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립습니다>탄광처럼 학교는 사라졌지만… 그 시절 추억은 여전히 생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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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입력 2021-08-31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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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암국민학교 (1963∼1991)

1984년 12월 어느 날이었지. 초등학교 1학년 겨울, 경북 영주에서 강원 영월로 이사를 갔지. 그곳은 탄광촌이었어. 도로에는 늘 까만 먼지가 숯가루처럼 흩날렸지. 탄광촌에는 논이 없어서인지 친구들은 ‘쌀’이 벼가 아닌 쌀나무에서 자란다고 했지. 벼가 뭔지 모르는 친구들에게 놀라면서도, 시골에서 봤던 풍경을 얘기해줬지.

마을은 늘, 온통 탄빛이었지. 길에도, 산에도 탄가루가 사방으로 날아다녔어. 그래도 한겨울이면 눈이 펑펑 내려 길이든 집이든 온 세상이 하얗게 잠겼지. 겨울방학 때, 막내와 학교운동장에서 허리춤까지 닿는 눈밭을 뒹굴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해. 그리고 청군, 백군으로 나눠 운동회 하던 추억도 생생하지. 난 100m 달리기에서 늘 꼴찌였어. 달리기 상품은 주로 공책이었던 같아.

그래도 그때는 정이 있어서, 꼴찌로 들어와도 공책 한 권은 받을 수 있었지. 학교운동회는 마을운동회였어. 온 동네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김밥을 나눠 먹고 통닭을 먹었지. 학교 소풍이랑 운동회는 친구들이 늘 손꼽아 기다리던 우리만의 명절이었지.

또 어떤 날은 아버지 도시락을 막장까지 들고 간 적도 있어. 친구들과 장난삼아 안으로 조금 들어가 봤는데, 얼굴이 금세 까맣게 물들었지. 그 안에선 검은 탄가루가 일상이었겠지. 그래서 아버지 얼굴도 늘 탄빛이었나 봐.

그런데 1988년 서울올림픽 무렵인가부터 탄광이 자주 무너지곤 했어. 사택에 살던 분이 돌아가시기도 했어. 파업 현장에서 먹었던 컵라면은 아직도 쌉쌀한 추억으로 남아 있지. 막장이 자주 무너지는 건 위험한 일이라, 그 무렵 엄마 아빠는 늘 신경이 곤두서 있었던 것 같아.

연탄아궁 위엔 매일 밤 비극이 고봉밥 돼 올라갔지 /샤갈의 눈 내리는 마을은 아니어도 /푹푹 눈 나리는 탄광촌이었어/ 발파공 아빠를 둔 아이들의 발가락이/ 두툼한 솜이불 아래 꼼지락거리고 /엄마는 밤새 초조하여 양말을 깁고 있었지 /엄마 각시멧노랑나비가 더듬이를 세우면 요술처럼 새벽이 왔어/ 양말은 밤새 두툼해졌고 빨랫줄에 널린 하얀 아빠의 옷이 점점 푸른 멍으로 익어갔지 /아무도 봄을 찾는 더듬이를 생각하지 못했어 /새벽 검은 빛깔 낯선 사내가 아빠였단 걸 /그게 고둥의 살점을 파내 집으로 삼는 /고둥게의 가슴이었단 걸 안 건 한참 후였지(졸시, ‘구석기시대’ 중에서).

너무 어릴 때라 얼마나 위험한지 몰랐어. 그렇게 하나둘 마을을 떠났다고 들었어. 1991년 9월 기어코 학교는 문을 닫았지. 우리 집이 이사 나오고 2년이 채 안 된 것 같아. 몇 해 전 가족들과 ‘강원 영월군 상동읍 구례리 산1-1’을 찾아갔는데, 마을이며 학교가 아예 흔적도 없이 사라졌더라고. 그냥 온통 산이었어.

이곳에 마을과 학교가 있었는지 누가 증명해주지 않는다면 원래부터 산이었다고 믿을 거야. 함께했던 친구들, 학교운동장, 그리고 마을. 이제는 너무 그리워. 모두가 그리운 날, 이제는 시인이 된 아이가 봉암국민학교를 생각하며.

정훈교·대구시 시인보호구역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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