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카의 문명 서린 곳… 지금은 미래도시·판자촌 공존하는 불평등 도시[장은수의 도시와 문학]

  • 문화일보
  • 입력 2023-05-01 08:59
  • 업데이트 2023-08-07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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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페루의 수도 리마는 해안가 절벽 위의 도시이다. 사진은 리마 해안가 전경. 게티이미지뱅크



■ 지식카페 - 장은수의 도시와 문학 - (26) 페루 리마

리마, 에스파냐 식민체제때 중심에 섰던 도시… 亞 잇는 태평양 무역 네트워크 장악·원주민 노동력 착취로 번영
원주민들 ‘자유의 새’ 콘도르의 비상 기원하며 끝없이 저항… 여전히 반란과 독재, 개혁과 혼란의 악순환에 시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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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두막에서 나는 외로이/ 밤새 울고 있네./ 나는 내 눈을 향해 말하네./ 울음을 멈추어라./ 눈물을 더 이상 뿌리지 마라./ 그래도 두 눈은 울고 또 우네/ 끝없는 어둠 속에서.”

케추아인의 시 ‘외로움’이다. 이별의 슬픔과 고통을 선연한 언어로 그려냈다. 케추아인은 남미 안데스산맥 고지대 이곳저곳에 흩어져 사는 원주민으로, 이 땅에서 찬란한 문명을 꽃피운 타완틴수유 제국, 즉 잉카의 적자이다. 페루 510만 명, 에콰도르 250만 명 등 약 1000만 명에 달하는 인구가 독자적인 언어와 문화를 지키면서 살아가고 있다.

페루에는 약 1만5000년 전 사람이 살기 시작했고, 약 4000년 전부터 카랄·차빈·파라카스·나스카·와리·모체 등 여러 문명이 명멸했다. 타완틴수유는 ‘넷으로 이루어진 나라’란 뜻으로 13세기 초 티티카카 호수 지역에서 처음 세력을 얻었다. 15세기 초 파차쿠티 왕의 재위 기간에 이 나라는 ‘세상의 배꼽’인 쿠스코를 중심으로 팽창해 안데스 전체를 다스리는 제국이 됐다. 네 구역의 통치자는 상당한 자율성을 부여받아 마음대로 자녀에게 직위를 세습했고, 사후에 가족을 부양할 토지를 위해 꾸준히 마을을 건설하고 새 땅을 제국에 추가할 의무를 졌다.

페루 수도 리마는 안데스산맥 반대편인 태평양 연안의 사막지대에 자리 잡고 있다. 1535년에 에스파냐 침략자 프란시스코 피사로가 바다에 가깝고 물이 풍부한 이 땅에 로스레예스, 즉 ‘왕의 도시’를 건설하기 전 이곳엔 창조신 파차카마크를 모신 신탁 도시 리마크가 있었다. 리마크는 케추아어로 ‘[신의 뜻을] 이야기하는 사람’이란 뜻이다. 200년경 리마크에 거주하던 이치마인은 인신 공희를 행하는 등 강력한 부족국가를 이루다 1470년경 타완틴수유에 정복당했다. 제국은 리마크에 태양의 신전을 지어 자기들의 신 인티를 기념했으나, 파차카마크 숭배와 그 신탁도 허용했다. 이치마인을 달래기 위해서였다.

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과거 잉카 제국의 수도인 쿠스코 유적. 쿠스코는 케추아어로 ‘배꼽’을 의미한다. 게티이미지뱅크


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식민지 시기에 건설된 건물, 광장, 거리, 교회 등이 잘 보존돼 1983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쿠스코 거리의 모습. 게티이미지뱅크



1532년 12월, 타완틴수유가 천연두의 유행과 제위 계승 문제로 큰 혼란에 빠진 틈을 타 프란시스코 피사로가 이끄는 에스파냐 침략자 168명이 쿠스코를 기습해 아타우알파 황제를 사로잡아 처형했다. 어이없는 일이었다. 타완틴수유는 망코 잉카, 투파크 아마루 등이 제위를 이어받으면서 저항을 이어갔으나, 1572년 요새 도시 빌카밤바가 함락되면서 마침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타완틴수유를 멸망시키고 보물을 약탈한 학살자 피사로는 정착을 위해 해안으로 진출했다. 그는 리마크 신전을 파괴한 후 그 위에 교회를 짓고, 신앙을 내세워 원주민 문명을 말살하려 했다. 그러나 로스레예스란 이름은 오래가지 않았다. 얼마 못 가 이 땅은 리마크란 이름을 되찾았고, 나중에 리마로 줄여서 부르게 되었다. 에스파냐는 끝내 안데스를 이기지 못했다.

1543년 리마는 페루 총독부의 수도가 됐다. 1551년 아메리카 대륙 최초로 산마르코스대학이 들어서고, 1584년 첫 번째 인쇄기가 설치되는 등 이 도시는 에스파냐 식민 체제의 중심에 섰다. 리마는 남미에서 생산한 금·은 등 각종 물자 운송을 독점함으로써 아메리카·유럽·아시아를 잇는 태평양 무역 네트워크를 장악했다. 거듭된 지진도, 해적의 잦은 공격도 리마의 번영을 막지 못했다. 그 배경엔 원주민 착취가 있었다.

에스파냐는 공물 제도인 ‘엥코미엔다’를 빌미 삼아 원주민들을 무상 강제 부역에 종사시켰다. 먹을거리조차 제때 지급하지 않은 채, 식량 생산과 광산 노동에 동원한 것이다. 케추아 전설에 나오는 피스타코는 흰 피부의 괴물이다. ‘목을 자르거나 살을 조각내다’라는 뜻의 이 괴물은 원주민을 학대하고 살해하며, 생명을 상징하는 체지방을 빨아먹는다. 죽을 지경까지 몰아붙인 에스파냐인의 원주민 착취 행위가 이런 끔찍한 상상을 낳았을 테다.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바르가스 요사는 말했다. “식민주의만큼 야만적인 것은 없다.”

그러나 잔혹한 억압에도 ‘태양의 고귀한 후손들’의 저항은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1560년대에 이미 원주민들은 전통 신앙을 바탕으로 가톨릭에 대한 저항에 나섰고, 빌카밤바 함락 이후엔 잉카 군주가 출현해 고통받는 원주민을 죽음에서 구하리라는 민중 신앙을 일으켰다. 18세기 초 스페인 부르봉 왕조가 식민지 차별 정책을 도입해서 부역이 커지는 등 어려운 살림이 더 팍팍해지자 원주민 저항이 증가했다.

1780년 호세 가브리엘 콘도르칸키는 투파크 아마루 2세를 자처하면서, 원주민 힘을 모아 봉기를 일으켰다. 원주민 10만 명이 희생된 이 대반란에서 그는 체포되어 사지가 잘리는 잔인한 처형을 당했다. 민중들은 노래했다. “오, 위대한 안데스 콘도르여,/ 고향으로 데려가소서./ 오, 콘도르여!/ 안데스 고향으로 돌아가/ 사랑하는 형제들과 함께 살게 하소서.”(‘엘 콘도르 파사’에서) 콘도르칸키의 영혼이 자유의 새인 콘도르로 환생해 날아오르기를 기원하는 민요였다.

18세기 후반, 리마는 해외 무역 독점권도 잃고 은광 지배권도 상실하면서 경제적으로 쇠퇴하기 시작했다. 프랑스혁명 이후, 아메리카에 독립 요구가 분출할 때, 리마는 왕당파 거점으로 남았다가 ‘페루의 보호자’ 호세 데 산마르틴과의 공방전에서 큰 피해를 봤다. 1824년 페루가 완전히 독립한 후, 리마는 공화국의 수도가 됐다. 그러나 1850년대 구아노 수출로 호황을 맞을 때까지 도시는 거의 재건되지 못했다.

리마의 두 번째 번영은 짧았다. 1870년대 구아노가 고갈되면서 위기가 찾아온 데다, 1879년부터 5년간 벌어진 태평양전쟁에서 칠레에 패한 까닭이다. 리마는 칠레 군대에 약탈당한 후, 성난 민중들의 공격으로 파괴돼 느리게 복구됐다. 1919년엔 독재자 아우구스토 레기아가 집권했다. 1930년까지 11년 동안 그는 반대파를 무자비한 폭력으로 제압하면서 도시 중산층 중심의 근대화를 밀어붙였다. ‘온세니오’라 불리는 이 피의 통치 기간에 리마는 원주민 민중의 희생을 발판 삼아 천천히 회복됐다.

원주민 출신 시인 세사르 바예호는 노래했다. “농부의 주먹은 비단결처럼 부드러워지고,/ 입술마다 십자 모양으로 윤곽이 그려진다./ 축제일이다! 쟁기의 율동 날아오르고/ 워낭은 하나하나 청동의 합창 지휘자.”(‘조금밖에 죽지 않은 오후’에서) 체 게바라가 가장 사랑했던 이 시인은 어린 시절의 즐거웠던 기억과 원주민의 행복했던 과거를 절절한 슬픔의 언어로 겹쳐 썼다.

“인간은 슬퍼하고 기침하는 존재/ 그러나 뜨거운 가슴에 들뜨는 존재/ 하는 일이라곤 하루하루 연명할 뿐인/ 어두운 포유동물.”(‘인간은 슬퍼하고 기침하는 존재’에서) 온세니오에 저항하다 추방돼 파리 뒷골목에서 쓸쓸히 죽어간 바예호에겐 가장 사적인 고통을 인간 전체의 경험으로 바꾸는 눈부신 재능이 있었다.

1930년대 산업화 이후, 리마는 팽창을 거듭했다. 1940년대부터 가난에 지친 안데스 원주민이 일자리와 교육을 위해 리마로 몰려들었다. 1940년 인구 60만 명이었던 도시는 1960년엔 190만 명이 되었다. 그사이 정치는 군부 반란과 독재, 부패와 무질서를 반복했다.

‘카테드랄 주점에서의 대화’에서 요사는 1948년 쿠데타로 집권한 마누엘 오드리아 장군을 “독재자이자 살인자”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불법으로 정당을 해산하고, 언론의 자유도 말살했어. 군대를 동원해 사람들을 무참히 학살도 했지.” 요사는 울부짖었다. “언제부터 페루가 이 꼴로 변해버린 걸까? 온 나라가 죄다 개판이라고.”

독재 세력은 사회적 불평등과 외세의 자원 약탈을 방치할 수밖에 없다. 정당성이 없는 탓에 약간의 유혹에도 쉽게 부패하는 까닭이다. 더욱이 미국은 페루의 정상화를 끝없이 방해했다. 자국 이익에 약간만 방해되면, 군사 반란을 유도해서 개혁 정권을 붕괴시키는 등 수시로 페루 내정에 개입했다. 1980년대 강압적인 군부독재에 대한 불만과 경제 위기에 따른 기록적인 인플레이션이 겹쳐지자 견딜 수 없었던 민중들은 본격적인 무장 투쟁에 나섰다. 1990년 알베르토 후지모리 대통령의 집권 이후, ‘센데로 루미노소’의 무장 투쟁을 강경 진압하고 신자유주의 정책을 밀어붙인 사이에 리마는 비약적인 성장을 이룩했다. 그러나 부패하고 타락한 독재자는 폭력을 행사해 권력을 강화하고 제 호주머니를 불리려 애쓰다 쫓겨났을 뿐, 도시의 무질서한 팽창을 방치하고 적절한 인프라를 제공하는 데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 결과, 한쪽엔 최첨단 미래 도시가 들어서 번영을 자랑하고, 다른 쪽엔 수도도 전기도 없는 최악의 사막 판자촌이 형성되면서 리마는 극단적인 불평등의 세계적 상징이 되었다. 그 최대 피해자인 안데스 원주민은 정치적 각성과 함께 세력화에 나서는 등 점차 역사의 중심으로 귀환하고 있다. 지난 6년 동안 대통령 6명이 교체되는 등 페루는 반란과 독재, 개혁과 혼란의 악순환에 시달리는 중이다. 과연 안데스의 콘도르는 언제 날아오를 것인가.

문학평론가

■ 용어설명

타완틴수유

타완틴수유는 잉카 제국의 본디 이름이다. 케추아어로 타완틴은 ‘4’, 수유는 ‘나라’를 뜻한다. 이 나라 사람들은 ‘네 갈래로 나뉘어 통치되는 나라’란 의미로 자기 제국을 이렇게 불렀다. 1200년경 만코 카팍이 건국했다. 제국의 영토는 현재 페루·볼리비아·에콰도르·칠레·아르헨티나·콜롬비아에 넓게 걸쳐 있었다. 안데스산맥을 가로지르는 정교한 도로망, 고산지대를 십분 활용한 계단식 농경 체제, 밧줄 매듭을 활용한 복잡한 기록 시스템으로 유명하다.

센데로 루미노소

‘빛나는 길’로 잘 알려진 이 단체는 1980년대 초 아비마엘 구즈만이 창설한 마오주의 게릴라 조직이다. 안데스산맥의 고지대에서 소규모로 시작했으나, 원주민 공동체의 호응을 얻어서 크게 세력을 떨쳤다. 1986년 페루 미국 대사관 폭탄 테러, 부유한 자본가나 엘리트 등 민간인 암살과 살해로 유명하다. 진압 과정에서 페루 군부가 행한 끔찍한 원주민 인권유린으로 갈등이 커졌고, 양자의 무력 충돌 결과 수만 명이 사망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1990년대 들어 구즈만이 체포되는 등 세력이 꺾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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