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 ‘비운의 복서’ 김득구 뇌사… 모친 · 심판도 뒤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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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입력 2022-11-14 09:03
업데이트 2022-11-14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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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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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1982년 11월 14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WBA 라이트급 타이틀전에서 미국의 레이 맨시니(왼쪽)의 강한 오른손 스트레이트를 맞은 김득구가 바닥에 쓰러져 있다. AP 연합뉴스



■ 역사 속의 This week

1982년 11월 14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WBA 라이트급 타이틀매치에 두 선수가 링 위에 올랐다. 떠오르는 미국의 복싱영웅 레이 맨시니는 24승(19KO) 1패, 무명의 도전자 김득구는 17승(8KO) 1무 1패의 전적으로 맨시니의 압도적인 우세가 예상됐다.

1회 공이 울리자 무섭게 상대를 밀어붙이며 의외로 강하게 치고 나오는 도전자의 불같은 투지에 관중들은 술렁이기 시작했다. 한 치의 물러섬이 없이 9회까지 대등한 경기를 펼친 김득구는 이후 체력이 떨어지며 다리에 힘이 풀렸고 몸놀림도 둔해졌다. 투혼을 발휘해 13라운드까지 버티던 그는 14회에 강력한 라이트 스트레이트에 턱을 맞고 쓰러졌다.

심판의 카운트 소리에 로프를 붙잡고 간신히 몸을 일으켰지만 의식을 잃고 다시 쓰러지고 말았다. 뇌수술을 받았으나 뇌사상태에 빠져 결국 나흘 뒤인 11월 18일 어머니가 산소 호흡기를 떼는 것에 동의해 장기를 기증하고 숨을 거뒀다. “패하면 걸어서 링을 내려오지 않겠다”던 그의 각오는 슬픈 현실이 돼버렸다. 비극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어머니는 가난 때문에 아들이 죽었다며 3개월 뒤 아들의 뒤를 따라갔고, 주심을 맡았던 리처드 그린도 경기를 중단시키지 않아 죽음에 이르게 했다고 자책하다 7개월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두 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내다 14세 때 무작정 상경해 구두닦이, 껌팔이 등을 전전한 그에게 권투는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였다. “나에겐 최후까지 싸울 용기와 의지가 있다”는 글을 일기장에 쓰고 챔피언의 꿈을 좇은 27세 헝그리 복서의 죽음은 많은 사람을 울렸다.

언론은 연일 복싱의 위험성을 지적했고 미 하원에서는 이 문제로 청문회까지 열렸다. 이후 세계 복싱계는 15회 경기를 12회로 줄이고 스탠딩 다운제를 도입하는 등 선수 보호 대책을 마련했다.

‘붐붐’이라 불리며 당시 최고 인기를 누리던 맨시니는 큰 충격으로 깊은 슬럼프에 빠져 결국 복싱을 그만뒀다. 오랜 세월 죄책감에 시달리다 2011년 김득구의 약혼녀와 아들을 만나 서로를 위로했다. 유복자 아들은 잘 자라 치과의사가 돼 있었다.

비운의 복서 김득구가 세상을 떠난 지 올해로 40년이 됐다. 맨시니는 “그는 챔피언의 마음을 가진 대단한 전사(戰士)였다”고 회고했다. 김득구의 이야기가 2002년 영화 ‘챔피언’으로 만들어져 개봉했을 때 맨시니는 한국을 방문했다. “만약 그를 다시 만나게 된다면…무슨 말이 필요할까요. 그저 서로를 안아주고 싶습니다.”

김지은 기자 kimjieun@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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