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동의 시론]과거 이재명이 현재 이재명 단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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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입력 2023-02-08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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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동 논설위원

정치인으로 최대 약점 無신뢰
세 불리하면 말 바꾸기 여반장
‘명적명’ ‘재명대장경’ 회자

정적 제거·야당 탄압 주장은
자신의 과거 발언과 배치돼
비리수사 말라는 건 법치 부정


정치인으로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최대 약점은 하는 말에 믿음이 잘 가지 않는다는 점이다. 자기가 철석같이 했던 약속을 상황이 바뀌고 사태가 불리해지면 여반장 식으로 뒤집기 일쑤였기 때문에 신뢰성이 현저히 떨어진다. 이미 기소된 선거법 위반 사건과 대장동·성남FC 사건 등에서 유죄를 선고받으면 정치생명이 끝날 터이지만, 설혹 정치인으로 살아남더라도 무신불립(無信不立)이 최대 문제다. 이 대표의 이런 행태는 ‘안면 몰수 화법’으로 지칭되기도 한다. 아름다운 말을 너무 많이 해서, 자신의 말과 처신이 충돌하는 ‘조국 현상’과 비슷한 경우도 많이 발생한다. ‘조적조(조국의 적은 조국)’ ‘조만대장경’에 빗대 ‘명적명’ ‘재명대장경’이 회자된다.

지난 대선 때 “국회의원의 불체포특권 폐지에 100% 찬성한다”고 약속했던 이 대표는 대장동·위례신도시 특혜 개발, 성남FC 불법 후원금 모금, 쌍방울그룹 대북송금 대납 의혹 등으로 수사받거나 구속영장 청구가 임박하자 가볍게 입장을 바꿨다. 그는 지난달 12일 신년기자간담회에서 ‘국회의원 불체포특권을 평소에 주장하셨는데 어떻게 할 생각인가’라는 취재진 질문에 “검찰이 적법하게 권한을 행사한다면 당연히 수용하겠지만, 경찰복을 입고 강도행각을 벌이고 있다면 과연 어떻게 판단할지, 이런 건 상황에 따라 판단이 다를 수 있다 생각한다”고 했다. 상황이 달라져 약속을 지키지 않겠다는 것인데, 한두 번 이런 게 아니다. 이 대표는 2021년 12월 ‘존경하는 박근혜 대통령’이라는 발언이 논란이 되자 “존경한다고 했더니 진짜 존경하는 줄 알더라”라고 너무도 가볍게 대응해 듣는 사람들을 어이없게 만들었다. 말을 생각나는 대로 하고 문제가 되면 아무런 부담 없이 변명하거나 바꾸는 가벼움의 극치다.

토요일인 지난 4일 서울 숭례문 근처의 세종대로 8개 차로 대부분을 점거하고 민주당이 연 장외집회에서 이 대표는 “유신독재 정권이 몰락한 자리에 검사독재 정권이 똬리를 틀고 있다”며 “군인의 총칼 대신 검사의 영장이 국민을 위협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구속영장은 판사가 발부하는 기초 사실을 뒤섞은 데 이어 자신에 대한 검찰 수사를 국민에 대한 위협이라고 주장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너무 많은 범죄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고, 주요 피의자들의 이 대표 관련 진술이 구체화하자 말이 거칠고 논리적 정합성도 떨어지는 등 ‘아무 말 대잔치’ 수준으로 전락하고 있다.

이 대표는 검찰 수사를 ‘정적 제거’ ‘야당 탄압’이라고 주장하는데, 자치단체장의 토착 비리 성격이 대부분인 사건들은 야당 대표는커녕 국회의원도 되기 전인 성남시장과 경기지사 시절 벌어진 것이고, 게다가 문재인 정부 때 여당 대선 후보 경선 과정에서 불거져 나온 것이다. 이 대표와 민주당 주장대로면, 어떤 범죄자라도 야당 대표가 되면 수사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으로, 법치주의와 민주주의에 대한 부정이다.

이재명 성남시장은 2017년 7월 박근혜 정권에 대한 적폐청산을 역설하면서 “적폐와 불의를 청산하는 게 ‘정치보복’이라면 그런 정치보복은 맨날 해도 됩니다”라고 페이스북에 썼다. 같은 해 12월엔 방송에 출연해 “도둑은 원래 잡아 가지고 뿌린 대로 거두게, 저지른 만큼 처벌되도록 해야 하는 게 맞는데, 나쁜 짓 한 사람들 입장에서는 안 당하고 싶거든요. 그러니까 ‘나 잡지 마’라고 할 수는 없고, 다른 걸로 물타기 하는 거죠. ‘정치보복이다.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하는 것 아니냐’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데, 적폐청산은 죄지은 사람 죄 찾아내서 합당한 대가를 지불하게 하는 거여서, 우리 사회 공동체가 있는 한은 계속해야 될 일이라고 봅니다”라고 했다. 말 그대로, 과거의 이재명이 현재의 이재명을 잡고 있다.

검찰 수사에 당당히 응하겠다고 했던 이 대표는 최근 성남FC 사건과 대장동·위례신도시 사건으로 각각 성남지청과 서울중앙지검에 출두하면서 변명과 정치적 수사(修辭)로 대부분을 채운 서면 진술서를 제출하고 사실상 진술 거부권을 행사했다. 법리나 증거 논쟁을 벌이기는 불리하다고 판단했다는 것인데, 일개 잡범도 아니고 169석 거대 야당의 대표이자 ‘정치범 또는 정적 호소인’으로서 좀스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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