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사 부실한데 ‘넷플 1위’… ‘K-콘텐츠 후광’의 역설

기사 정보
문화일보
입력 2023-05-22 09:01
기자 정보
안진용
안진용
기사 도구
프린트
댓글 0
폰트
공유

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동명 웹툰을 실사로 옮긴 넷플릭스 ‘택배기사’는 공개 사흘 만에 글로벌 톱10 TV(비영어) 부문 1위에 올랐다. 디스토피아 세계관을 시각적으로 잘 구현한 반면 이야기의 짜임새는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택배기사’ ‘종이의집’ ‘정이’
글로벌 톱10 부문 정상 등극
독특한 설정 비해 완성도 낮아
외국 비해 작가 현저히 적은탓

“글로벌시장선 판단기준 달라
새롭게 각광받는 장르” 반박도


‘정이’ ‘종이의 집:공동경제구역’ 그리고 ‘택배기사’. 넷플릭스 오리지널로 소개된 세 작품은 글로벌 톱10 TV(비영어) 부문 1위에 올랐다.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는 뜻이다. 하지만 완성도에 대해서는 모두 높은 점수를 받지 못했다. 흥미로운 설정에 그럴듯한 외피를 갖췄지만 내실은 기하지 못했다는 평가다.

K-콘텐츠는 지난 2019년 ‘킹덤’ 이후 주목받기 시작했다.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죽지 않는 존재들을 다룬 이 작품은 ‘K-좀비물’로 불리며 갓이나 활 같은 소품까지 화제를 모았다. 이후 ‘오징어게임’으로 정점을 찍고 ‘지금 우리 학교는’ ‘더 글로리’ 등이 그 명맥을 이었다.

최근 공개와 동시에 흥행 상위권으로 직행하는 K-콘텐츠는 이 같은 성공작들로 인한 후광 효과를 보고 있다. 한때 국내에서 마블 시리즈가 개봉되면 쉽게 50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하며 ‘마블민국’으로 평가받았듯, K-콘텐츠에 매료된 글로벌 이용자들이 유사한 시청 행태를 보인다는 것이다. 최진봉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이른바 명품 효과”라며 “명품이 항상 최고의 제품을 내놓지 않지만 대중은 일단 믿고 먼저 손을 뻗는다. 삼성, 벤츠같이 K-콘텐츠도 ‘네임’(이름)에 ‘밸류’(가치)가 생겼고 이를 신뢰하는 마니아가 형성됐다. 글로벌 1위라는 성적은 온전히 개별 콘텐츠의 힘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높은 기대치를 충족시키지 못하면 실망감도 클 수밖에 없다. ‘택배기사’는 대기오염으로 산소호흡기를 착용하고 살아야 한다는 디스토피아를 외적으로 잘 구현했지만 서사의 밀도는 떨어진다. 남북통일을 앞둔 한반도 상황을 설정한 ‘종이의 집:공동경제구역’ 역시 한국적 배경을 그럴싸하게 접목했지만 캐릭터 구축이나 이야기 흐름은 원작에 비해 크게 떨어진다.

부실한 내러티브의 이유는 한국의 제작 환경에서 찾을 수 있다. 할리우드의 경우 2시간 분량의 영화 한 편을 만들기 위해 수십 명의 작가가 투입된다. 반면 한국은 몇몇 작가나 감독이 전담하는 형태가 일반적이다. ‘택배기사’의 경우 제작사 대표가 조의석 감독과 함께 극본가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영화감독들이 대거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시장으로 유입된 것도 시리즈물의 내러티브가 약화된 요인으로 꼽힌다. OTT 콘텐츠를 공개하면서 “긴 호흡의 시리즈물을 만들며 어려움을 겪었다”고 토로한 감독이 여럿이다. 익명의 관계자는 “할리우드는 감독보다 프로듀서 중심 스튜디오 시스템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감독이 전권을 쥔 경우가 많다”며 “결국 지명도 있는 몇몇 감독이 방향을 잘못 잡으면 이를 고치기 어렵다. 할리우드처럼 프로듀서가 더 많은 권한을 쥐고 콘텐츠를 강화하는 집단 창작 시스템 도입도 검토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인공지능(AI)을 소재로 한 과학소설(SF) 장르 ‘정이’(위 사진)와 외국의 유명 시리즈를 리메이크한 ‘종이의집:공동경제구역’은 작품의 서사와 캐릭터의 완성도가 기대에 못 미친다는 평가 속에서도 글로벌 흥행 1위를 기록했다.



반면 글로벌 1위의 이유가 있다는 의견도 있다. 가족애와 집단 중심 사고를 강조하는 K-콘텐츠가 한국 시청자들에게는 부정적인 ‘신파’로 인식되지만, 글로벌 시장에선 오히려 각광받고 있다. 모성애를 잃지 않은 인공지능(AI)과 딸의 애틋한 메시지를 다룬 ‘정이’가 대표적이다. 또 과학소설(SF) 장르를 좋아하는 외국 시청자들에겐 ‘택배기사’가 스토리텔링은 떨어지지만 시각특수효과(VFX)와 컴퓨터그래픽(CG) 완성도 면에서는 호평을 받고 있다. 최 교수는 “글로벌 시청자들의 판단 기준이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획일적으로 작품을 재단해서는 안 된다”면서도 “결국 ‘오징어게임’과 같이 국내외 구분 없이 호평받는 작품이 ‘대박’을 낼 수 있다.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춘 양질의 콘텐츠 제작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안진용 기자 realyong@munhwa.com
주요뉴스
기사 댓글

AD
AD
count
AD
AD

ADVERTISEMENT

서비스 준비중 입니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