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는 것들이 다 행복이고 기쁨인 것… 언제나 변함없는 우리가 ‘좋다’[주철환의 음악동네]

  • 문화일보
  • 입력 2023-02-06 09:05
  • 업데이트 2023-02-06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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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철환의 음악동네 - 임지훈 ‘좋다’

‘그 사람 나를 보아도 나는 그 사람을 몰라요.’ 이문세의 노래 ‘사랑이 지나가면’은 다소 풀 죽은 목소리로 시작한다. 뭔가 반전이 있으려나. 하지만 ‘그대 나를 알아도 나는 기억을 못 합니다’로 이어지는 걸 보면 그 사랑의 회복은 요원할 성싶다.

한때는 다정한 사이로 보였는데 어느 순간부터 거리가 멀어진 사람들을 가끔 본다. 인간관계는 왜 틀어지는 걸까. 별생각이 다 든다. 그들은 진짜 사랑이란 걸 하기는 했던 걸까. 혹시 사랑이 지나간 게 아니라 사업이 지나간 건 아닐까.

음악동네에서도 이별의 절차는 대체로 3단계다. 처음에 고뇌가 있고(피노키오 ‘사랑과 우정 사이’ 중 ‘시간은 조금씩 우리를 갈라놓는데 어디서부턴지 무엇 때문인지’) 중간에 당부가 있고 (이광조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 중 ‘모르는 타인들처럼 아무 말 말고 가세요’) 나중엔 원망도 있다(윤복희 ‘왜 돌아보오’ 중 ‘사랑한다 말을 마오 유행가 가산 줄 아오’). 그러나 갈라서는 이유는 대체로 비슷하다(피노키오 ‘사랑과 우정 사이’ 중 ‘숨겨온 너의 진심을 알게 됐으니’).

새해 벽두에 SNS로 노래선물을 받았다. 딱 보니 제목이 좋다(뭐냐고? 노래 제목이 딱 두 글자 ‘좋다’). 자작곡을 보내준 사람은 가수 임지훈이다. 우리는 2학년(20대) 때 만났고 지금은 둘 다 6학년이다. 그가 날 부르는 호칭은 한결같이 형이다. 미워할 수 없는 동생을 처음 만난 곳은 뮤직비디오 촬영장이었다. 그때 그는 4인조 포크 그룹(꾸러기들) 멤버였다. 놀이동산에서 뮤직비디오를 찍은 그 노래는 지금도 나의 애창곡이다. ‘새파란 색을 좋아한다고 새파랗게 웃을 수는 없잖아’로 시작해서 ‘아무 색이면 어때 우리 사이에 무지개색 꿈이 있는데’로 정리되는 이 노래. 제목부터가 ‘무슨 색을 좋아해도’(작사·작곡 김창완)다. 다양성의 존중을 동심으로 색칠했다.

각자의 꿈이 있고 각자의 색이 있고 각자의 길이 있다. 우사인 볼트처럼 빨리 뛰는 사람도 있고 우상혁처럼 높이 뛰는 사람도 있고 이봉주처럼 오래 뛰는 사람도 있다. 육상경기에 비유하자면 임지훈은 마라토너다. 깜짝 스타도 아니고 3단 고음을 내는 것도 아니고 그냥 꾸준히 달려온 사람이다. 삶이 입시라면 수능성적보다 내신성적이 좋은 학생에 해당한다. 100일 콘서트(1985~1986)를 포함해서 데뷔 후 콘서트만 2000번 이상 했다니 끈기가 대단하다.

임지훈 이름 석 자가 음악동네 주민으로 등록된 계기는 1982년 MBC 대학가요제다. 대상 수상곡 ‘참새와 허수아비’(가수 조정희)를 작사한 사람이 임지훈이다. 감정 이입된 허수아비는 탄식한다. 노란 참새가 자기를 찾아오는 속셈을 알고부터다. ‘들판에 곡식이 익을 때면 날 찾아 날아온’ 참새는 인간 세상에서도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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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 데뷔곡은 ‘사랑의 썰물’(1987)이다. ‘차가운 너의 이별의 말이 마치 날카로운 비수처럼 내 마음 깊은 곳을 찌르고’. 헤어져 상처받은 사람들이라면 격하게 공감할 것이다. 지혜로운 자들의 이별 과정은 대체로 묵언수행이다. ‘두고두고 못다 한 말 가슴에 삭이면서’(현미 ‘떠날 때는 말 없이’). 하지만 이별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사랑의 썰물’을 작사·작곡한 김창기는 라디오에 나와 여자친구에게 차인 후 (슬픔의 힘으로) 오히려 다수의 명곡이 탄생했고 그 혜택을 지금 가족이 받고 있다며 명랑한 복수(?)의 변을 남겼다. 삶에도 밀물이 있고 썰물이 있다. ‘일말의 눈부심이 가라앉고 밀물의 움직임 속에 물결도 제각기 누워 잠잔다’(높은음자리 ‘바다에 누워’). 그의 이번 곡(‘좋다’)은 일단 따라부르기가 좋다. 고음이라 해봤자 오랜만에 만난 친구 이름 부르는 정도의 높이다. 몇 번 따라부르다 보면 그의 삶까지 따라 하고 싶어질지도 모른다. ‘보이는 것들이 다 행복이고 기쁨인 것을 무엇을 더 가지려 욕심을 부리려 했는지 느끼는 것들이 다 선물이고 기쁨인 것을 무엇을 더 가지려 욕심을 채우려 했는지’(임지훈 ‘좋다’).

작가·프로듀서·노래채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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