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외소재문화재재단의 세계 속 우리 문화재]日 기상학자가 반출했던 현존 유일 측우기

  • 문화일보
  • 입력 2023-05-01 11:35
  • 업데이트 2023-05-01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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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훈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지원활용부 직원

현존하는 유일한 측우기인 국보 ‘공주 충청감영 측우기(公州忠淸監營測雨器)’(사진·국립기상박물관 소장)는 일본에서 환수한 우리 문화유산이다. 측우기는 강우량을 과학적으로 측정하기 위해 발명한 기구이다. 특히 국가가 가뭄과 홍수 대비를 위한 기구를 고안하고, 고을 수령이 우량(雨量)을 왕실에 보고한 측우제도는 세계 과학사와 농업사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우리 고유의 전통이다. 영국의 크리스토퍼 렌(Christopher Wren)이 1662년에 발명한 서양 우량계보다도 220년이 이르다.

측우기 몸체 중단에 명문이 새겨져 있는데, 이를 통해 1837년(헌종 3)이라는 제작 연대와 높이 1자(尺) 5치(寸)(실측 31.2㎝), 지름 7치(〃14.5㎝), 무게 11근(〃6.2㎏)임을 알 수 있다. 이는 ‘세종실록’에 기록된 측우기 규격과 일치한다. 측우제도는 세종대 시작돼 임병양란(壬丙兩亂)으로 중단됐다가, 영조대 부활했다. 1837년에 제작된 이 측우기는 조선 후기 측우제도가 세종대 전통에 그 기원을 두고 있음을 알려주는 증거이다.

조선의 과학기술을 설명할 때 빠지지 않는 ‘공주 충청감영 측우기’가 50년 넘게 고향을 떠나 있었다는 사실은 대부분 잘 알지 못한다. 1915년경 조선총독부 관측소장으로 인천에서 근무한 일본인 기상학자가 측우기를 일본으로 가져갔다. 이후 측우기는 일본기상청이 소장했고, 당시 중앙관상대(현 기상청)에서 측우기의 존재를 알고 일본기상청과 오랜 기간 협의해 1971년에 일본에서 환수했다.

우리는 측우기를 공식적으로 사용한 1441년 5월 19일(양력)을 ‘발명의 날’로 정해 매년 기념하고 있다. 5월의 첫날, 백성의 풍년을 바라는 애민 정신이 담긴 우리 발명품이 타지에서 반세기가 넘는 시간을 보내고 돌아왔다는 사실까지 기억한다면 측우기가 더욱 소중하게 느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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