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받는 아기 여우들과 연대하는 아이들[어린이 책]

■ 어린이 책

여우 목도리
유지우 지음│봄볕

한반도에는 여우가 많았다. 옛이야기에 여우가 많이 등장하는 것도 그런 이유다. 전국 방방곡곡에서 여우를 볼 수 있었다. 그런데 1960년대에 정부 차원의 대대적인 쥐잡기운동이 시작되면서 여우의 개체 수가 급격히 줄어 지금은 멸종 위기종이며 소백산 국립공원 인근에서 복원 사업을 진행 중이다. 드물지만 우리 곁에도 야생에서 서식하는 여우들이 있다.

이 그림책은 두 여우의 이야기다. 여우들이 겪은 하나의 운명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감쪽같이 한 권처럼 보이지만 두 권처럼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책을 집어 들고 처음에 읽은 방향으로부터 책의 중심까지 읽고, 그다음에 거꾸로 책을 뒤집어서 책의 중심까지 또 한 번 읽는다.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의 ‘파란 막대 파란 상자’도 같은 방식이다. 그 작품에서는 생일이면 똑같이 파란 물건을 선물로 받는 두 어린이의 사연이 책의 중앙에서 마주친다.

앞뒤가 똑같은 책으로 보이지만 속표지의 표지판은 다른 곳을 가리킨다. 하나는 마을, 하나는 여우 숲이다. 한 아이가 눈 속에 파묻혀 떨고 있는 아기 여우를 구조한다. 아기 여우를 데리고 마을로 나갔다가 여우 목도리를 두른 사람들을 만난다. 아이는 아기 여우와 같은 공포감을 느끼면서 어떻게든 그 무서운 광경으로부터 도망치려고 한다. 그리고 책의 중앙에 있는 숲에서 여우를 데려온 또 다른 아이를 만난다. 책을 뒤집으면 그들의 사연을 읽을 수 있다.

이와 같은 구성의 가장 큰 장점은 두 개의 시선으로 현실을 입체적으로 바라보게 만든다는 점이다. 여기서는 여우의 시선과 인간의 시선이다. 그런데 익숙한 대립의 시선이 아닌 점이 이 작품의 매력이다. 아기 여우는 고통받고 인간인 아이들은 그 고통에 연대한다. 피해자와 연대자의 이야기다. 이 책에서는 여우였지만 너구리와 토끼와 밍크가 같은 자리에서 사라지고 있다. 인간의 탐욕과 잔인함으로 희생된 동물들에게 진실한 사죄를 바치는 의미심장한 그림책이다. 60쪽, 1만8000원.

김지은 서울예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