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숙의 시론]바이든, 한국민 우려 직시해야 한다

  • 문화일보
  • 입력 2023-04-24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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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숙 논설위원

국빈 방문 전야 사라진 낙관론
프렌드 쇼어링 약속도 빛 바래
어벤저스급 원전 동맹도 헛꿈

美 자국 이기주의 韓 희생 강요
북핵 위협에도 핵우산만 강조
한·미 서울 공동성명 이행해야


미국 방문에 나서는 윤석열 대통령의 발걸음이 무거워 보인다. 한미동맹 70주년 기념 국빈방문에 최대 규모의 경제사절단이 함께 하는데도 경축 분위기가 뜨지 않는다. 집권 1년도 채 되기 전에 지지율은 20∼30%를 넘나들고, 169석의 거대 야당은 정책현안에 사사건건 시비를 걸며 노동·연금·교육 개혁에 반대해 정국은 꽉 막힌 상태다. 징용 갈등을 대승적으로 풀어낸 한일 정상회담에 반일 프레임을 씌우며 반대한 야당과 좌파 시민단체는 한미 정상회담에 대해서도 꼬투리 잡기에 혈안이다.

지난해 5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방한했을 때는 축제 같은 분위기였다. 한미동맹이 새로운 단계로 진입한다는 낙관론도 팽배했다. 윤 대통령이 취임 열흘 만에 바이든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진 뒤 발표한 공동성명엔 한미 양측이 오래 준비해온 21세기 글로벌 동맹 비전이 세세하게 담겨 있어서 기대감이 컸다. 동맹을 부담스러워하며 북한의 비핵화 사기극에 장단을 맞췄던 문재인 정권이 끝난 직후 열린 첫 한미 정상회담이기에 모두 들떴던 것도 사실이다.

바이든 대통령이 방한 첫 일정으로 평택 삼성 캠퍼스를 방문, “가치 공유 국가와 번영을 공유할 것”이라며 반도체 협력을 얘기했을 때만 해도 미국이 탈중(脫中)을 압박하긴 해도 동맹 간 프렌드 쇼어링(friend-shoring)은 지속될 줄 알았다. 대미 투자계획을 밝힌 정의선 현대차 회장에게 바이든 대통령이 “실망시키지 않겠다”고 했을 때엔 “가치 동맹 발전이 곧 공동 번영의 길”이란 신뢰가 느껴졌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바이든 행정부의 미국 우선주의 정책으로 인해 이런 기대감은 썰물처럼 빠졌다.

한미 양국의 분야별 협력이 열거돼 동맹 회복의 선물처럼 여겨졌던 공동성명도 빛이 바랬다. 특히, ‘어벤저스급 원전동맹의 탄생’이란 찬사를 받았던 원전 협력 관련 약속이 하나도 지켜지지 않은 것은 심각하다. ‘해외 원전시장 공동진출을 위한 한미 원전기술 이전 및 수출 협력을 위한 양해각서(MOU) 체결’ ‘사용 후 핵연료 관리, 연료 공급 확보를 위한 원자력고위급위원회 소집’은 말뿐이었다. 웨스팅하우스는 아랍에미리트(UAE) 원전 수출 모델인 한국형 원전인 APR1400의 지적 재산권을 주장하며 법정 소송까지 냈다. 2009년 UAE 원전 수출을 이뤄낸 이명박-버락 오바마 시대의 공조 정신조차 부정된 것이다.

이러니 국빈방문 분위기가 뜰 리 없다. 야당과 좌파 단체의 동맹 폄훼와 친북 행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닌 만큼 주목할 필요가 없지만, 동맹의 버팀목인 중도 보수층에서 제기되는 미국에 대한 비판은 심상찮다. 시중엔 미국이 한국을 대놓고 갈취하며 갑질을 한다는 불만이 나오고 있다. 반도체지원법과 인플레이션감축법(IRA) 세부 조항은 미국이 자국 첨단 기업을 키우기 위해 삼성전자와 현대차를 주저앉히려는 ‘한국판 플라자합의’라는 음모설까지 나돈다. 미 상무부가 반도체지원법 보조금 조항을 통해 기업 비밀을 내놓으라고 윽박지르고 IRA에서 갖은 이유를 대며 한국차를 배제하는 것이 그런 이유 때문이라는 해석이다.

북한이 핵 협박을 고조시키는 상황에서도 미국이 핵우산을 믿으라는 말만 하는 것도 미국에 대한 의구심을 키운다. 최종현학술원 여론조사에서 독자적 핵개발 지지가 76.6%로 나타난 것은 북핵 위협에 대한 한국인의 실존적 위기감이 극에 달했다는 반증이다. 그런데도 미국은 동맹의 불안감에 대해선 외면하면서 핵확산금지조약(NPT)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는 논리만 내세운다. 태평양 건너편에 멀리 떨어져 있는 미국이 북한의 위협에 노출된 한국의 위기 실상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게 분명하다.

윤 정부가 흔들리면 동맹도 흔들리고 자유민주주의도 흔들린다. 바이든 대통령은 중산층을 위한 경제외교로 정권 재창출을 도모하고 있지만, 동북아 자유민주주의의 최전선 대한민국이 미국에 실망하며 좌파 포퓰리즘에 빠져든다면 미국의 글로벌 동맹 체제도 유지되기 어렵다. 바이든 대통령은 윤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 앞서 한국의 위기 상황을 제대로 보고 한국인들의 우려에 응답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2022년 서울 정상회담 때의 약속을 지키며 공동성명을 제대로 이행하는 일부터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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