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불복·의회 습격… 트럼피즘, 브라질에 ‘수출’되다[Global Foc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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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입력 2023-01-12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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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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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지난 8일 브라질 브라질리아 의회의사당에 난입한 자이르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건물 위에 올라서서 국기를 흔들며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대통령을 향해 “하야하라”고 외치고 있다. AP 연합뉴스



■ Global Focus - 브라질·미국 ‘판박이 폭동’

보우소나루 지지자 4000여 명
대통령궁·의회·대법원 등 점령

SNS로 부정 선거 의혹 증폭 등
2년전 미국 1·6사태 방식과 유사
“남미 포퓰리즘 국가 확산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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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브라질의 입법·사법·행정기관에 자국민 4000여 명이 난입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정부 정책이나 사회에 대한 불만이 아닌, ‘선거 불복’ 폭동이다. 지난해 10월 대선에서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대통령이 당선된 건 ‘부정 선거’였기 때문이고, 선거에서 패배했던 자이르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은 이 ‘선거 사기’의 억울한 피해자라는 주장이다.

이번 사태는 단순한 브라질 내부문제가 아니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대선에 불복한다며 2021년 1월 6일 미국 의회의사당에 난입했던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지지자들의 ‘판박이 폭동’이기 때문이다. 트럼피스트(트럼프 전 대통령의 열렬한 추종자들)들이 써내려간 각본이 브라질에서 상영된, ‘트럼피즘(Trumpism·트럼프 전 대통령의 극단적 주장에 대중이 열광하는 현상)의 수출’이다. 페루를 비롯해 남미 좌파 포퓰리즘 국가들의 사회 불안정이 계속되는 상황인 만큼 연쇄 폭동이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트럼피즘의 수출’, 브라질 1·8 사태 = 지난 8일 브라질 브라질리아 대통령기념관 인근.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 지지자들을 가득 태운 40여 대의 버스가 속속 집결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모인 인원만 무려 4000여 명이다. 이들은 같은 날 오후 2시쯤, 약 7㎞ 거리를 이동해 브라질의 입법, 사법, 행정 3부 기관이 모여 있는 ‘3권 광장’에 다시 모였다. 이윽고 대통령궁과 의회, 대법원에 밀고 들어가 창문을 깨고, 집기를 부쉈다. 이 과정에서 역사를 간직한 수많은 예술품이 무자비하게 파괴됐다. 브라질 민주주의의 상징이 엉망이 되는 데 걸린 시간은 고작 4시간 반이었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2021년 1월 6일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워싱턴 DC 의회의사당 건물을 점거한 후 난간 위에 올라서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대선 슬로건이 적힌 깃발을 흔들고 있다. AP 연합뉴스



묘하게도 이날은 미국 의회의사당에서 벌어진 1·6 의회난입사태 2주년을 맞은 지 이틀 후다. 당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당선 승리가 확정되는 시간에 맞춰 의회로 몰려들며 의회 난입을 감행했다. 약 한 시간 만에 의사당 건물 난입에 성공했으며, 이윽고 하원 회의실, 상원 회의실을 점거하며 당선 확정을 위한 상·하원 회의를 중단시켰다. 경찰이 시위대 난입을 저지하려 했지만 결국 사망자까지 발생하고 말았다.

외신들은 “브라질에서 일어난 일은 트럼피스트들의 각본에서 비롯됐다”며 두 사태의 유사성을 조명했다. 특히 전직 대통령의 발화를 통해 극우 지지자들이 결집했다는 점이 가장 유사하다.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은 미국에서 1·6 사태가 벌어진 다음 날 “미국 대선에서 부정이 있었다”며 브라질 전자투표 방식을 바꾸지 않으면 2022년 대선을 전후해 미국보다 더 심각한 일이 벌어질 수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는 정확히 트럼프 전 대통령과 그 측근들이 자행해온 방식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2020년 11월 3일 대선 이후 트럼프 전 대통령과 측근들은 SNS,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선거 조작 주장을 조직적으로 펼쳐왔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사태 당일 연설에서도 의회로 행진하기 전 “대선 불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며, 절대 승복하지 않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의 연설은 트위터 등을 타고 번졌다.

◇트럼피즘, 고꾸라지는 ‘남미 포퓰리즘’ 국가들로 확산할까 = 브라질은 ‘국가 통합’을 취임 일성으로 걸었던 룰라 정부 출범 일주일여 만에 반정부 폭동이 벌어지며 사회갈등을 피할 수 없게 됐다. 현재까지 약 1500명이 구금된 가운데, 전임 정부 관계자나 일부 기업 임원들이 해당 폭동을 직·간접적으로 후원했다는 의혹도 계속되고 있다.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의 개입 여부도 관심사다.

정치적 후유증도 오래 남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 사례가 이를 방증한다. ‘공화 대 민주’ 양쪽으로 쪼개진 미국에서는 여전히 트럼프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강경파 모임 ‘프리덤 코커스’가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하원의장 선거 과정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서 돌아선 당시 하원 원내대표 케빈 매카시에게 반기를 들어, 선출 투표가 15차례까지 지연되기도 했다. 하원 특별조사위원회까지 설립해 조사하고, 위원회가 트럼프 전 대통령을 기소하라고 법무부에 권고하는 내용의 보고서도 냈지만 여전히 사태는 현재 진행 중이기도 하다.

브라질의 ‘트럼피즘 수입’은 전초전에 불과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좌파 포퓰리즘 세력 집권 이후 일부 남미 국가들에서 분열상이 관찰되고 있기 때문이다. 극우파의 득세도 눈에 보이고 있다. 특히 아르헨티나에서는 좌파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대통령 집권 이후 경제난이 가중되자, 극우파 포퓰리스트인 하비에르 밀레이 하원의원이 인기를 얻고 있다.

김현아 기자 kimhaha@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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