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戰 기적같이 공이 내앞으로 왔다… 주변서 ‘될놈될’이라네요”[M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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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입력 2022-12-23 09:14
업데이트 2022-12-23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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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2022 카타르월드컵 축구 국가대표 수비수 김영권이 지난 15일 문화일보를 방문, 인터뷰에 앞서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영권은 H조 포르투갈과의 3차전에서 동점골을 넣으며 짜릿한 역전승의 발판을 놓았다. 문호남 기자



■ M 인터뷰
- 카타르월드컵 16강 견인 축구대표팀 수비수 김영권

천금의 동점골로 분위기 바꿔
우린 서로 믿고 좋은결과 얻어

강팀 맞추기에 급급했던 한국
이번 대회선 ‘우리 축구’ 펼쳐

흥민이 안와골절 수술전 연락
이대로 끝낼수 없단 마음 느껴

학창시절 아버지 사업 기울어
버려진 축구화 수선해 신기도

이제 남은건 아시안컵 우승
선수로서 유종의 미 거둘 것



김영권(32·울산 현대)은 2022 카타르월드컵에서 다시 한 번 ‘기적’을 연출했다. 지난 3일(한국시간) 카타르 알라이얀의 에듀케이션시티 스타디움에서 열린 포르투갈과의 H조 조별리그 3차전에서 0-1로 뒤진 전반 27분 동점골을 넣었다. 김영권의 득점에 기세가 오른 한국은 포르투갈에 2-1 역전승을 거두고 12년 만에 월드컵 16강에 진출했다. 그런데 김영권의 기적은 처음이 아니다. 4년 전 2018 러시아월드컵 F조 조별리그 3차전에선 독일을 상대로 선제 결승골을 터트리며 2-0 승리를 이끌었다. 포르투갈은 자국 역대 최강 전력, 그리고 독일은 당시 디펜딩챔피언이자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1위였기에 한국의 승리를 기적, 김영권을 ‘기적의 사나이’로 비유하고 있다.

지난 15일 문화일보를 방문한 김영권을 만났다. 김영권은 “포르투갈을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었다. 하지만 우리 모두 자신감도 넘쳤다. 확률은 떨어졌으나 우리는 서로를 믿었고 좋은 결과를 얻었다”고 말했다.

당시 김영권은 권경원(감바 오사카)과 함께 중앙 수비에서 호흡을 맞췄다. 1, 2차전 파트너 김민재(SSC 나폴리)는 오른쪽 종아리 근육 부상으로 결장했다. 그러나 수비는 여전히 탄탄했다. 김영권은 “민재와 계속 파트너를 했으나 우리 중앙 수비수들은 항상 같이 이야기하고 준비를 했다”며 “누가 들어갈지 모르는 상황을 대비했기에 포르투갈전에서 민재의 공백이 느껴지지 않았고 경원이와 호흡도 좋았다”고 설명했다.

올 한 해 김영권에겐 승운(勝運)이 따랐다. 올 시즌을 앞두고 일본 J리그 감바 오사카에서 K리그 울산 현대로 이적한 김영권은 안정된 수비로 울산을 17년 만의 우승으로 이끌었다. 그리고 카타르월드컵 포르투갈전에선 동점골로 승리 발판을 마련했다. 전반 27분 이강인(마요르카)이 왼쪽에서 올린 코너킥이 포르투갈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무소속)의 등에 맞은 후 김영권 앞으로 떨어졌고, 김영권은 왼발 발리슛으로 골망을 흔들었다. 4년 전 러시아월드컵 독일과의 조별리그 3차전 골도 상황이 비슷했다. “운이 좋았던 게 사실이다. 공이 오는 게 보였는데, 골키퍼와 매우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빨리 슈팅을 해야 한다고 판단하고 넘어지면서 발을 뻗었다. 특별한 감정보다 ‘운이 좋았다’는 생각이다.” 이런 그에게 김진수가 “형은 ‘될놈될’”이라고 농담을 했다고 한다. ‘될놈될’이란 ‘될 놈은 된다’라는 뜻이라나.

김영권에게도 위기는 있었다. 가나와의 2차전에서 코너킥 기회를 주지 않고 경기를 종료한 주심의 판정에 강하게 항의, 경고를 받을 뻔했다. 김영권은 이미 후반전에 한 차례 옐로카드를 받았기에 한 장을 더 받으면 퇴장 처리돼 포르투갈과의 3차전에 출전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파울루 벤투 축구대표팀 감독이 더 강한 항의로 주심의 시선을 돌린 후 레드카드를 받았다. 결국 포르투갈전 출전정지 징계는 벤투 감독의 몫이 됐다. “가나전은 우리에게 너무 아쉬운 경기였다. 코너킥 기회를 주지 않고 우리의 패배를 선언했기에 너무 화가 났다. 감독님께서 레드카드를 받은 것도 사실 의문이다.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많은 경기였다.” 하지만 벤투 감독의 빠른 판단 덕분에 김영권은 포르투갈전에 출전, 16강 진출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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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축구에 2차례 기적을 남긴 김영권이지만 학창 시절엔 축구를 그만둘 뻔했다. 전주 해성중 재학 시절 아버지의 사업이 어려워진 탓에 축구를 포기할 뻔했고, 전주공고 재학 시절엔 주말에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었다. “고 3 때 3개월 동안 주말 내내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다. 외박이 주어졌으나 부천에 있는 집까지 가기엔 멀었다. 생활비가 필요했기에 단기간 일할 수 있는 곳을 찾았고, 막노동이라고 하는 인력공사 현장밖에 없었다. 그렇게 돈을 벌어서 축구화를 샀다. 때론 돈이 없어서 다른 사람이 버린 축구화를 수선해서 신기도 했다.” 그런데도 축구를 포기하지 않은 김영권은 전주대를 거쳐 2010년 일본 J리그 FC 도쿄에 입단했고 지속 성장했다.

카타르월드컵에선 수많은 선수가 몸을 아끼지 않았다. 주장 손흥민(토트넘 홋스퍼)은 안와골절로 수술대에 올랐으나 위험을 무릅쓰고 출전했다. 김민재는 우루과이전에서 종아리 근육을 다쳤음에도 포기하지 않았다. “흥민이가 수술받기 직전 연락을 했다. 무엇보다 흥민이의 건강이 걱정됐다. 시력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는 위험한 부상이었다. 사실 누구에게나 몸이 먼저 아닌가. 하지만 모든 선수가 월드컵을 쉽게 끝내고 싶지 않은 마음, 그리고 허무하게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했기에 몸을 생각하기보다 아끼지 않으면서 투혼을 펼친 것 같다.”

2010년 8월 나이지리아를 상대로 A매치에 데뷔한 김영권은 2014 브라질월드컵, 러시아월드컵, 카타르월드컵까지 3회 연속 월드컵에 출전했다. 그리고 3번째 도전 끝에 16강 고지를 밟았다. 3차례 월드컵에서 10경기 전부에서 풀타임을 소화한 김영권은 그동안 한국 축구의 변화를 몸소 겪었다. “월드컵 조별리그의 모든 국가가 우리보다 강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브라질, 러시아월드컵에선 상대에게 맞추기에 바빴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상대를 신경 쓰긴 했지만 우리의 플레이에 더 중점을 두고 준비했다. 우리가 하고자 하는 것을 명확하게 인식하고 준비한 것이 좀 더 달랐다.”

대표팀에 찬사가 쏟아지고 있으나 불과 몇 개월 전엔 비난이 빗발쳤다. 7월 동아시아축구연맹(EAFF) E-1 챔피언십에서 일본에 0-3으로 졌고, 9월 코스타리카와의 평가전에선 2-2로 비겼다. 하지만 선수들은 흔들리지 않았다. 벤투 감독의 축구에 대한 두터운 신뢰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벤투 감독님은 무엇이든지 논란이 있더라도 선수들의 편을 들어주셨다. 축구와 관련된 것은 물론, 축구 외적인 부분에서도 우리를 믿어주시고, 우리를 중심으로 계획을 세우셨다.” 벤투 감독은 지난 1월 시리아와의 카타르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8차전을 앞두고 이동경(한자 로스토크)과 이동준(전북 현대)의 대표팀 이탈을 잠시 허락했다. 당시 둘은 해외 이적을 위해 독일로 메디컬 테스트를 받기 위해 떠났다. 김영권은 “누구라도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일”이라며 “선수의 꿈과 미래가 달린 만큼 감독님이 이해해주셨다. 그런 일을 보고 겪으니 믿음이 커졌다”고 강조했다. 4년 4개월 동안 대표팀을 조련, 12년 만에 월드컵 16강 진출을 이끈 벤투 감독은 이제 조국으로 돌아갔다. 대한축구협회는 벤투 감독의 후임 사령탑 선임을 위한 작업에 착수, 내년 2월까지 마무리를 짓는다는 계획이다. 축구협회 국가대표전력강화위원회는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적합한 지도자를 추천할 예정이다. 새 사령탑은 2024년 초에 카타르에서 열릴 것으로 보이는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정상에 도전해야 한다.

그런데 아시안컵 우승은 사실 월드컵 16강 진출보다 어려운 일이다. 한국은 1956년 홍콩에서 열린 초대 대회와 1960년 국내에서 열린 제2회 대회에서 2연패를 차지한 이후 지금까지 60년 넘게 한 번도 왕좌를 탈환하지 못했다. 한국은 4차례 준우승만 추가했고, 그사이 일본이 4회 우승으로 이 부문 1위,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이 3회씩 정상에 오르며 공동 2위에 자리했다.

김영권은 “월드컵 16강에 진출한 만큼 이제 제게 가장 중요한 건 아시안컵 우승이다. 선수들 모두가 아시안컵 우승을 꿈꾸고 있다. 준우승(2015년)을 해봤기에 더욱 아쉬움이 크다”며 “이제 선수로서의 막바지에 들어간 것 같다. 어떻게 마무리하느냐가 중요하다. 당장은 아시안컵 우승이 유종의 미가 아닐까 싶다”고 덧붙였다.


5년전 ‘관중들 함성에 선수들 소통못해’ 말했다 큰 비난…“그때로 간다면 실언 안할 것”

“선수 마치면 지도자 길 갈듯
닮고 싶은 감독은 은사 리피”


“5년 전 인터뷰 때로 돌아가고 싶어요.”

축구대표팀 수비의 중심 김영권(울산 현대)은 지난 2017년 8월 31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이란과 2018 러시아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홈경기 직후 실언을 했다. 당시 한국은 안방에서 열린 경기, 특히 상대 선수 1명이 퇴장을 당했는데도 유효 슈팅을 하지도 못하고 0-0으로 비겼다. 그리고 김영권은 “관중들의 함성이 크다 보니 선수들끼리 소통하기가 힘들었다”고 말해 온 국민의 공분을 샀다.

김영권은 동료들과 부족한 조직력, 호흡을 강조하고 싶었는데, 승리를 놓친 충격과 아쉬움 탓에 의도와 다른 표현을 했다. 김영권은 다음 날 눈물을 흘리며 “경기를 풀어나가는 과정에서 어려운 부분이 있어 그렇게 이야기했다. 나쁜 의도는 없었다”고 사과를 했다. 물론 지금까지 김영권을 비난하는 팬은 없다. 김영권은 실언 후 1년 뒤 2018 러시아월드컵 독일전에서 결승골을 작성, 2-0 승리를 이끌며 비난을 찬사로 바꿨다.

5년이 넘었으나 당시 실언에 대한 책임은 김영권의 가슴 한편에 남아 있었다. 김영권은 ‘축구 인생에서 돌아간다면 바꾸고 싶은 일’이란 질문에 “가장 욕을 먹었던 그 인터뷰가 아닐까 싶다. 의도하지 않았던 말이긴 한데, 듣는 사람 입장에선 당연히 안 좋게 생각했을 것”이라며 “많은 분께 실망을 안겼고, 스스로 인정도 한 부분이다. 그래서 더욱 바꾸고 싶다”고 설명했다. 또 “엄청난 욕을 먹었지만 독일전에서 승리한 후 끊겼다. 그때부턴 많은 분이 응원을 해주신 덕분에 행복하게 축구를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32세인 김영권은 이제 선수로서 마지막 단계에 접어들었다. 하지만 김영권의 축구 인생은 앞으로도 갈 길이 멀다. 김영권은 “선수 생활을 마치면 지도자를 하지 않을까 한다. 평생 축구를 계속했기에 자연스러운 것 같다”며 “내가 잘할 수 있을지는 아직 모르지만 새롭고 모르는 일에 도전해보고 싶다”고 강조했다.

김영권은 닮고 싶은 지도자로 광저우 헝다(중국) 시절 은사 마르첼로 리피 감독을 꼽았다. 리피 감독은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와 월드컵에서 우승한 최초의 사령탑이다. 김영권은 “선수들이 축구를 재밌게 즐길 수 있도록 정신적인 부분을 가르쳐주고 싶다. 기량적인 것은 타고난 것과 노력 모두 필요하지만, 마음가짐과 정신적인 부분은 하루아침에도 바뀔 수 있기 때문”이라며 “리피 감독님이 그런 스타일이셨다. 훈련할 때는 선수들과 재밌게 뛰어노셨는데, 진심으로 축구를 즐긴다는 걸 느꼈다”고 설명했다.

허종호 기자 sportsher@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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