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호의 시론]아일랜드로부터 무엇을 배울 것인가

  • 문화일보
  • 입력 2023-04-10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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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호 논설고문

케네디·바이든 모국 아일랜드
최빈국서 세계 3위 부국 도약
법인세 낮춰 글로벌 기업 유치

아일랜드 ‘좋은 일자리’가 기준
한국 툭하면 “재벌 특혜” 비난
무엇이 진짜 중한지 고민해야


내일(11일)부터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아일랜드를 방문한다. 역대 미 대통령 45명 중 가톨릭 신자는 딱 2명이다. 그리고 존 F 케네디와 바이든의 공통점은 아일랜드계 이민 출신이다. 케네디는 1963년 아일랜드를 방문해 증조부가 살았던 고향 마을을 찾았다. 이번 바이든 방문도 똑같은 ‘뿌리 찾기’다. 하지만 60년의 세월 동안 아일랜드는 천지개벽을 했다. 케네디가 방문한 1963년 아일랜드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620달러로 영국(1277달러)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가난한 나라였다. 지난해 1인당 GDP는 10만2217달러로 식민지 종주국이었던 영국(4만7317달러)의 2.16배나 되는 세계 3위 부자나라가 됐다.

‘아시아의 호랑이’ 한국은 1%대 저성장으로 비틀대는 반면 ‘켈틱 호랑이’ 아일랜드의 질주는 멈출 기미가 없다. 아일랜드의 성공 비결을 대개 12.5%의 법인세율에서 찾는다. 지난 20여 년간 독일(29.8%)·프랑스(28.4%)·영국(19%)보다 훨씬 낮았다. 글로벌 대기업들이 영어권에다 잘 훈련된 노동력, 낮은 법인세의 아일랜드를 유럽연합(EU) 진출의 교두보로 삼은 이유다. 1993년 EU 출범 이후 아일랜드는 외국인 직접투자가 밀려들면서 연평균 5%에 가까운 고도성장을 이어오고 있다. 현재 최대 기업도 애플·구글·마이크로소프트·메타(페이스북) 순이다. 이런 다국적 기업들이 고급 인력 27만5000명을 고용하고, 아일랜드 세수의 25%를 부담하고 있다.

하지만 EU에서 세금만 따진다면 오히려 법인세율 9%인 헝가리로 몰려갔을 것이다. 숨겨진 또 하나의 비밀이 있다. 그 상징적 장면이 2017년에 일어났다. EU가 애플이 아일랜드에서 세금 130억 유로(약 18조6940억 원)를 체납했다고 판결했으나, 오히려 아일랜드 의회와 정부가 탈루가 아니라며 항소한 것이다. 아일랜드의 1년 치 부가가치세 총액에 해당하는 돈을 스스로 포기한 셈이다. 일시적인 돈벼락보다 글로벌 기업들의 ‘좋은 일자리’가 더 중요하다는 판단 때문이다. 실업률을 낮추고 지속가능한 성장을 노린 고도의 계산이 깔려 있다.

지난해 세계 주요 7개국(G7)이 “글로벌 최저 법인세율을 15%로 설정하자”며 아일랜드를 압박했을 때도 마찬가지다. 아일랜드는 법인세율을 15%로 올리면 외국인 직접 투자가 위축돼 매년 20억 유로의 세수가 줄어든다며 끝까지 저항했다. 눈앞의 현금보다 기업 친화적인 환경을 포기할 수 없다는 역발상이었다. 결국 매출액 7억5000만 유로 이상인 56개 글로벌 대기업에만 15% 법인세율을 적용하는 선으로 물러섰다.

지난해 윤석열 정부가 법인세 최고세율 25%를 내리려고 하자 더불어민주당이 “103개 대기업만을 위한 초부자 감세”라고 반발해 결국 1%포인트 찔끔 내리는 데 그쳤다. 반도체 세액공제(K-칩스법) 때도 마찬가지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위한 재벌특혜 감세법”이라며 반대했다. 우리나라가 아일랜드처럼 애플의 천문학적인 체납세를 포기했다면 어땠을까. “매판 정권” “매국노”라며 나라가 뒤집어졌을 것이다. 글로벌 기업 유치를 위해 노사정은 물론이고 여야까지 ‘사회적협력증진조직’을 통해 임금 조정과 노사 문제 해결에 팔을 걷어붙이는 아일랜드와 비교된다.

애플은 폭스콘 등을 통해 모든 제품을 위탁 생산한다. 하지만 세계에서 딱 한군데, 아일랜드에만 직영 공장을 운영한다. 최근에는 화이자와 일라이 릴리가 아일랜드에 각각 조(兆) 단위 규모의 공장을 짓는 등 글로벌 바이오·제약회사들도 몰려들고 있다. 한국의 K-칩스법도 아일랜드에 가면 빛이 바랜다. 대기업·중견기업에 대해 시설투자 세액공제율을 간신히 15%로 끌어 올렸지만 아일랜드는 25%나 되기 때문이다.

전 세계가 기업 유치 전쟁을 벌이는 지금, 최선두에 아일랜드가 있다. 아일랜드는 기업의 국적을 가리지 않고 오로지 좋은 일자리 창출을 기준으로 삼는다. 양질의 일자리가 많아져야 소득이 늘고, 세금이 늘고, 성장의 밑거름이 된다는 경제학 교과서의 원칙을 지키는 것이다. 60년 전 폐쇄적 낙농국가는 그렇게 개방 경제의 기적을 이루었다. 참고로, 2021년 기준 GDP 대비 외국인 직접 투자(누적액)는 아일랜드가 279.5%인 데 비해 한국은 14.6%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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