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종의 시론]국가보안법이 불편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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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입력 2023-01-27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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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종 논설위원

직파 간첩에서 자생 간첩 시대
주사파 부모 자녀에 사상 세습
법원도 간첩 피고인 잇단 석방

간첩 활개에 文과 민주당 책임
방첩 체계 붕괴, 국보법만 남아
안보도 끓는 물속 개구리 신세


민노총의 2인자 격인 조직국장을 비롯한 핵심 간부들이 캄보디아, 베트남 등지에서 북한 공작원을 만나 조선노동당에 입당하고 간첩들이 받는 ‘밀봉교육’까지 받았다니 충격적이다.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얘기가 현실로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17년부터 이들이 북측 공작원과 접촉하고 국내 조직도 만들었는데 국가정보원이 일거수일투족을 파악하고도 상부 지시로 수사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더 참담하다. 국가 안보의 최전선에 있는 국정원의 방첩 기능이 사실상 무력화된 셈이다.

민족민주혁명당, 일심회, 왕재산, 중부지역당 사건 등 그동안 간첩단 사건은 왕왕 있었지만, 이렇게 국내 최대 노동조합 조직인 민노총의 핵심 인사와 국회의원 보좌관 등이 관련된 것을 보면 북한의 ‘대남 간첩 사업’이 상당히 광범위하고 핵심으로까지 접근한 것을 입증하고 있다. 예전엔 북에서 직접 내려보낸 ‘직파 간첩’이 국내에서 활동했다면, 이젠 국내 종북·주사파 세력들이 해외에서 공작원들을 만나 간첩 교육을 받고 들어오는 ‘자생 간첩’이 활개 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과 좌파 진영에선 “남북 체제 경쟁은 끝났다”고 했지만, 이렇게 자생 간첩이 늘어나는 것을 보면 끝나기는커녕 실전에서 우리가 지고 있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은 미국의 핵우산이나 방어시스템으로 대응하면 되지만, 사회 곳곳에 침투해 친북 활동을 벌이는 간첩을 막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주사파의 교과서 격인 ‘강철서신’의 저자이자 평양에 가서 김일성을 만나고 온 뒤 환멸을 느껴 전향한 김영환 씨는 최근 인터뷰에서 친북 활동을 하는 중·고생 중 상당수는 부모가 주사파 활동을 한 전력이 있다고 했다. 주사파 부모가 자녀들에게 사상을 세습시킨다는 충격적 주장인 셈이다. 북한에서만 ‘대를 이은 충성’이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 내부에서 주사파가 재생산되는 것이다. 자치단체 등으로부터 지원을 받는 시민단체가 ‘김정은 환영단’을 만들고 북한 신년사 교육 등을 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간첩이 사법처리가 돼도 민변(民辯) 변호사들이 변론 활동을 벌이고, 재판 지연 전술을 펴면서 구속 기간(6개월) 만료, 보석 등으로 풀려나고 있다. F-35A 기지가 있는 청주공항 등에 대해 간첩 활동을 하다 적발된 ‘청주간첩단’(자주통일충북동지회) 사건 관련자들이 보석 등으로 풀려난 뒤 다른 간첩 용의자들과 연락까지 하는 것이 현실이다. 법원마저 이러니 북한의 대남 공작의 장애물은 없는 셈이다.

왜 이 지경이 되도록 방첩 망 곳곳에 구멍이 나 있을까. 문재인 정권과 민주당의 책임이 무겁다. 민주당은 최근 민노총 간첩 사건에 대해 그 흔한 성명 하나 내놓지 않고 있다. 대신 이재명 대표는 ‘간첩조작 사건 피해자’를 만나 국정원 등 수사기관의 폭력 공소시효 폐지를 주장했다. 김성환 정책위의장은 “국민은 이제야 ‘막걸리 보안법’ 걱정을 안 하고 살고 있었는데 이마저도 이전으로 돌아갈까 우려된다”고 했다. 예전 군사정권 시절 술자리에서 정부를 비판하면 국가보안법으로 잡아가던 것과 지금의 간첩 사건이 비슷하다는 취지다. 캄보디아, 베트남을 수시로 드나들며 북한 공작원을 만나 교육받고, 달러 공작금을 받아 환전상에서 교환하고, 스테가노그래피라는 첨단 방법으로 북한과 교신한 행태와, 막걸리 국보법과 같다는 김 의장의 발상부터 놀랍다. 그나마 이런 국정원의 대공수사권도 문 정권이 내년부터 없애는 법안을 이미 통과시켰다.

이렇게 열악한 상황에서도 그나마 간첩을 적발할 수 있는 것은 국가보안법 때문이다. 반국가단체 구성, 잠입·탈출, 회합·통신 등을 처벌할 수 있는 조항이 민노총 간부 간첩단을 적발한 법적 근거로 작동하는 셈이다. 김대중 정권부터 좌파 진영은 국보법 폐지를 줄기차게 시도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국보법만 없어지면 간첩 활동의 영역이 훨씬 넓어지기 때문이다. 일반 국민은 국보법이 전혀 불편하지 않지만 폐지를 원하는 세력은 그러지 않은 모양이다. 아주 뜨거운 물속에 개구리를 넣으면 뛰쳐나오지만, 천천히 데워지면 물속에 그대로 있다가 죽는 것을 ‘끓는 물속 개구리(boiling frog) 효과’라고 한다. 그대로 놔두면 대한민국 안보도 개구리처럼 서서히 죽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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