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종의 시론]반도체 세계대전과 국가 총력전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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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입력 2023-05-26 11:49
업데이트 2023-05-26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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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종 산업부장

‘한강 기적 멈췄다’ 지적 현실화
내수·투자·수출 동시 부진 우려
‘상저하고’ 전망 갈수록 비관적

‘칩 워’ 격화 반도체 산업 위협
통상 전략과 기술 초격차 절실
배수진 각오로 경쟁력 키워야


10년 전인 2013년 글로벌 컨설팅업체 맥킨지는 ‘제2차 한국 보고서, 신성장 공식’에서 한국 경제를 이렇게 조명했다. ‘한강의 기적은 멈췄다. 한국 경제는 뜨거워지는 물속의 개구리와 같다. 북핵보다 한국 경제가 위기다.’ 그뿐이었다. 그 뒤에도 저성장으로 치달았다. 성장동력을 잃으면서 성장률 하락은 마치 대세처럼 굳어졌다. 수출 부진과 소비 회복세 둔화로 정부, 한국은행이 내심 기대를 걸었던 상저하고의 올해 경기 패턴도 흔들리고 있다.

급기야 한국은행은 25일 수정 경제전망을 통해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1.6%에서 1.4%로 또 낮췄다. 삼성과 SK하이닉스의 의미 있는 감산 전략 속에 내심 기대했던 반도체 경기 회복과 중국 리오프닝 효과는 늦어지고 있다. 삼성과 하이닉스가 떠안고 있는 재고만 각 32조, 17조 원이다. 그사이 나라 곳간은 비고 있다. 세수 펑크로 인해 경기를 방어할 실탄조차 부족한 형국이다. 맥킨지의 진단과 우려는 적중했다. 밖으로 눈을 돌려 보니 경쟁국 중 하나였던 대만의 1인당 국민총소득(GNI)은 20년 만에 한국을 앞질렀다. 대만보다 한국 경제의 기초체력, 펀더멘털이 약화했다는 방증이다.

더욱 우려스러운 점은 반도체 산업을 둘러싼 거센 파도의 방향조차 가늠하기 쉽지 않다는 점이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 다툼에 일본까지 반도체 부활을 외치며 재건에 나섰다. 반도체 설계 원천기술을 갖춘 영국도 가세했다. 미·중 간에 샌드위치처럼 낀 한국 반도체 기업의 부담은 날로 커진다. 일본 히로시마에서 지난 21일 열렸던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서 합의된 대중국 공조 강화, 마이크론에 대한 중국의 구매 제재, 다시 미 의회의 대중 제재 공동 대응 등 치고받는 난타전은 앞으로 더 표면화될 게 분명해졌다. 중국에서의 네이버 접속 불능 논란도 중국은 모른 체 뒷짐을 지고 있지만, G7 회의 이후 한·중 간 관계와 관련돼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제1·2차 세계대전이 전 세계 물리력이 정면으로 충돌한 정점이었다면 반도체 전쟁은 화력만 없지, 인명을 앗아가고 사회기반시설이 처참히 파괴되는 참상과도 결과적으로는 크게 다를 바 없다. 국가 경제의 쇠퇴와 나락, 종속을 불러 낙오하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전가의 보도 같지만, 다시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게 반도체 기술의 초격차 확보다. 산업연구원(KIET)이 권고했지만, 약점을 보완하고 강점을 더욱 강화하는 선택과 집중 전략 아래 시스템 반도체 생태계 선순환 체계 구축, 소재·장비 분야 인재 육성, 첨단센서와 인공지능(AI) 반도체 같은 차세대 반도체 분야 육성 등을 서둘러야 한다. 신(新)경제안보 시대에 걸맞은 정교하면서도 기민한 통상 전략은 생명줄과도 같다. 허를 찔린 후 뒤늦게 수습, 대응하느라 부산을 떨지 말고 미·중·일 및 유럽연합(EU)의 반도체 전략을 정교하게 연구해 우위 전법과 전술을 어떻게 구사할지 연구해야 한다. 그러려면 관련 부처의 담당 조직도 그렇고 통상 조직에도 첨단산업 태스크포스(TF)를 꾸리는 등의 컨트롤타워와 안전장치가 필요하다. 지금처럼 1년이나 6개월 단위로 쳇바퀴 돌리듯 순환보직을 해서는 곤란하다. 전문성만 떨어질 뿐이다.

경기 연천군 장남면의 고구려 성곽 호로고루(瓠蘆古壘)성은 삼국시대에 당까지 가세해 서로 엎치락뒤치락하며 국경 하천 역할을 했던 임진강의 패권을 두고 200여 년간 수많은 격전이 벌어진 최전방 요새다. 발굴해 보니 고구려 성벽, 신라 성벽이 따로 있었다. 뺏고 빼앗긴 후 증축하고 보수해서 활용했다는 의미다. 최근 현장을 찾았다가 왜 호로고루성이 중요한지 설명을 들었다. 조수간만의 영향을 받는 감조구간(減潮區間)이 상류에 자리해 배를 타지 않고 임진강을 도강할 수 있는 최초의 여울목에 접한 가장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라는 것이다. 임진강의 폭과 깊이가 예사롭지 않은데 호로고루성 앞에 오면 얕아지고 그 짧은 구간은 배가 아닌 말을 타고 건널 수 있다고 했다.

방어하기도 좋고 공격하기도 좋은 길목이 호로고루성이었다. 반도체 산업을 사수하고 경쟁력을 보완하며 목을 지키는 전략을 추진해야 혼돈에 빠진 한국 경제의 좌표를 명확히 제시할 수 있다. 실기한 후 돌아올 부메랑은 뼈아프고도 치명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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