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문재인 경제’의 바닥 없는 추락

  • 문화일보
  • 입력 2019-12-11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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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승훈 편집국 국차장 겸 경제산업부장

재정의존 정책에 잇단 경고등
경기 분석 냉철해야 정상 정부
文정부 아전인수로 신뢰 상실

상승기 비축은 하강기 투자 밑천
‘더블딥’ 우려 官 주도 버리고
불확실성 클수록 民 활력 중요


외딴 섬에서 초식동물 개체 수가 증가하는 시기(호황)에 육식동물은 적정한 수보다 더 많이 초식동물을 먹게 된다(경기 과열). 육식동물 수가 초식동물보다 더 빠르게 늘어난다. 초식동물이 더는 늘지 않는데도(불황), 육식동물의 식욕은 절제를 모른다. 양식이 부족해지면(경기 악화) 마침내 육식동물도 줄어든다. 결국, 모두 멸종위기에 놓인다. 서로 번식 주기가 다르다는 것(경제순환)을 외면한 본능적 행동의 결과다. 독일의 저명한 수학자이자 경영 혁신가인 군터 뒤크(Gunter Dueck)의 통찰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그는 각국 정부의 정책이 재정투입 확대, 금리 인하 일변도로 흐르자 저서 ‘호모 이코노미쿠스와의 작별’(국내 번역 출간 ‘호황 vs 불황’)에서 이렇게 지적했다. 경기부양을 명분으로 빚을 내서 퍼주기에 나선 정부와 그 부작용을 육식동물에 비유했다. 생태계의 균형 유지에는 뒷짐을 진 비합리적 소비자와 비이성적 정부에 대한 신랄한 야유다. 그가 보기에 경제적 효용을 따지며 합리적으로 판단하는 호모 이코노미쿠스는 없다. 감성을 바탕에 두고 지배자의 관점과 사고방식을 따르는 국면적 본능(phasic instinct)을 쫓아 ‘먹을 수 있는 게 남아 있을 때 모조리 먹으라’는 주문만이 있다. 그래서 황폐해진 초원에는 파국뿐이다. 당시 위기를 신자유주의의 탐욕 탓으로 몰아세운 존 메이너드 케인스의 후예(Keynesian)들, 대대적인 양적 완화에 나선 정부들이 장기적으로는 또 다른 위기를 자초한다는 경고였다.

대체로 케인지언은 정부 부채를 늘리고 수요를 증가시켜 경제를 끌어올리려 한다. 재정을 늘려 일자리를 창출하고, 공공사업 프로젝트를 펼치며, 공무원을 확충해야 경제 붕괴를 막을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뒤크는 “호황기의 환상에 빠져 높은 소비 수준을 유지하기를 바라는 국민에게 정부가 조기에 개입하면 언제나 실패로 돌아간다”고 했다. 경기 상승과 함께 수준 이상의 소비를 할 때 국가는 재정을 비축해야 한다. 그게 나중에 불황이 닥쳐 사람들이 꿈에서 깨어났을 때, 경제 충격을 줄이기 위해 투자하는 밑천이 된다. 뒤크는 “정작 케인스는 국가가 이성적이기를 원했다. 경제와 개인을 이성적이라고 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호황기에는 지킬 박사가 왈츠를 추고, 불황기에는 하이드가 분노의 굿판을 벌인다는 뜻이다.

문재인 정부가 펼쳐온 일련의 소득주도성장(혹은 포용성장) 정책과 초슈퍼 예산 편성이 어떤 관점에서 실행됐고, 왜 부작용을 낳는가. 그 해답이 이미 10년 전 경고에서 확인되는 건 불행한 일이다. 기축통화국도 아니면서, 작은 외풍에도 환율과 신용등급이 들썩거리는 나라가 국가부채 비율이 선진국에 비해 낮다면서 현금 살포에 나서는 국면이 그러하다. 로버트 배로 미국 하버드대 교수는 언론 기고에서 내년 예산에 대해 “총수요를 높이기 위해 일종의 거대한 ‘케인지언 실험’을 하고 있다”며 “잘못된 분석에 근거한 것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성적인 정부라면 경기 변화를 객관적으로 판단하고, 그에 적합한 정책을 구사하는 결단과 집행력을 보여줘야 한다. 그런데 청와대나 정부가 고용, 가계소득,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등의 거시 지표들을 놓고 현실과 동떨어진 아전인수식 해석을 내놓는 것을 상기하면, 그런 신뢰는 적지 않게 무너졌다. 정부 주도 경제가 민간을 위축시키는 현상도 두드러지고 있다. 경제 주축인 ‘허리’ 연령대와 제조업 취업자가 역대급으로 줄어들고, 이를 60대의 ‘세금 일자리’가 메우는 사실만 봐도 여실히 확인된다. 현대경제연구원은 한국 경제가 바닥을 찍은 게 아니라, 오히려 다시 침체하는 ‘더블 딥(Double-dip·재침체)’ 우려도 제기하고 있다.

내년 세계 경제 전망에는 긍정과 부정이 교차한다. 미·중 무역분쟁이 어디로 갈지, 그 G2의 경제는 어떨지, 신흥국 경제는 어떤 영향을 받을지 불확실성이 증폭되고 있다. 확실한 건 과거와 같은 성장이 더는 없다는 사실이다. 장기 저성장이라는 뉴노멀 추세는 지속된다. 대외 불확실성이 클수록 민간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 것이 급선무다. 텅텅 비어가는 나라 곳간에만 의지한 정책의 종착점은 뻔하다. 미래 세대에 부담을 떠넘기는 엄청난 빚도 문제지만, 민간 영역을 침해하고 활력을 죽인다는 점에서 ‘문재인 경제’의 날개 없는 추락은 바닥이 안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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