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1년 아문센 탐험대, 인류 최초로 남극점에 도달[역사 속의 This we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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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입력 2022-12-12 09:10
업데이트 2022-12-22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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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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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1911년 12월 14일 인류 최초로 남극점에 도달한 로알 아문센 탐험대가 남극점에 꽂은 노르웨이 국기를 바라보고 있다. 왼쪽부터 아문센, 헬메르 한센, 스베레 하셀, 오스카르 비스팅. 자료사진



■ 역사 속의 This week

1910년 8월 9일 노르웨이 탐험가 로알 아문센(1872∼1928)의 프람호가 힘차게 출항했다. 원래 목적지는 북극이었지만 미국의 로버트 피어리가 북극점을 정복했다는 소식을 들은 아문센은 목표를 미지의 땅 남극으로 비밀리에 변경했다. 바다 한가운데서 대원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뱃머리를 돌렸다. 이미 남극을 향해 가고 있던 영국 탐험가 로버트 스콧과의 경쟁은 그렇게 시작됐다.

일찍이 북극항로를 개척하며 북극을 경험한 아문센은 그때 만났던 이누이트(에스키모)족으로부터 극지에서의 생존방법을 터득했다. 그는 보온성이 뛰어난 순록 가죽으로 만든 털옷을 준비하고 이동 수단으로 추위에 강한 개들이 끄는 썰매와 스키를 선택했다. 그래서 대원을 선발할 때 세계 개썰매선수권대회와 스키대회 우승자도 뽑았다.

아문센 탐험대는 장비와 물품 등을 썰매견들에게 맡겨 체력을 비축할 수 있었는데 불필요한 물건은 과감히 버려 무게를 최소화했다. 식량도 현지화의 원칙에 따랐다. 페미컨(고기를 말린 뒤 과실, 지방을 섞어 빵처럼 굳힌 것) 같은 극지방의 전통적인 보존식품으로 채우고 바다표범을 사냥해서 보충했다. 또 일정 간격으로 깃발을 높게 설치해 멀리서도 지나간 위치를 알아볼 수 있도록 하는 치밀함을 보였는데 이는 돌아오는 길에 결정적인 도움이 됐다.

반면 스콧 탐험대는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 영국제 최고급 모직 방한복은 남극 추위에 제 역할을 하지 못했고, 주된 식량인 통조림도 얼어서 터지기 일쑤였다. 최신식 장비인 설상차는 혹한에 고장 나 제대로 써먹지도 못했을 뿐 아니라 짐을 실은 만주산 조랑말도 얼어 죽는 바람에 결국 대원들이 썰매를 끌어야 했다. 앞서 조랑말을 이용해 남극 탐험에 실패한 영국 탐험가 어니스트 섀클턴의 사례를 답습한 결과였다.

천신만고 끝에 스콧 탐험대는 남극점에 도착했지만, 눈앞에는 노르웨이 국기가 펄럭이고 있었다. 한 달 전인 1911년 12월 14일 아문센 탐험대가 남극에 상륙한 지 11개월, 베이스캠프를 떠난 지 55일 만에 먼저 남극점을 밟은 것이다. 아문센은 대원들과 무사히 귀환했지만, 돌아오는 길에 악천후까지 만난 스콧과 대원 4명은 연료와 식량 부족, 동상 등으로 모두 목숨을 잃고 말았다.

인류 최초로 남극점을 정복한 아문센은 철저한 준비로 성공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승리는 준비된 자에게 찾아오며 사람들은 이를 행운이라 부른다. 패배는 미리 준비하지 않은 자에게 찾아오며 사람들은 이를 불운이라 부른다.”

김지은 기자 kimjieun@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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