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협의 시론]新블록화, 中 의존 낮출 전화위복 기회

기사 정보
문화일보
입력 2023-01-11 11:38
기자 정보
기사 도구
프린트
댓글
폰트
공유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김상협 경제부장

30년 WTO 체제 사실상 종언
보호주의로 패러다임 급변 속
신뢰·국익기반 블록경제 가속

공허한 전략적 모호성 버리고
시장 다변화해야 협상력 커져
안보·기술협력도 생존의 관건


새로운 국제경제 질서 구축이 가속되고 있다. 자유무역주의는 사실상 해체됐다. 30년간의 세계화가 끝난 자리를 변형된 형태의 보호주의가 대신하고 있다. 가치와 신뢰를 바탕으로 한 진영·동맹 중심의 블록 경제화로 전개되는 양상이다. 2023년은 또 다른 30∼50년을 내다본 장기 구조 변화의 초입에 들어선 셈이다. 윤석열 대통령도 신년사에서 “세계무역기구(WTO) 체제가 약화하고 보호주의가 강화되는 과정에서 안보·경제·기술협력이 패키지로 운영되고 있다”고 현 위기 상황을 진단했다. 정부 대응 방향에 따라 낙오하느냐, 선두권으로 치고 나가느냐의 갈림길에 서게 된다.

질서 개편은 중국이 자초했다. 2001년 WTO 체제에 가입한 중국은 값싼 노동력을 무기로 ‘세계 공장’ 역할을 통해 막대한 과실을 독식하면서도 글로벌 규범, 거래 질서, 보편 가치를 무시했다. 중국의 불공정 경제패권에 국제사회의 불만은 누적돼 왔다. 특히, 미국은 중국이 온갖 스파이 활동으로 첨단 산업·우주·안보기술을 빼돌려 G1 지위까지 위협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새 질서의 특징이 중층적인 대중 포위망 쌓기로 집약되는 배경이다. 중국의 대륙 침공에 자국 소비자의 피해를 감수하고라도 제동을 걸 수밖에 없다는 인식에서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아메리카 퍼스트(America First)’나 조 바이든 대통령의 ‘바이 아메리칸(Buy American)’은 사실 동일한 방향을 담은 같은 구호다.

미국이 선택한 방식은 자국 우선을 기본으로 하되, 이해관계와 뜻이 맞는 우방과 신뢰·가치동맹으로 블록화하는 작업이다.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 미국·유럽연합(EU)무역기술위원회(TTC), 미주파트너십(APEP)은 WTO를 대체할 지역별 경제블록이다. 중국 주도의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을 무력화하려는 성격도 있다. 이를 미국·일본·호주·인도 4국 간 안보동맹 성격의 쿼드(Quad)가 뒷받침한다. 중국에 의존도가 높은 현 글로벌 가치사슬(GVC) 재편을 위해서는 대외적으로 칩4 동맹, 대내적으론 인플레이션감축법(IRA) 카드를 내놨다. 미국 주도의 한국·일본·대만 협의체인 칩4는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대중 수출통제 포위망이다. IRA 역시 중국을 옥죄면서 안정적인 GVC를 구축하는 동시에 ‘공급사이드경제학’을 통해 인플레이션을 해결하려는 조치다.

이 정도라면 엄청난 힘이 요동치는 수준이다. 국제경제뿐 아니라 세계질서가 재편되는 패러다임 변화의 서막을 알린다. 수년 내 타협점을 찾을 수 있는 미·중 간 경제갈등이 아니라 수십 년 계속 진행될 패권전쟁이다. 급변 상황에서 ‘안미경중(安美經中)’이라는 시대 변화에 맞지 않는 틀을 되뇐다고 풍랑을 헤쳐나갈 수 없다. 공허한 전략적 모호성을 들고 언제까지 줄타기만 할 수는 없다는 얘기다. 새로운 GVC에서 소외됨으로써 부닥칠 가공할 공급망 위기에 대해 서둘러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글로벌 공급망 재편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시장 다변화 등을 통해 중국 경제에 대한 과도한 의존도를 낮춰야 한다”고 충고했다. 한은 총재가 이례적인 톤으로 공개 발언할 정도면 그만큼 심각성이 크다는 의미다. 이 총재가 제시했듯 “국제무역 분절화, 높은 금리 수준이 우리 경제의 어려움을 가중시킬 수 있지만, 관점을 달리해서 보면 그간 미뤄 왔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회”일 수 있다. 김양희 대구대 경제금융학부 교수는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한국의 선택’(2023 한국경제 대전망)에서 “(중국의) 경제보복 이유 때문에라도 다층적인 ‘신뢰가치사슬(TVC)’ 참여로 중국에 대한 집합적 협상력을 키워야 한다”고 제언했다.

최첨단 기술력으로 세계 각국이 한국에 대한 의존도를 높이게 하는 전략도 중요하다. 세계 최대 노광장비기업인 네덜란드의 ASML은 훌륭한 모범이다. 탈중국·글로벌 공급망 확대 노력의 효과는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베트남이 우리나라 무역흑자 1위로 올랐고, 4위 인도 시장 규모는 중국 추월 직전이다. 포스코처럼 핵심광물 공급망 확보를 토대로 미국과 합작사 설립에 성공하는 사례도 늘 전망이다. 위기를 기회로 바꿀 때다. 50년을 내다본 전략을 짜야 한다.
주요뉴스
기사 댓글

댓글 영역은 접힘 상태로 기본 제공되며, ON/OFF 버튼을 통해 댓글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AD
AD
AD

ADVERTISEMENT

서비스 준비중 입니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