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미상 12회 ‘로큰롤의 여왕’… 하늘 무대로 떠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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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입력 2023-05-25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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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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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24일(현지시간) 세상을 떠난 팝가수 티나 터너가 지난 2009년 3월 3일, 영국 런던 O2아레나에서 열린 공연에서 열창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주체적 여성상의 대명사’티나 터너 83세로 별세

파워풀한 보컬·과감한 퍼포먼스
댄스·R&B 등 다양한 장르 섭렵

“가정폭력 있었다” 용기있게 폭로
45세‘What’s Love…’폭발인기
백악관도 “믿지 못할 소식”추모


‘로큰롤의 여왕’이자 1970∼80년대 미국 여성의 목소리를 대변했던 ‘박력의 상징’인 티나 터너가 83세를 일기로 눈을 감았다. 24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터너는 지병으로 스위스 취리히 근처 퀴스나흐트에 있는 자택에서 조용히 숨을 거뒀다.

10대 시절인 1950년 활동을 시작한 터너는 ‘로큰롤의 선구자’라 불린 아이크 터너를 만나면서 비로소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1960년 듀오 ‘아이크 앤드 티나 터너’를 결성해 ‘A Fool in Love’(1960), ‘It’s Gonna Work Out Fine’(1961), ‘Proud Mary’(1971) 등을 발표했다. 특히 ‘Proud Mary’로는 1972년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음악 시상식인 그래미 어워즈에서 R&B 보컬 퍼포먼스/그룹 부문을 수상했다.

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티나 터너의 별세 소식이 전해진 24일, 미국 로스앤젤레스 명예의 거리에 새겨진 그의 이름 주변에는 추모의 발길이 이어졌다. AP연합뉴스



여성 인권이 높지 않던 시절, 터너는 주체적인 여성상의 대명사였다. 웬만한 남성 가수를 압도하는 파워 넘치는 보컬과 과감한 퍼포먼스로 주목받았다. 로큰롤 외에도 팝, 솔, 댄스, R&B 등 다양한 장르를 섭렵하며 폭넓은 음악적 스펙트럼을 자랑했다.

화려한 무대 뒤 삶은 굴곡졌다. 아이크와 1962년 결혼했으나 1976년 이혼했다. 이후 자서전을 통해 결혼 생활 중 아이크의 잦은 가정폭력과 학대에 시달렸다고 폭로했다. 대중은 터너의 용기 있는 고백을 지지했고, 그는 음악으로 화답했다. 아이크와 결별 후 몇 차례 실패를 겪었지만, 1984년 발표한 앨범 ‘Private Dancer’의 수록곡 ‘What’s Love Got to Do with It’으로 폭발적 인기를 누렸다. 그의 나이 45세 때다.

임진모 평론가는 “1970∼80년대 미국은 여성의 사회적 진출이 많지 않았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40대 티나 터너의 재기는 팝시장 내 우먼 파워를 키우는 동시에 사회적 변화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꾸준한 음악 활동을 이어온 터너는 그래미 수상 12회, 후보지명 13회라는 빛나는 업적을 남겼다. 그중 6번은 아이크와 이혼 후 홀로서기를 시도한 1980년대에 수상했다. 그 결과, 1986년에는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에 이름을 새겼고,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는 아이크 앤드 티나 터너의 멤버(1991년)로, 솔로(2021년)로 두 차례 헌액됐다. 그는 2008∼2009년 월드 투어 공연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한 후, 2013년 스위스로 귀화했다.

그의 죽음에 록밴드 롤링스톤즈의 믹 재거는 터너와 함께 찍은 사진을 SNS에 올리며 “나의 멋진 친구 터너는 엄청난 재능을 지닌 퍼포머이자 가수였다”고 평했다. 카린 장-피에르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슬픈 소식”이라며 “그를 사랑한 공동체와 음악산업에 막대한 손실”이라고 추모했다.

안진용 기자 realyo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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