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웅평 대위 미그機 몰고 귀순… 한때 경계경보 ‘긴박’[역사 속의 This we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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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입력 2023-02-20 09:03
업데이트 2023-02-20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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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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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1983년 2월 25일 미그-19기를 몰고 귀순한 이웅평 대위가 3월 4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만세를 외치고 있다. 자료사진



■ 역사 속의 This week

“애애앵∼∼ 여기는 민방위 본부입니다. 지금 서울·인천·경기 지역에 경계경보를 발령합니다. 국민 여러분, 이것은 실제 상황입니다.”

1983년 2월 25일 오전 10시 58분 서울 수도권 일대에 갑자기 대공 경계경보 사이렌이 울렸다. 처음에는 민방위 훈련인가 했다가 ‘실제 상황’이라는 다급한 목소리에 놀란 시민들은 전쟁이 난 줄 알았다. 신문사와 방송국에 전화가 빗발쳤고 동네 슈퍼마켓에는 라면, 우유, 밀가루 등이 동났다.

이날 6·25 전쟁 이후 첫 경계경보로 대한민국을 발칵 뒤집어 놓은 주인공은 미그-19 전투기를 몰고 귀순해 온 북한 공군 이웅평 상위(대위)였다. 당시 한국군과 미군은 팀스피리트 훈련 중이었고 이에 대한 대응으로 북한은 준전시 상태를 선포한 상태였다. 그는 훈련을 위해 평안남도 개천비행장을 이륙한 후 편대에서 이탈해 남쪽으로 기수를 돌렸다.

북한 레이다 망을 피해 고도를 100m 정도로 최대한 낮춰 시속 920㎞의 전속력으로 남하해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넘어왔다. 한국 공군 F-5 전투기는 요격에 나섰다가 이 대위가 비행기 날개를 흔들며 귀순 의사를 밝히자 수원비행장으로 유도해 착륙시켰다.

김책공군대학을 졸업한 29세의 엘리트 조종사였던 그는 비행기 라디오로 남한 방송을 들으며 북한 체제에 회의감을 느끼고 남한 사회를 동경하게 됐다고 한다. 여의도에서 열린 귀순 환영대회에는 비가 오는 궂은 날씨에도 130만 명의 인파가 몰렸다. 이 대위가 몰고 온 미그-19기는 당시 북한의 주력기로 우리 군 당국이 북한 공군의 전력을 파악하는 데 큰 도움이 되는 등 정보 가치가 높아 10억 원이 넘는 보상금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귀순 3개월 후 북한에서의 경력을 인정받아 공군 소령으로 임관해 1996년 대령으로 진급했다. 공군사관학교 교수의 딸과 결혼해 두 아이를 낳고 단란한 가정을 꾸리며 한국 사회에 잘 적응했지만, 북에 남은 가족 걱정과 북한의 보복에 대한 두려움 등 심적 스트레스가 끊임없이 그를 괴롭혔다.

공군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던 1997년 간경화 진단을 받았고, 간 이식 수술을 받은 후 호전되는 듯했으나 결국 2002년 48세의 나이로 짧은 생을 마감했다. 목숨 걸고 자유를 찾아와 분단의 아픔을 안고 살았던 그는 세상을 떠나기 몇 달 전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행복했냐고요? 글쎄… 그러나 귀순을 후회한 적은 없습니다.”

김지은 기자 kimjieun@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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