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참 이상한’ 文정부의 공치사

  • 문화일보
  • 입력 2020-03-23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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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승훈 편집국 국차장 겸 경제산업부장

코로나 신속검사 前정부 덕이고
환자 추적·관리도 메르스 매뉴얼
의료진 헌신과 배달 산업 큰 역할

정부 영상물은 現 리더십 칭송
국민의 美談이 지도자 功 둔갑
그래서는 방역도 통합도 요원


“이 나라 사람들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기부금을 내고, 의사와 간호사들이 달려간다. 누군가는 도시락을 만들고, 임대료를 깎아주고…. 처음이 아니다. 외환위기 시절에는 금붙이를 죄다 들고나오고, 오염된 바닷가에서 기름을 닦아냈다.” 해외문화홍보원이 공개한 4분짜리 ‘참 이상한 나라’(Korea, Wonderland?)라는 홍보영상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 시민들이 나선 사연을 엮었는데, 지난 17일 유튜브에 올라온 이후 국내외 270만 건이 넘는 조회 수를 기록하고 있다.

국민의 자발적인 헌신과 희생에 ‘한국인으로서 자부심을 느낀다’는 댓글에는 공감하고도 남았으나, 불편한 마음도 컸다. 홍보영상은 “이상한 나라를 배우자는 목소리가 나온다. 투명한 시스템과 리더십은 위기에 맞서는 민주사회의 핵심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기 때문”이라고 했다. 위기 때마다 앞장선 민초의 역사가 일순 리더십 공치사(功致辭)가 됐다. ‘83세 할머니가 빛바랜 천으로 한땀 한땀 손수 바느질로 만든 마스크 20개’가 미담처럼 소개되는 대목에서는 화가 치밀었다. 그 리더십이 초반 감염 확산 추이를 오판하지 않았다면, 그래서 정부의 수차례 판단 오류로 대란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그 수고는 덜어도 됐을 일이었다.

불편한 진실을 드러냈다고 국민의 저력이 깎이진 않는다. 성공만이 아니라 실패에서도 국력은 축적된다. 세계가 한국을 주목한 요인은 진단검사량과 속도였다. 조기에 판별하는 게 방역의 관건이어서다. 한국은 초반부터 방역 선진국보다 월등하게 많고 빨랐다. 애초 첫 확진자가 발생한 지난 1월 20일까지만 해도 판별에 꼬박 24시간이 걸리는 ‘판코로나바이러스 검사법’을 사용했다. 증폭된 유전자를 곧바로 확인하는 ‘실시간 유전자 증폭검사(RT-PCR)’ 도입이 시급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1월 말 질병관리본부를 통해 진단 시약 승인 신청을 받아 4건을 승인해줬다. 이후 2월 7일부터 새 진단키트가 사용되면서 판별시간이 6시간으로 줄었다. 그건 새롭거나 대단한 국가정책의 결과물이 아니었다. 전 정부에서 이뤄진 규제 개선 효과가 나타난 것이다.

2015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대응 실패로 뭇매를 맞자 식약처는 2016년 8월 ‘의료기기법’의 시행규칙을 개정해 ‘긴급사용승인’을 허용했다. 허가받지 못한 진단 제품을 한시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해준 제도다. 그때는 메르스와 지카바이러스 유전자검사 시약이 대상이었다. 검사 시약들의 사용은 2017년 8월로 종료됐으나 전혀 문제가 없었다. 그 사이 정식 허가 제품이 출시됐다. 선(先) 허용, 후(後) 규제였다. 진단 시약과 키트의 긴급 사용승인은 2017년 3월 발의된 의료기기법 개정안이 2018년 2월 국회를 통과되면서 정식 법제화됐다.

확진자의 동선을 추적·관리하는 정면 대응 시스템도 숱한 비판을 받으면서 마련한 ‘메르스 매뉴얼’에 따른 것이다. 검사량과 속도 향상에 일조한 드라이브 스루(drive through)는 비현실적이란 지적을 받았던 일선 의료진의 아이디어에서 시작됐다. 의료수준이 선진이라고 평가받은 것 역시, 역설적으로 의과대 쏠림이 이공계 위기를 몰고 왔다는 논란 속에 국민 의료 혜택 확대론과 의과대 정원 유지론 간 공방이 벌어지는 모순의 의료 시장 덕분이었다.

전 세계에서 벌어진 생필품 사재기가 한국만 없었던 데 대해 문재인 대통령은 “성숙한 국민 덕분”이라고 했으나, 비대면 온라인 쇼핑·배달 시장의 공을 빼놓아선 안 된다. 그들은 최근 몇 년간 수조 원의 적자를 내면서 사활을 걸고 점유율을 넓혀왔다. 그 여파로 대기업 오프라인 점포만이 아니라 전통시장과 골목 소상공인들까지 최대 위기에 봉착했다. 그게 옳고 그름, 합리와 비합리가 뒤엉키면서도 편의와 실리를 찾아가는 시장의 생리다. ‘시끄러운 민주주의’처럼 말이다.

‘그들만의 진실’로는 감염 방역도, 경제 방역도, 국민통합의 위기 극복도 할 수 없다. ‘열린 사회와 그 적들’의 칼 포퍼가 인류에게 남긴 공로는 경험으로 검증될 수 있는 것만이 과학적이라는 논리실증주의를 깬 것이다. 과학을 과학으로 만드는 것은 반증 가능성이라고 주장했다. 토론과 비판을 통해 국가는 정책 오류를 수정하고, 최선이 아니더라도 차선에 이를 수 있다. 국민이 고대하는 건 ‘이상하지 않은’ 방역 리더십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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