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위기 키울 경제부총리 경박증(輕薄症)

  • 문화일보
  • 입력 2020-02-05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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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승훈 편집국 국차장 겸 경제산업부장

“우한 폐렴 실물 영향은 제한적”
개탄 넘어 경제수장 자질 의심
市場 아닌 대통령 심기 살피기

상황 誤判이 정책 오작동 자초
엉터리 자화자찬은 더욱 심각
현실 직시하고 플랜B 가동해야


공직자의 자세를 논할 때 이천 년 시공을 뛰어넘어 지금도 ‘논어’ 이인편(里仁篇)이 자주 인용된다. 자리가 없다고 걱정하지 말고, 그 자리에 설 자격을 걱정하며,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다 걱정 말고, 알아줄 만한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라(不患無位 患所以立 不患莫己知 求爲可知也). 이익이나 지위를 좇는 처신이 아니라 자질과 능력을 높이는 데 힘쓰는 게 도리라는 것이다. 코드와 연줄이 승진·영전의 기준인 세태를 보면 결코 ‘공자왈’로 흘려들을 얘기가 아니다.

경제정책의 수장인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1월 31일 ‘12월 산업활동동향’이 나온 직후 SNS에 글을 올려 생산, 투자, 소비 등의 지표 개선을 거론하며 “경기 개선의 신호가 뚜렷하게 나타나는 모습”이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우한 폐렴) 사태의 실물지표 영향은 제한적”이라고 했다. 그날은 사태의 진원지에서 우리 교민들이 우여곡절 끝에 1차 전세기로 귀국했고, 7번째 확진자가 발생한 당일이다. 대중(對中) 수출 쇼크가 발생할 경우 올해 1분기에만 경제성장률이 0.7% 감소할 것이란 전망도 나왔고, 소비 침체는 물론 공급망 붕괴로 생산 차질까지 실물경제 타격을 걱정하던 판이다. 그 시점에 경제컨트롤타워가 ‘그래도 우리는 괜찮다’ 식으로 발언한 것은 ‘경박(輕薄)하다’ 말고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눈앞의 현실보다 한 달이나 지난 시점의 지표를 앞세운 속내를 모르진 않는다. 12월 지표가 개선됐다고 해도 지난해 연간 지표는 모두 최악이었다. 거기에 지난해 성장률이 2%를 겨우 턱걸이를 했으니 올해부턴 나아질 것이란 메시지를 주고 싶었을 게다. 문재인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에서 “긍정적 지표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고 했고, 2% 성장도 ‘선방’이란 인식을 보여준 게 홍 부총리에게는 또 하나의 ‘지침’이 됐을 것이다. 그 심사를 백번 감안해도 생산 공장이 멈추고, 동네 식당을 찾는 사람의 발길조차 뚝뚝 떨어져 속이 타들어 가는 기업인과 소상공인들에겐 열불 터질 소리였다. 홍 부총리는 사흘이 지난 2월 3일에야 서울 명동을 찾아 상인들을 만나 “관광 쪽에서는 제 생각보다도 더 큰 영향을 받은 것 같다”고 시인했다. 한 상인으로부터 “아예 전멸상태다. 지난 주말에도 손님이 없었다”는 말도 들었다고 한다.

우한 폐렴이 한국경제에 미칠 영향이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피해가 발생했을 때보다 심각하다는 진단은 진즉부터 나왔다. 사스 피해가 극에 달했던 2003년 2분기 중국 경제는 전년 동기 대비 9.1% 성장에 머물렀다. 1분기보다 2%포인트 하락했는데, 3분기에는 반등했다. 그 정도로 그친 건 당시 중국의 투자나 수출이 전년 대비 각 35% 증가할 정도로 활황기였던 덕분이다. 이게 소비 위축을 상쇄하면서 피해를 줄였다. 17년이 흐른 지금, 부채 감축이 관건인 중국 상황에선 옛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더욱이 2003년 중국 국내총생산(GDP)의 전 세계 GDP 점유율이 4.3%였지만, 2019년에는 16.3%로 4배 수준이 됐다. 그러니 우한 폐렴이 사스보다 세계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더 크다. 한국의 대중(對中) 수출 비중은 2019년 압도적 1위인 25.1%로, 2003년에 비해 1.5배 수준으로 증가했다. 대중 수입의 63.9%가 중간재다. 한국이 다른 나라보다 더 치명적일 것은 불문가지다. 사태의 심각성을 경고한 보고서는 이런 팩트에 근거하고 있다. 그걸 모를 리 없을 홍 부총리의 ‘한가한 소리’가 어이없는 이유다.

우리는 자원부족국가로 개방경제를 키울 수밖에 없다. 그러니 정부는 항상 글로벌 수요와 공급망을 점검하면서 ‘플랜 B’를 마련해놓고, 돌발변수 발생 초반부터 제때에 가동해야 한다. 그게 불확실성이 상시화한 뉴노멀 시대에 정책 당국이 더욱 집중해야 할 대응법이다. 정부가 현실과 동떨어지게 진단하면 시장은 혼란스럽다. 상황 오판이 정책 오작동의 시작인 까닭이다. ‘뒷북 대응’은 그래서 나오는 비판이다. 그동안 홍 부총리는 경제지표가 나올 때마다 아전인수 해석으로 시장 불신을 자초해왔다. 이번에도 한 달 뒤 악화한 실물지표가 나와야 경제 타격을 인정할 셈인가. 그에게 진정 경제를 살린 공적이 있다면 자찬(自讚)에 앞서 시장이 먼저 알아줄 것이다. 청와대의 기류를 살피며 가볍게 내뱉고, 손뼉을 치는 게 한 나라 경제 수장의 역할은 아니지 않은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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