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살 취기에 흥얼거렸던 ‘꽃피는 동백섬’… 그 음악도 가수도 여전히 건재[주철환의 음악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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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입력 2023-05-23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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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철환의 음악동네 - 조용필 ‘돌아와요 부산항에’

조용필은 말수가 적다. 말을 아끼는(절약) 게 아니라 노래를 아끼는(소중) 까닭이다. 어쩌다 공연 중간에 말을 하면 집중하게 된다. 이번 55주년 공연에서도 몇 마디 건졌다. “발표하고 하도 안 부르니 항의가 들어와요.” 실은 나도 민원인 중 하나다. 본인에게 직접 따진(?) 적도 있다. “형은 형만 생각해요? 팬들의 소원 수리도 좀 들어주셔야죠.”(참고로 군대 용어인 ‘소원 수리’는 언젠가부터 ‘마음의 편지’로 바뀌었다.)

20세기를 대표할 만한 대중가요를 조사(MBC, ‘21세기 대중문화 대장정’)한 적이 있는데 1위가 ‘돌아와요 부산항에’였다. 애초에 20세기 최고의 명곡을 골라달라는 게 아니었고 대중이 대표곡을 좋아해야 한단 법도 딱히 없다. 그 두 가지를 고려하더라도 놀라운 결과였다. 어쨌거나 한 세기를 대표할 정도로 어마어마한 노래인데 ‘가왕’은 왜 선곡 리스트에서 잇달아 뺀 걸까. 이렇게 물으면 그는 수줍은 웃음으로 답을 대신할 거다. 노래채집가의 통역은 이렇다. ‘내가 말을 해서 누가 서운하면 안 되지’(‘내가 말을 해서 내가 손해 보면 안 되지’와는 확연히 다른 문구다).

생각이 많아지면 박자를 놓친다는 광고 문구가 있다. 공연은 강연이 아니다. 올드팬은 소원이 수리됐으니 즐거운 시절로 떠나면 된다. 그의 공연은 팬들의 부흥회다. 조용필이 무대에서 ‘단발머리’를 부를 땐 ‘그 소녀 데려간 세월’도 잠시 길을 비켜준다. 이번에 그가 부산항의 형제들을 다시 부를 때 마침 LED 화면에는 거대한 배 한 척이 무대 위로 밀려 들어왔다. 나는 그 배를 타고 그 시절 내 마음의 항구를 찾아 나섰다.

노래방도 없던 시절 대학가의 밤 풍경이 펼쳐진다. 돌아가면서 노래를 부르고 제 차례에 머뭇거리면 공격을 일삼던 ‘야만’의 풍속이 음치들을 ‘울부짖게’ 했다. ‘노래야 나오너라 안 나오면 쳐들어간다’ 누군가 취한 벗들을 꽃피는 동백섬으로 몰고 갔다. ‘오륙도 돌아가는 연락선마다 목메어 불러봐도 대답 없는 내 형제여’ 이제 다음 차례인데 그는 배에서 내리지 않고 부산항에서 요코하마(橫濱)항으로 이동했다. 대중문화계에서도 문단속이 엄격하던 시절인데 노래는 불빛을 따라 무심히 정박했다. ‘아루이테모 아루이테모 고부네노요오니 와타시와 유레테’ 나중에 누가 알려줬는데 ‘걸어도 걸어도 작은 배처럼 나는 흔들려’라는 뜻이었고 노래 제목은 ‘블루라이트 요코하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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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친김에 지난주 요코하마를 찾았다. 에어 캐빈이란 이름의 케이블카에서 내려다본 파란 불빛 사이로 여전히 연인들이 헤엄치고 있었다. ‘아하 밤이 점점 어두워간다 국경의 밤이 저 혼자 시름없이 어두워간다’(김동환의 시 ‘국경의 밤’) 마음도 몸도 술잔처럼 흔들리던 스무 살 시절엔 친구가 있고 노래가 있어서 황홀했다. 그리고 음악은 여전히 존재하고 가수는 지금도 건재하다. 다시 소원 수리를 쓴다면 이렇게 쓸 참이다. ‘그대 발길이 머무는 곳에 숨결이 느껴진 곳에 내 마음 머물게 하여 주오’(조용필 ‘그대 발길 머무는 곳에’)

작가·프로듀서·노래채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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