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 對 태극기 충돌은 ‘시민종교’간의 경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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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입력 2019-01-31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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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주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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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옛 중앙청 광장에서 열린 초대 이승만 대통령 취임식과 유신체제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제9대 박정희 대통령 취임식, 국회의사당 앞에서 열린 제15대 김대중 대통령 취임식 사진(왼쪽부터). 대통령 취임식의 장소와 내용의 변화로도 분열된 시민종교 진영 간의 양상을 엿볼 수 있다. 자료사진


한국 근현대사 재해석…강인철 교수 ‘시민종교의 탄생’ 등 출간

국가통합위해 세속적 神性 창안
상징·의례·제도의 총체적 개념

대통령 취임식·징병제·기념일…
사회문화 변화도 믿음따라 변천

반공국가주의 vs 민주공화주의
시민 분열에 남북대립상황 중첩
韓미래, 이데올로기 내전에 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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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한국 사회는 우표 발행을 둘러싸고 논란을 벌였다. ‘박정희 전 대통령 탄생 100주년 기념우표’와 ‘대한민국 건국 70주년 우표’에 대한 보수 단체의 제작요구를 우정사업본부에서 거부한 것. 각기 박정희·이승만 전 대통령의 사진이 들어간 두 우표는 “독재자를 미화한다”는 시민사회단체의 반발이 거셌고, ‘이승만’ 우표의 경우 정치권에서 건국절 논란으로 번졌다. 이명박 정부 때는 ‘건국 60주년 기념우표’를 발행했었다. 강인철(사진) 한신대 종교문화학과 교수는 ‘우표 정치’라고 표현한다.

한국의 종교와 사회·정치 문제를 연결하는 10여 권의 저작을 펴낸 강 교수가 이번에 ‘시민종교의 탄생’과 ‘경합하는 시민종교들’(성균관대출판부)이라는, 각각 600쪽과 700쪽에 달하는 두 권의 책을 내놓았다. 우표 발행 논란에서 보듯, 과거 사건들과 역사의 해석·전유를 둘러싼 기억투쟁 내지 기념투쟁은 ‘시민종교’(civil religion)를 재구성하는 갈등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중세에 기독교의 지배를 경험한 서구에서 나온 개념이라 낯설지만, 시민종교라는 용어는 1762년 발간된 ‘사회계약론’에서 루소가 처음 사용했다. 20세기 후반에 사회·역사·정치 등 다양한 분야로 확산, 적용된 개념이다.

강 교수는 “근대 이전의 정교(政敎)융합 시대에는 ‘국가종교’가 국가나 지배층의 성화(聖化)를 통해 사회통합과 정치적 정당화라는 역할을 수행해왔다면, ‘시민종교’는 근대적 정교분리를 통해 역사상 처음으로 등장한 ‘세속국가’의 산물”이라고 말한다. 종교의 신성을 벗은 근대국가는 ‘지배’와 ‘통합’을 위해 불가결한 ‘세속적 신성’을 창안할 수밖에 없다. 즉 사회체제의 정당화, 사회적 결속, 공동의 정치적 목표를 성취하는 데 동원되는 믿음, 상징, 의례, 제도의 총체가 시민종교이다. 이른바 ‘애국심’이란 것도 근대 시민종교의 발명품이다. 시민종교는 근대 민족국가의 지배층이 구사하는 ‘상징정치’와 관련이 깊으며, 역사적 시공간은 시민종교의 구성에 중요한 요소다. 이번 책은 바로 시민종교라는 키워드로 한국 근현대사를 재해석하는 시도이다. 강 교수는 “한국 시민종교에 대한 연구는 ‘대한민국 형성-재형성의 문화적 동학’을 파고드는 작업”이라고 말한다.

책은 중앙청 앞과 실내체육관, 국회의사당 앞을 오가며 거행된 대통령 취임식의 식순과 축가 같은 국가의례의 변화부터 징병제, 의무교육제, 포상제, 기념일 같은 사회제도는 물론 이승만과 이순신, 세종대왕으로 바뀌어온 화폐 도안, 국가기념의 상징으로 자주 이용된 우표 디자인, 시시콜콜해 보이는 ‘승리’ ‘건설’ ‘재건’ ‘새마을’ 등 담배 이름의 변화까지, 한국의 시민종교를 구성하고 지탱해온 사회문화적 인프라의 변천을 시민종교라는 렌즈로 들여다본다. ‘시민종교의 탄생’은 이론 쪽에 치중했고, ‘경합하는 시민종교들’은 한국 시민종교의 역사를 통시적으로 살핀다. 분열된 사회엔 복수의 시민종교가 나타날 수밖에 없다. ‘경합하는…’이라는 제목이 말해주듯, 분열된 한국의 시민종교 간 갈등은 책의 주요 논점이다.

한국의 근현대사는 8·15 해방부터 최근 촛불과 태극기 부대의 충돌에 이르기까지 시민종교 간 경합의 역사인 셈이다. 강 교수는 “한국은 해방 이후 식민지 엘리트 출신들이 시민종교 형성과정을 주도함으로써 취약성이 두드러졌으며, 이 취약성은 시민종교의 잦은 균열과 해체 현상으로 현실화했다”고 말한다. 그 결과 한국에선 시민종교가 사회통합의 문화적 기초로 기능하기보다, 사회분열과 대립의 기제로 작동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반공-자유민주주의’ 시민종교로 처음 등장한 한국의 시민종교는 유신체제 이후 수십 년에 걸쳐 점차 ‘반공-국가주의’와 ‘민주-공화주의’ 시민종교로 분열돼 왔다. 여기에다 분단체제를 배경으로 남한의 ‘반공-자유민주주의’와 북한의 ‘반미-사회주의(주체주의)’ 시민종교의 대립이 중첩돼 있다.

국내 최초의 방대한 시민종교 저술에 5년간 매달렸던 강 교수는 “한국 현대사는 시민종교 내 두 진영 간의 대립과 경쟁으로 점철됐으며, 유신체제와 광주항쟁 이후 격화돼 한국사회 자체가 ‘문화적-이데올로기적 내전’ 상태로 빠져들었다”면서 “한국 시민종교의 미래도 그 내전이 어디로 귀결될지에 달려있다”고 전망한다.

엄주엽 선임기자 ejyeob@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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