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시 실패때 다독여주고 아플때 돌봐주고… 자신보다 제자 더 챙겨[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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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입력 2023-05-17 09:02
업데이트 2023-05-23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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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1977년 강원도 한 사찰에서 고시공부를 하던 제자들을 격려차 방문해 주신 박종성(앞줄 맨 오른쪽) 선생님. 필자 제공



■ 그립습니다 - 박종성 전 단국대 법과대학장(1925∼1985)

경해 박종성 선생님은 1925년 4월 20일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대 법과대학을 거쳐 미국 뉴욕대에서 국제법학(특히 해양국제법)을 전공하며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으셨습니다. 학위를 취득한 후 귀국해 해양국제법 연구에 몰두하면서 대학에서 후학들을 지도하셨는데, 저와의 인연은 선생님이 단국대 법과대학장을 맡고 계실 때 맺어지게 됐습니다.

군 복무를 마치고 2학년에 복학했을 때 단국대에서 공부한 고시생이 사법시험에서 수석합격을 해 ‘사법고시’ 열풍이 불고 있었습니다. 특별장학생을 모집하는 과정에서 제가 과분하게 선발되는 행운을 얻어 저는 졸업할 때까지 전액 장학금은 물론, 기숙사 생활의 혜택도 받았습니다.

저는 선생님의 제자들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이때부터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일찍 출근하셔서 도서관에 들러 공부하는 학생들을 일일이 격려함은 물론, 별도로 마련해 주신 제 공부방에 아침저녁으로 들르셔서 지도를 아끼지 않으신 덕분에 저는 2년 후 졸업하면서 사법시험에 합격해 학교와 선생님에 대한 은혜를 조금이나마 갚을 수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방학이 되면 어김없이 간식 등을 준비하여 시골 산사나 고시촌에서 공부하고 있는 후배들을 찾아가셨습니다. 한 번은 몇 번 낙방해 사법시험을 포기하려는 후배가 있었는데 선생님은 그를 찾아가 한 번만 더 해보자고 간곡히 설득하셨습니다. 후배가 승낙할 때까지 선생님은 떠나지 않으셨고, 이를 거절치 못한 후배는 심기일전해 다음 시험에서 합격하여 지금은 훌륭한 법조인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제가 사법연수원에 다닐 때 디스크 병으로 수술이 필요한 상황에서도 선생님은 곧바로 수술을 받게 하시지 않고 3∼4개 대학병원에 직접 데리고 가셔서 꼭 수술을 받아야 하는지, 수술 후유증은 없는지를 확인한 후 수술을 받게 하셨습니다. 입원 기간 15일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문병을 오셔서 회복 여부를 점검하셨는데, 시골에 계신 부모 형제 누가 그렇게 할 수 있을까요.

저는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둘째 아들의 첫돌을 맞이하여 선생님을 집으로 초대했습니다. 선생님께서 16평짜리 주공아파트에 후배 20여 명을 데리고 오시는 바람에 음식과 그릇은 물론 앉을 자리도 부족해 쩔쩔맸지만, 여기서도 선생님의 몸에 밴 제자 사랑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선생님이 회갑을 바로 앞둔 1985년 2월 12일, 갑자기 돌아가셔서 가족은 물론 제자들 모두가 가슴 아파 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마지막 입원 기간 중 지방에서 근무한다는 이유로 단 한 번밖에 문병하지 못한 배은망덕이 지금도 후회가 됩니다. 이를 반성하는 차원이랄까요, 선생님이 돌아가신 후 제자들이 선생님의 유고를 모아서 ‘한국의 영해’라는 책을 만들어 드린 것이 하늘 같은 선생님의 은혜에 대한 좁쌀 같은 보답이 될 수 있을까요?

선생님이 돌아가신 후 처음 몇 년은 추도예배에 참여하거나 가끔 의정부시 녹양동에 있는 산소에 가족과 제자들(제자는 아니지만 학문적으로 많은 도움을 받으신 권용우 교수님 포함)이 성묘하고 식사를 하면서 선생님을 추모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점차 추모 화분을 보내는 것으로 대신하다가 금년에는 그것도 제대로 챙기지 못하고 유족에게 전화통화를 하는 것에 그치고 말았습니다. 온몸으로 사랑을 받은 제자의 배은이라 할까요, 아니면 세월의 무상함이라고 해야 할까요.

돌이켜 보면 경북 청송이라는 시골에서 서울로 온 촌놈이 오늘 이렇게 법조의 일원으로 행복한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은 부모님 같으셨던 선생님 덕분이라는 생각에 저절로 가슴이 뭉클해지면서 머리가 숙어집니다. 선생님! 그립습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법무법인 세양 대표변호사 박병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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