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을 쫓아 전세계서 몰려 든 ‘탐욕의 땅’… 번영과 공황 수차례 부침

  • 문화일보
  • 입력 2022-08-08 09:07
  • 업데이트 2022-08-08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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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 크라이슬러빌딩 등 마천루가 즐비한 미국 뉴욕 맨해튼의 야경. 오른쪽은 자유의 여신상. 게티이미지뱅크



■ 장은수의 도시와 문학- 세계의 수도 뉴욕

1차세계대전후 런던 누르고 금융 우뚝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등 마천루 도시

부르주아에 증오·이민자 향한 폭력
인종·민족·계급 투쟁의 화약고


“뉴욕에서는 모든 것을 돈으로 말한다. 농담이 아니다.”

‘호밀밭의 파수꾼’에서 J D 샐린저는 방황하는 10대 소년 홀든 콜필드의 입을 빌려서 말한다. 이 말은 작품 첫머리에 나오는 문장의 메아리다. “학비 비싼 학교일수록 사기꾼들이 들끓는 법이다. 이건 농담이 아니다.” 작품은 퇴학당한 콜필드가 진정한 삶을 찾아 사흘간 뉴욕 거리를 헤매는 과정을 담고 있다. 그러나 그가 뉴욕에서 마주친 건 집이나 학교보다 더 추악한 사회다. ‘호밀밭’은 유년의 순수를 상징한다. 콜필드는 이 꿈을 지키는 ‘파수꾼’이 되고 싶다. 그러나 그가 몸담을 곳은 ‘타락의 도시’ 뉴욕이다. 위선자를 피해 달아났더니 돈에 홀린 속물들 세상이라니, 차라리 농담이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 싶다.

‘비트 세대’의 출현을 예감하게 하는 작품답게 콜필드는 참혹한 물질주의, 젠체하는 속물주의, 공허한 정신성에 진저리친다. 이는 뉴욕의 오랜 고질병이고, 뉴욕이 주도하는 미국의 정신병이며, 미국이 지배하는 세계의 영적 질병이다. ‘이렇게 살 수밖에 없는 걸까?’ 콜필드의 실존적 불안에 세계가 공감하는 이유다. 그의 내면은 자본주의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마음의 거울이다.

작품의 배경은 1950년대 뉴욕이다. 제2차 세계대전의 승리로 미국은 패권을 잡았고, 뉴욕은 유엔 본부를 유치해 ‘세계의 수도’가 됐다. ‘뉴욕의 역사’에서 프랑수아 베유가 말하듯 “뉴욕은 천하무적”이었다. “베를린은 파괴됐고, 기력을 잃은 런던은 금융 패권을 내려놓았고, 파리는 문화적 우위를 포기했다.” 미국몽(美國夢)의 무대이자 이민자의 도시인 뉴욕은 ‘미 제국의 로마’가 돼 ‘모든 도시의 왕’ 자리에 올랐다.

뉴욕의 역사는 16세기 말 아메리칸 원주민 몇몇 부족이 허드슨강 주변, 맨해튼, 롱아일랜드 등에 정착하면서 시작된다. 1624년 네덜란드 이주민들이 맨해튼 남쪽에 작은 마을을 건설한 후 ‘뉴암스테르담’이라고 이름 붙이면서 식민의 역사가 열렸고, 1664년 영국이 이 땅을 점령하면서 도시 이름이 뉴욕으로 바뀌었다.

뉴욕은 무역상과 해적의 도시였다. 상주 영국군이 주둔하는 유일한 식민 도시라는 점을 활용해 뉴욕은 대서양 곳곳을 연결하는 허브 역할을 했다. 뇌물을 받고 대서양 해적에게 물자와 향락을 제공하고, 필요하면 적국 상선을 노략질하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암거래는 뉴욕의 일상이었다. 영국이 프랑스, 스페인과 전쟁을 치를 때도 뉴욕은 군수품 납품 등 상업적인 지원만 했다. 벤저민 프랭클린은 말했다. “뉴욕은 군대 금고에서 나오는 돈만으로 부유한 도시가 되었다.”

미국 독립전쟁의 주요 원인도 돈이었다. 1765년 인지세법이 발효돼 식민지에 막대한 세금을 부과하자 뉴욕에서 ‘자유의 아들’이 일어섰다. 이들은 절대 돈을 양보하지 않았다. 1773년 뉴욕인들은 보스턴에서 영국 차 상자를 내던지면서 반란을 일으켰다. 1776년 7월 6일, 미국 독립선언이 채택되고, 뉴욕의 군중은 조지 3세의 기마상을 쓰러뜨려 이에 호응했다.

독립전쟁 기간에 뉴욕의 장사꾼 기질은 더욱 불타올랐다. 1783년까지 영국군에 점령당한 걸 기회로 삼아 뉴욕은 보스턴, 필라델피아 등을 제치고 미국 제1의 도시로 올라섰다. 다른 도시와 영국의 교역이 막힌 틈을 타 대서양 항로를 장악한 것이다. 독립 이후 뉴욕은 수도를 워싱턴에 넘겼으나, 돈만은 굳게 틀어쥐었다. 유럽의 혼란은 늘 뉴욕의 기쁨이었다. 나폴레옹 전쟁으로 유럽이 큰 혼란에 빠지자 뉴욕의 선박들은 아시아, 대서양, 발트해, 지중해 연안으로 몰려갔다. 막대한 이윤을 챙긴 뉴욕은 드디어 촌티를 벗었다. 월트 휘트먼은 뉴욕의 번영에 언어를 바쳤다. “아, 돛대들에 둘러싸인 맨해튼보다 더 화려하고 더 근사해 보이는 곳이 또 있을까.”

부는 사람을 모은다. 1760년 1만3000명이던 맨해튼 인구는 1820년엔 12만3000명으로 불어났다. 1825년 허드슨강 상류로 이어지는 이리 운하의 개통으로 내륙 무역도 장악하면서 뉴욕의 성장과 인구집중은 가팔라진다. 드위트 클린턴은 예언했다. “이 도시는 세상의 곳간, 상업의 중심, 제조의 본거지, 거대한 경제활동의 핵심, 방대한 자본이 집중되는 곳이 되리라.” 자본주의의 궁극적 승자로 위대해질 운명을 타고난 도시 뉴욕이 비로소 실체를 얻었다.

뉴욕은 세상 어느 도시보다 열려 있었다. 누구에게나 새로운 삶을 시작할 가능성을 줬다. 환상의 도시로서 뉴욕은 전 세계인의 입에 올랐다. 특히 유럽인들은 비참한 현실과 아메리카의 꿈을 대비하면서 몽환에 빠져들었다. “내가 황금의 문 앞에 신호등을 밝혀놓았으니.” 뉴욕만 입구에 세워진 ‘자유의 여신상’이 이주자들을 ‘황금의 땅’으로 유혹했고, 일확천금을 노리는 이들이 맨해튼으로 밀려왔다. 솜씨 좋은 장사꾼들이 넘쳐나고 타고난 투기꾼들이 북적댔다.

큰 번영이 큰 어둠을 낳았다. 브로드웨이의 화려한 상점 이면에 불평등 지옥이 펼쳐졌다. 뉴욕에 와서 굶어 죽을 뻔했던 에드거 앨런 포는 “비굴함과 자기 비하가 가득한 얼굴의 행상, 자비를 구걸하려고 거리로 내몰린 거지, 장시간 노동을 마친 뒤 음울한 집을 향해 늦은 귀갓길에 오른 어린 소녀” 등을 발견했다. ‘세상의 절반은 어떻게 사는가’에서 사진작가 제이컵 리스는 이들을 ‘나머지 절반’으로 부르면서 ‘사회 개혁’을 강하게 주장했다.

절망에 빠진 백인 남성 노동자들은 부르주아에 대한 증오와 함께 소요를 일으키는 한편, 밀려드는 이민자를 향해 폭력을 행사했다. 이민자들도 이에 굳세게 맞섰다. 뉴욕은 자주 영화 ‘갱스 오브 뉴욕’에 나오는 유혈의 거리로 변했다. 자본주의와 다양성 간의 모순은 미국몽의 내용이자 그 한계다. 이는 뉴욕의 역동성과 활력의 원천이면서 인종적·민족적·계급적 투쟁의 화약고다.

제1차 세계대전 전후로, 뉴욕은 런던을 무찌르고 금융과 상업의 허브로 우뚝 섰다. 반복되는 사무실 부족과 주거 문제를 해결하려고 뉴욕은 역사상 처음으로 문화적 독창성을 발휘한다. 마천루였다. 1908년 싱어 타워에서 시작해서 울워스, 엠파이어스테이트를 거쳐 세계무역센터 빌딩으로 이어지는 초고층 건물들은 세계를 놀라게 했다. 장 폴 사르트르는 경탄했다. “마천루는 미래의 건축물이다.” 구대륙에 대한 콤플렉스에서 벗어나 뉴욕이 문명의 이정표를 제시한 순간이었다.

그러나 정신의 깊이를 물질의 높이로 대체할 순 없다. 현대의 바벨탑은 인간 소외와 정신적 공허를 낳았다. ‘필경사 바틀비’에서 허먼 멜빌은 높은 벽으로 둘러싸인 마천루의 비밀을 꿰뚫어봤다. 마천루는 문명의 미래는커녕 ‘출구 없는 벽’으로 둘러싸인 ‘죽음의 거리’였다. 절망한 바틀비는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라면서 변호사가 지시하는 모든 작업을 거부한 채 굶어 죽고 만다. 스페인 시인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 역시 이 거리를 “눈을 누렇게 만드는 유골 안치소”라고 비꼬았다.

월스트리트에는 행복이 없었다. ‘위대한 개츠비’에서 스콧 피츠제럴드는 ‘수직 도시’ 뉴욕에서 마천루를 기어오르려 하는 자는 모두 파멸하리라고 경고한다. 연인 데이지를 되찾으려고 밀주로 아득바득 돈을 모아 흥청망청하던 개츠비는 한순간 모든 걸 잃고 추락한다. 그는 이상(사랑)을 포기하지 않았으나, 돈과 쾌락으로는 좋은 삶을 이룰 수 없음을 몰랐다. 개츠비의 ‘위대한’ 삶은 진정한 행복을 위해선 ‘물질보다 위대한 것’이 필요함을 보여줬다. 마천루 역시 무너져내렸다. 1929년 ‘대공황’이 도래하자 한순간 모든 낙관이 무너졌고, 높은 공실률 탓에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은 ‘엠프티스테이트빌딩’으로 전락”해 버렸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시대의 수도가 된 뉴욕은 번영과 공황의 악순환을 두 번이나 반복한다. 1950년대의 놀라운 물질적 풍요는 1975년 뉴욕의 파산 위기로 이어졌고, 소비에트 몰락 이후 ‘역사의 종언’을 운운하던 1990년대 뉴욕의 세 번째 절정 역시 10년도 못 간다. 2001년엔 알카에다가 뉴욕을 테러해 세계무역센터 건물을 무너뜨렸고, 2008년엔 금융위기가 미국 패권에 종지부를 찍었으며, 2011년엔 ‘월가를 점령하라’ 시위가 미국의 양극화된 민낯을 드러냈다. 그러나 ‘아무도 모르는 뉴욕’에서 윌리엄 헬름라이히는 미래를 낙관한다. “뉴욕은 앞으로 오랫동안 세계 최고의 도시 중 하나로 남을 것이다. 그것이 운명이다.” 오만일까, 자신일까. 뉴욕은 과연 미국 안팎의 도전자들을 물리치고 다시 마천루의 노래를 부를 수 있을까.

문학평론가


■ 용어 설명

9·11테러
2001년 9월 11일, 알카에다 테러리스트들이 뉴욕의 세계무역센터를 공격했다. 쌍둥이로 지어진 이 마천루는 미국 자본주의의 심장이자 경제 패권의 상징이었다. 알카에다는 미국의 정치적·경제적·군사적 패권만 저격한 게 아니다. 미국의 소프트파워, 한때 전 세계인을 열광하게 했던 아메리칸드림도 송두리째 파괴했다. 세계 시민의 도시 뉴욕은 9·11을 어렵게 이겨낸 듯하나 미국 전체는 아직 9·11을 이겨내지 못한 채 휘청이는 중이다.

비트 세대
잭 케루악, 앨런 긴즈버그, 윌리엄 버로스 등 뉴욕을 중심으로 일어난 문학예술 운동을 말한다. 이들은 1950년대 전후 미국의 풍요 속에서 보수화한 기성세대의 관습과 윤리, 타락한 물질주의에 격렬하게 반발하면서 영적 구원을 갈망하던 청년들의 정신세계를 대변했다. 1960년대 이후 밥 딜런 등이 이끌었던 반문화 운동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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