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에 끌려간 마지막 옹주 덕혜… 귀국 27년만에 별세[역사 속의 This week]

  • 문화일보
  • 입력 2023-04-17 08:56
  • 업데이트 2023-04-17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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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1918년 덕수궁 석조전에서 촬영된 황실 가족 모습. 왼쪽부터 영친왕, 순종, 고종, 순정효황후(순종비), 덕혜옹주. 고종의 고명딸 덕혜옹주는 일제에 의해 강제로 일본으로 건너갔다가 37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와 1989년 세상을 떠났다. 자료사진



■ 역사 속의 This week

1907년 일제에 의해 강제 퇴위당한 고종이 머물던 덕수궁에 1912년 봄, 아기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황제의 자리를 양위한 순종과 의친왕, 영친왕 등 세 아들을 둔 고종에게 환갑이 되던 해에 늦둥이 딸이 태어난 것이다.

고종은 아기를 낳은 궁녀 양 씨에게 복녕당이라는 당호를 내렸고, 자신을 쏙 빼닮은 아기가 50일이 지나자 처소인 함녕전으로 데려와 지낼 정도로 예뻐했다. 고명딸 덕혜옹주가 다섯 살 때 궁에 유치원까지 만들며 애지중지하던 고종은 2년 뒤인 1919년 갑작스럽게 승하했다.

1910년 국권을 침탈한 일제는 대한제국 황손들의 일본 유학을 정책적으로 추진한다. 말이 유학이지 사실상 볼모였다. 영친왕은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에 의해 일본으로 보내져 철저히 일본식 교육을 받았고, 왕족 출신인 마사코(方子·한국명 이방자)와 정략결혼을 했다.

덕혜옹주도 영친왕처럼 일본 유학을 강요당해 열세 살 어린 나이에 낯선 타국으로 떠나야만 했다. 마중을 나갔던 이방자 여사는 “처음 보았을 때 나를 매료시켰던 발랄하고 영롱한 눈빛은 찾아볼 수 없었다”고 당시 덕혜옹주의 달라진 모습을 회고했다. 고종의 독살설로 독살의 두려움이 있던 그는 학교 갈 때 항상 보온병에 물을 가지고 다녔다.

아버지처럼 의지하던 순종에 이어 17세에 생모마저 세상을 떠나자 불면증과 신경쇠약 증세를 보이더니 조발성 치매(조현병) 진단을 받았다. 19세인 1931년에 일제의 강압으로 소 다케유키(宗武志) 백작과 결혼했지만, 결혼 생활은 불행의 연속이었다. 딸을 출산한 후 병세가 더욱 악화해 정신병원에 보내져 15년간 입원했고, 그사이 이혼을 하게 되고 딸은 실종되기까지 했다.

고국을 그리워했으나 이승만 정부가 귀국을 허락하지 않아 돌아오지 못하다 일본으로 끌려간 지 37년 만인 1962년 50세에 마침내 조국 땅을 밟았다. 창덕궁 낙선재에서 지내던 덕혜옹주는 1989년 4월 21일 77세의 나이로 비극적인 삶을 마감했다. 일본 여성학자 혼마 야스코(本馬恭子)가 발로 뛰어 취재하고 근거 자료를 모아 1998년 펴낸 덕혜옹주 평전으로 그의 이야기가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그의 기구한 인생에는 나라 잃은 민족의 고통과 설움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비운의 마지막 황녀 덕혜옹주가 낙선재에서 정신이 들 때 썼다는 삐뚤삐뚤한 글씨의 낙서는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나는 낙선재에서 오래오래 살고 싶어요. 전하 비전하 보고 싶습니다. 대한민국 우리나라.”

김지은 기자 kimjieun@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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