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세상 파괴자” 자책… ‘원폭의 아버지’ 오펜하이머 사망[역사 속의 This we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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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입력 2023-02-13 08:59
업데이트 2023-02-13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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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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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맨해튼 프로젝트를 주도해 ‘원자 폭탄의 아버지’로 불리는 물리학자 로버트 오펜하이머가 1957년 미국 프린스턴 고등연구소에서 강연을 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 역사 속의 This week

나치 독일의 유대인 탄압을 피해 미국으로 망명한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1939년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냈다. 아돌프 히틀러가 핵폭탄을 개발할 가능성이 있으니 미국이 먼저 개발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일본의 진주만 공습으로 참전하게 된 미국은 1942년 본격적인 원자폭탄 개발에 착수했다. 극비리에 추진된 ‘맨해튼 프로젝트(Manhattan Project)’에는 13만 명의 인력과 당시 돈으로 20억 달러가 투입됐고, 물리학자 로버트 오펜하이머가 책임자가 돼 이끌었다. 그가 소장을 맡은 로스 앨러모스 연구소에 리처드 파인먼, 엔리코 페르미, 존 폰 노이만 등 당대 내로라하는 최고의 과학자들이 모였다.

3년 뒤 1945년 7월 16일, 미국 뉴멕시코주 사막에서 인류 최초의 핵실험(트리니티 실험)이 성공했다. 핵폭탄의 위력은 어마어마했다. 폭발과 함께 한 낮의 태양보다 더 강한 빛이 쏟아졌고 12㎞ 상공까지 거대한 버섯구름이 솟아올랐다. 그 순간 오펜하이머는 힌두교 경전에 나오는 구절을 떠올렸다. “이제 나는 죽음, 세상의 파괴자가 되었다.”

독일은 이미 항복을 한 상태였고, 해리 트루먼 대통령은 전쟁을 빨리 끝내기 위해 1945년 8월 6일과 9일 ‘리틀보이(Little Boy)’와 ‘팻맨(Fat Man)’ 2개의 원자폭탄을 일본 히로시마(廣島)와 나가사키(長崎)에 각각 투하했다. 도시는 초토화됐고 20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8월 15일 일본이 무조건 항복을 선언하면서 2차 세계대전은 끝이 났다.

이후 냉전이 가속화하고 소련도 원자폭탄 실험에 성공하자 미국은 원폭보다 더 강력한 수소폭탄을 개발하기로 한다. 그러나 대량파괴무기가 가져온 참상을 본 오펜하이머는 수소폭탄 개발에 반대했다. 그러자 당시 매카시즘 광풍에 휘말려 공산주의자로 의심받고 소련의 스파이로 몰리며 고초를 당했다. 청문회가 열리고 결국 원자력에너지위원회는 1954년 오펜하이머의 핵무기 관련 정부 기밀정보 접근 권한을 차단해버렸고 이후 모든 공직에서 쫓겨났다.

‘원자폭탄의 아버지’로 불리는 오펜하이머는 트루먼 대통령에게 “내 손에 피가 묻어 있다”며 양심의 가책을 호소하는 등 평생을 죄책감에 시달리다 1967년 2월 18일 후두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사망한 지 55년이 흐른 지난해 12월 미국 정부가 원자력에너지위원회의 결정을 취소한다고 발표해 68년 만에 스파이 혐의를 완전히 벗었다. 그의 이야기를 그린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영화 ‘오펜하이머’가 올해 7월 개봉될 예정이다.

김지은 기자 kimjieun@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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