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와 시각]엔비디아 별의 순간을 쏘다

  • 문화일보
  • 입력 2023-06-09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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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환 산업부 차장

“게임용 그래픽처리장치(GPU)가 인공지능(AI)의 두뇌가 될지 누가 알았겠습니까?”

2016년 여름 한 게임업체 사람들과 점심을 먹다가 GPU 얘기가 나왔다. GPU는 당시 한국의 프로바둑 기사 이세돌 9단에게 완승을 거둔 구글 AI 알파고의 ‘두뇌’ 역할을 하는 반도체였다. GPU는 이름도 생소하던 엔비디아라는 업체가 공급했다. 알파고 충격을 계기로 사람들의 입길에 엔비디아의 이름이 막 오르내리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1993년 설립된 엔비디아의 첫 GPU가 나온 건 1999년이었다. 초기 GPU는 게임용 그래픽처리장치로 이름을 알렸다. 첨단그래픽으로 무장, 고사양을 요구하는 게임들이 증가하면서 GPU도 성장세를 구가했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중앙처리장치(CPU)의 보조적 장치에 머물렀던 GPU는 알파고의 두뇌로 활용되며 AI 반도체로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사람들의 시선은 엔비디아보다는 구글에 쏠렸다. 당시 모바일에서 안드로이드 운영체제(OS)를 기반으로 한 순환 생태계 구축을 끝낸 구글이 AI 생태계까지 장악할 것이란 두려움이 전 세계 정보기술(IT) 업계 사이를 유령처럼 떠돌았다. 생태계 구축은 글로벌 빅테크의 성패를 결정하는 요인이다. 한 번 생태계가 가동되기 시작하면 ‘자기 강화적 순환고리(Self-reinforcing feedback loop)’를 타고 눈덩이처럼 덩치를 키울 수 있다. 생태계에 진입한 사용자를 ‘가두리 양식장’처럼 가둬 빠져나오기도 쉽지 않다.

사람들의 시선이 머물지 않는 사이 엔비디아는 조용히 힘을 키웠다. 엔비디아 역시 자신만의 생태계 구축에 힘을 쏟고 있었다. 엔비디아는 게임용으로 활용되던 GPU를 범용으로 쓸 수 있게 하기 위해 엔비디아 전용 AI 프로그래밍 SW 쿠다(CUDA)를 개발해 대학과 개발자 커뮤니티에 무료로 배포했다.

초반엔 부진했고 투자자들도 회의적이었지만, AI 혁명이 본격화하면서 AI 개발자에게 쿠다는 필수불가결한 도구가 됐다. 쿠다는 엔비디아 제품에서만 작동한다. AI 엔지니어들은 엔비디아의 가두리 양식장을 벗어나기 힘들어졌다. AI 프로그래밍을 위해 엔비디아의 SW에 의존하다 보니 GPU나 서버도 엔비디아 제품을 쓸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선순환 고리도 이미 작동 중이다. 엔비디아의 경쟁력이 강해지면서 쿠다 사용자 수가 다시 가파르게 늘고 있기 때문이다. 쿠다의 누적 다운로드 건수는 4000만 건에 달한다. 2022년에만 2500만 건의 다운로드가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엔비디아는 점점 대체 불가능한 기업이 되고 있다. 엔비디아의 AI 반도체 점유율은 92%에 달한다.

사실 이 글은 배가 아파 시작됐다. 최근 누군가 기자에게 엔비디아 주식으로 대박 난 얘기를 했다. 엔비디아는 올해만 160% 넘게 올랐다. 애플, 구글이 포함된 시가총액 1조 달러 클럽에도 가입했다. 알파고가 휩쓸고 간 2016년 말부터 1300%가 넘는 수익률이다.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이라는 시를 쓴 시인 역시 주식에 땅을 친 경험이 있지 않을까.
임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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