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실 같은 법당, 마리아 닮은 관음상… 경계를 지운 두 ‘길상사’[장재선 선임기자의 예술 순례]

  • 문화일보
  • 입력 2022-10-18 09:01
  • 업데이트 2022-12-22 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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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서울 관악구 길상사 법당. 유백색으로 도벽(陶壁)을 꾸미고, 창은 유리문에 덧대어 나무로 만든 덧문을 달았다. 덧문에 새긴 卍 자가 햇빛을 받아 고재(古材) 마룻바닥에 卍 자 그림자를 만들었다. ‘햇빛 만다라’이다.



■ 장재선 선임기자의 예술 순례 - (6) 관악·성북구의 동명 사찰

‘현대적 미감’관악구 길상사

도자로 만든 물고기 모양 우체통
채색 없이 화엄 그려낸 불화 4점
불교의 위엄보다 매력 전달 초점

‘종교 화합’ 성북구 길상사

법정스님 부탁 받은 최종태 작가
중생 위한 감로수 정병 끌어안아
성모의 표정 닮은 보살상 만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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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불교미술은 현대에 이르러 답보 상태입니다. 우리 시대 미의식에 맞는 새 감각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어요.”

한 미술사학자가 이렇게 탄식하는 걸 최근 들었다. 그는 동국대 불교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사찰이 한국 전통미술의 본산 역할을 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학자이다. 그래서 더욱 안타까워했다. 오늘날의 불교미술이 시대에 뒤떨어져 고리타분한 느낌을 준다고.

그의 말에 어느 정도 공감을 하면서도 고개를 끄덕거리진 않았다. 전국 각 사찰에서 현대미술을 접목해 21세기 불교예술을 가꾸려는 시도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불교 전체에 아직 뚜렷하게 드러나진 않았지만, 옛 전통과 오늘의 감각을 아우르려는 노력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서울 낙성대 인근의 관악산 자락에 있는 길상사(吉祥寺)가 그 보기이다. 주택가 위쪽에 자리한 이 절은 종교 경계를 넘어 누구에게나 열린 도량이 되기를 꿈꾼다. 그 점에서 같은 이름을 지닌 서울 성북구 길상사의 지향과 같다.

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길상사 마당의 도자 벽화. 변승훈 도예가 작품으로, 생로병사를 상징하는 보리수나무 네 그루가 미륵불에게 절을 하는 모습이다. 3층 석탑이 함께하고 있으며, 관악산 자락의 싸리나무 숲이 벗을 하고 있다.


◇불교 위엄보다 매력을 전하는 사찰 = 관악구 길상사는 겉보기에 다가구주택처럼 보인다. 석재로 된 모자이크 축대에 현판이 있어서 절집임을 알 수 있다. 현판 밑에 우체통이 있는데, 도자로 만든 물고기 모양이다. 목어(木魚)가 아닌 도어(陶魚)인 셈이다. 도예에서 일가를 이룬 변승훈 작가의 작품이다. 그 옆에 철재로 낮게 만든 출입문이 있다. 보리수 가지를 卍 자로 구부린 문양 사이로 바람이 드나든다. ‘해탈(解脫)’이라는 이름을 지닌 이 문은 금속공예가 최태훈이 만들었다.

해탈문을 지나 계단을 오르면 마당이 나온다. 관악산 싸리나무 숲이 울타리처럼 둘러서 있다. 그 숲 바로 앞에 도자로 제작한 대형 벽화가 있다. 역시 변 작가의 작품으로, 보리수나무 네 그루가 미륵불을 향해 머리 숙여 예경(禮敬)을 드리는 모습이다. 나무 네 그루는 4계절과 생로병사(生老病死)를 상징한다. 미륵불은 몸을 약간 왼쪽으로 돌린 모양이다. 한쪽 무릎을 세우고 그 위에 턱을 괸 손의 팔꿈치를 올려놨다. 석불암 감실의 미륵불에게서 선을 빌려 왔다니, 새로운 모습을 만들되 옛것을 버리지 않으려는 마음을 짐작할 수 있다.

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성북구 길상사의 관세음보살상. 최종태 작가의 작품으로, 성모상의 모습을 아우름으로써 종교 간 화해를 지향한다. 장재선 선임기자


이 사찰은 1982년 비구니 묘행(83) 스님이 창건했다. 지금처럼 미술관을 닮은 사찰로 가꾼 것은 묘행 제자인 정위(67) 스님이다.

“우리 불교에 이판(理判)과 사판(事判)이 있잖아요. 저를 예판(藝判)이라고 부르더군요, 호호.”

정위 스님은 현대인에게 맞는 사찰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지를 고민했고, 은사 스님의 허락을 받은 후 미술 작가들을 초청해 절집을 새로 꾸몄다. 수십 년간 전국 골동품상을 다니며 모았던 대청마루, 대문, 목어 등을 현대적 건물 곳곳에 배치함으로써 어울림의 미학을 만들어냈다.

건물로 들어가는 입구의 ‘불이문(不二門)’도 해탈문처럼 철재로 안이 훤히 보이게 만들었다. 3층 법당으로 오르는 계단의 난간은 석고붕대로 감싸 스테인리스스틸의 차가운 느낌을 없앴다. 변 작가는 그 질감에 맞추기 위해 화강석 판재로 된 계단을 들어내고 테라코타로 제작한 타일을 다시 깔았다.

“저희 절은 돈이 없었는데요, 변 작가 부부께서 헌신적으로 애써줘서 지금의 모양을 갖출 수 있었지요.”

정위 스님은 1990년대 초반에 변 작가의 도자 작품에 매혹돼 작가를 찾아갔던 것을 되돌아봤다. 그때 변 작가의 반려자인 갤러리스트 양정원 씨도 만나 도반(道伴)이 됐다. 세 사람은 ‘100년 후에도 사람들의 일상과 함께할 수 있는 사찰’을 꾸미기로 의기투합했다.

“그런 꿈을 함께 꿨던 때가 화양연화(花樣年華)였지요. 발원자와 예술가는 대부분 다투는데, 한 번도 얼굴 붉히는 일이 없었어요.”

양 씨의 안내에 따라 올라가 본 법당은 나무 문을 열고 들어가게 돼 있었다. 나무에 새긴 卍 자 문양은 법륜(法輪)을 뜻한다고 했다. 문을 지나니 한옥 고재(古材)로 만든 마루가 눈에 들어왔다.

“목수들이 저예산으론 못 하겠다고 해서 변 작가가 모든 것을 직접 했지요. 아르바이트 학생들과 함께 고재의 얼룩을 그라인더로 일일이 닦아냈습니다. 이곳저곳에서 뜯어온 고재의 크기와 두께가 다르니 그걸 맞추는 작업도 시간이 꽤 걸렸지요.”

여느 사찰의 법당과 달리 대형 불상이나 후불탱화가 없다. 작은 목불 14개와 금불 1개를 3단계로 배치하고, 화엄(華嚴)을 추상적으로 표현한 도자 벽화에 광배를 담았다. 벽에 걸린 불화 4점은 화려한 채색을 배제하고 선묘(線描)로만 이뤄져 있다. 속리산 법주사의 불상을 디자인했던 정병국 작가의 작품이다. 천장은 하얀색으로 칠했는데, 살구빛 등(燈)이 매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움푹 들어간 공간에 자리해서 정돈된 느낌을 줬다. 정병(淨甁)을 들고 극락조를 타고 가는 보살 조각은 갈색 톤의 전체 분위기와 어울렸다.

이 사찰을 둘러보며 불교의 위엄보다는 그 매력을 전하기 위해 애썼다는 것을 뚜렷이 느낄 수 있었다. 정위 스님은 “천주교 수녀님들이 우리 절에 많이 놀러온다”고 자랑했다. 기실 그가 평생의 도반으로 여기는 변 작가 부부도 천주교 세례를 받은 신자이다. 양 씨는 “사찰에서 작업을 하며 부처님 말씀이 좋아져서 우리 부부는 천불교 신자가 됐다”며 웃었다.

◇종교 화해를 꿈꾸는 ‘마리아관음상’ = 양 씨 이야기를 들으니, 산책 길에 자주 들르는 성북구 길상사의 관세음보살상이 떠올랐다. 최종태(91) 작가가 지난 2000년에 제작한 관세음보살상이야말로 ‘천불교’의 미감을 대표하기 때문이다.

이 석상은 사찰 입구의 일주문과 가까운 설법전 앞에 자리하고 있다. 중생의 목을 축이기 위한 감로수 정병을 왼손으로 감싸 안아 가슴에 품은 모습이다. 오른손은 바닥을 밖으로 하여 어깨높이까지 올린 시무외인(施無畏印)을 하고 있다. 무릇 중생의 두려움을 없애주려는 손 모양이다. 분명히 불교의 관음상인데 표정에 천주교의 성모 마리아상 분위기가 스며 있다. 겉옷의 선과 대좌(臺座) 모양도 성모상과 가깝다. 가톨릭미술가협회장을 지낼 정도로 독실한 천주교 신자인 최 작가가 종교 간 화해를 의도했기 때문이다.

알려진 것처럼, 이 사찰은 요정 대원각 자리에 세워졌다. 젊은 시절 백석 시인으로부터 자야(子夜)라는 아명(雅名)으로 불렸던 여인 김영한(1916~1999)이 대원각 주인이었다. 법정(1932~2010) 스님의 책 ‘무소유’를 읽고 감명받은 김 여사는 스님을 만난 뒤 당시 시가 1000억 원이 넘는 대원각을 시주하겠다고 밝혔다. 법정 스님은 사양했으나 김 여사가 거듭 청하자 그 뜻을 받아들여 1997년 길상사를 창건하고 법회를 열었다. 시주를 한 공덕주는 그 자리에서 단 두어 마디 말을 했다. “저는 죄 많은 여자입니다만… 불교를 잘 모릅니다만… 저기 보이는 저 팔각정은 여인들이 옷을 갈아입는 곳이었습니다. 저의 소원은 저곳에서 맑고 장엄한 범종 소리가 울려 퍼지는 것입니다.”

몇 년 후 최 작가에게 관세음보살상을 만들어 달라고 청한 이가 법정 스님이었다. 최 작가에게 전화로 당시 상황을 물어봤더니 이렇게 되돌아봤다.

“내가 평소 자주 만나던 김수환 추기경(1922~2009)께 언젠가는 관음상을 만들 터인데 천주교에서 쫓아낼 것이냐고 여쭌 적이 있어요. 추기경께서 웃으며 그럴 리 없다고 하셨는데, 그 이야기가 법정 스님에게 들어간 모양이에요.”

최 작가는 관음상이 성모상을 닮았다는 걸 법정 스님이 한눈에 알아봤을 텐데도 아무 말도 하지 않더라고 했다. 김 추기경과 가까이 지내며 종교 간 화합을 실천했던 법정이니 도심 사찰에 ‘마리아관음상’이 생긴 것을 외려 반갑게 여겼을 것이다.

최 작가는 법정 스님이 세상을 떠난 후 관음상이 쓸쓸하게 보인다고 했다. 그의 말을 듣고 보니, 그런 듯도 싶다.

그는 길상사를 찾는 사람들이 관음상 앞에 서면 잠깐 생각해주길 바란다고 했다. 종교 때문에 사람 사이가 가로막히면 안 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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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위스님이 말하는 평안
20년 넘게 문화공간 운영… “정성껏 만든 것엔 행복 느껴져”


“제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늘 감사히 여깁니다. 그런데 사람들과 30㎝ 거리는 둡니다. 저답게 살고 싶어서지요.”

정위(오른쪽 사진) 스님은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는 비결을 이렇게 말했다. 그는 은사인 묘행 스님의 넉넉한 태도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고 했다.

“스승께서 제 법명을 정신 정(精), 클 위(偉)로 지어주셨어요. 이름이 커요. 제가 하도 쪼잔하니까 그러셨을 거예요, 하하.”

정위 스님은 길상사 지하에서 20년 넘게 ‘지대방’을 꾸려왔다. 목공예, 옹기, 도예, 자수 등 각종 전시를 하고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는 문화예술 공간이다. 스님은 50여 차례 전시를 기획해 실행하고, 자신의 자수 작품 40여 점을 수록한 저서를 펴냈다. 잡지사 기자가 그를 인터뷰해서 음식 책을 출간한 적도 있다. 최근 유튜브 방송 ‘정위 스님의 채소 한끼’를 시작했다. 그는 종교든, 문화예술이든 일상 안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믿는다. “누군가 정성껏 만든 단지 뚜껑 하나만 봐도 행복을 느낍니다. 만물이 다 아름답지요.”

스님과 교우해 온 갤러리스트 양정원(왼쪽) 씨는 “사찰 작업을 도우며 정위 스님을 통해 접한 부처님 말씀이 일상의 평안 유지에 큰 도움이 된다”고 했다. 예컨대, 부부 관계에서도 분노가 치밀 때가 있지만, 예술가 남편의 순수함을 생각하며 금세 가라앉힐 수 있다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있는 실존적 한계를 인정하면 마음의 평화를 지킬 수 있을 듯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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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p - ‘길상’의 의미

대한불교조계종에 등록된 ‘길상사(吉祥寺)’는 13개이다. 등록이 안 된 동명의 사찰이 전국에 훨씬 많다고 한다. 관악산 길상사(사진) 측은 “같은 이름의 절집이 많다는 걸 알았지만, 뜻이 참 좋아서 정했다”고 했다.

성북구 길상사는 홈페이지를 통해 “처음엔 대법사였는데, 나중에 이름을 바꿨다”며 “1997년 창건 법회 때 법정 스님이 공덕주 김영한 여사에게 ‘길상화(吉祥華)’라는 법명을 줬다”고 했다.

길상(吉祥)은 ‘길사유상(吉事有祥)’의 줄임말이다. 부귀와 행복 등 인간이 현실에서 이뤄지길 바라는 것들을 뜻한다. 사찰에서 이 단어를 귀히 여기는 것은 성불(成佛), 즉 깨달음을 통해 번뇌로부터 벗어나 부처가 되기를 소망하기 때문이다.
장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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