶)의 영자신문 ‘재팬 크로니클(The Japan Chronicle)’에 기고했던 ‘한국에서 일본의 만행(Vandalism in Korea)’ 원문이 처음 공개됐다. 함께 실린 신문 해설기사 ‘누가 석탑을 훔쳐갔는가?(Who Removed the Pagoda?)’는 이번에 처음 발견됐다. 헐버트박사기념사업회의 김동진 회장은 9일 “지난해 8월 일본을 방문해 기고문과 해설기사 원문을 입수했다”며 “재팬 크로니클은 1907년 4월 4일자 통신란에 헐버트의 기고문과 해설기사를 실었다. 특히 해설기사는 헐버트의 기고가 석탑 반환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일본 궁내부 대신 다나카 미스야키(田中光顯)는 1907년 1월 황태자 순종의 결혼식 축하사절로 한국에 와 개성 부소산 경천사에 있던 석탑을 무단으로 해체해 수레와 철로로 부산으로 옮긴 뒤 배로 일본으로 가져가 자기 집 뒤뜰에 세웠다. 기고문 등을 보면, 당시 베델이 발행하던 ‘코리아 데일리뉴스’(대한매일신보 영문판)에서 석탑 약탈 보도를 실었으나 일본 영자신문 ‘재팬 메일(The Japan Mail)’이 이를 부인하는 기사로 공격했다. 이에 분개한 헐버트가 개성으로 달려가 석탑 약탈 현장을 직접 확인한 뒤 재팬 크로니클에 반박문을 보낸 것이다. 개성으로 간 헐버트는 석탑 파편이 여기저기 나뒹구는 모습으로 미뤄 이 석탑이 초보자에 의해 성급하게 해체됐음을 확인했다. 인근 주민 열댓 명을 만나 자세한 실상을 파악한 결과, 총으로 무장한 80여 명의 일본인이 2월 18일에 몰려와 7∼8일 만에 석탑을 해체했다는 등의 구체적인 증언을 확보하고 현장 사진을 찍었다.

헐버트가 설명한 사건의 전후 과정을 보면, 다나카는 마지막으로 고종 황제를 알현할 때 탑을 가져가게 해주어 고맙다고 인사했다. 다나카는 사전에 을사오적 중 한 명인 친일파 대신 이지용에게 ‘고종 황제에게 탑을 달라는 청을 해달라’고 요구했고, 이지용은 ‘괜찮다’고 답해 다나카가 감사를 표한 것이다. 그러나 고종 황제는 이 석탑은 600여 년 전에 세워진 역사적 유물로 황제의 재산이 아니라 온 백성의 재산이라면서 다나카의 청을 거절했다. 그러나 다나카는 이를 무시한 채 석탑을 일본으로 가져간 뒤 고종 황제의 선물이라고 거짓했다. 헐버트는 다나카를 부추긴 이지용은 ‘일본의 앞잡이’이자 석탑 약탈의 원흉이라고 비난했다. 헐버트는 석탑 약탈은 영국 런던의 넬슨 제독 동상을 훔쳐가는 것과 같은 ‘입에 담지 못할 만행’이라며, 이것이 한국을 보호하겠다는 일본의 처신이냐고 비꼬았다.

재팬 크로니클은 해설기사에서 “헐버트 씨의 기고문과 사진 증거로 볼 때 본지는 일본이 이 문제가 논란이 되기까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없다”면서 “석탑의 약탈은 일본이 보호통치 이래 한국인들에게 자행한 어떤 행위보다도 가혹한 행위”라고 지적했다. 헐버트의 기고문과 현장 사진을 바탕으로 재팬 크로니클이 최초로 일본인의 석탑 약탈을 공식화했고, 일본 정부와 언론도 이를 부인하기 어렵게 된 것. 결국 그해 만국평화회의를 보도하던 ‘만국평화회의보’를 비롯해 ‘뉴욕 포스트’ ‘뉴욕 타임스’ 등 국제적 신문들이 이를 받아 대서특필하면서 당황한 세계 곳곳의 일본 외교관들은 물론 서울의 통감부마저 석탑 반환을 일본 정부에 요청하며 1918년에야 석탑을 돌려받을 수 있었다. 김 회장은 “헐버트가 재팬 크로니클에 보낸 현장 사진은 당시 제작 여건상 신문에는 실리지 못했다”며 “1940년 재팬 크로니클을 인수한 ‘재팬 타임스’에 이메일을 보내 당시 사진을 찾아줄 것을 요청했지만, 안타깝게도 오래전 일이어서 찾을 수 없다는 답변만 들었다”고 말했다.

한편 독립유공자인 헐버트 박사 69주기 추모식이 10일 서울 마포구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에서 열린다.

엄주엽 선임기자 ejyeob@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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