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식축구 스타 O J 심슨, 전처 살인 혐의 100㎞ 추격끝 체포[역사 속의 This week]

  • 문화일보
  • 입력 2023-06-12 08:57
  • 업데이트 2023-06-12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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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1994년 6월 17일 전처와 그녀의 남자친구를 살해한 혐의로 체포된 미식축구 스타 O J 심슨이 1995년 10월 3일 그를 변호했던 프랜시스 리 베일리(왼쪽), 조니 코크란(오른쪽)과 함께 무죄 평결을 받고 주먹을 불끈 쥐며 기뻐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 역사 속의 This week

1994년 6월 17일, 미국 캘리포니아 고속도로에서 십여 대의 경찰차가 차량 한 대를 뒤쫓고 있다. 방송사들은 헬기를 동원해 추격전을 생중계했다. 경찰 출두 약속을 어기고 도주하던 사람은 1970년대 미국프로풋볼(NFL) 최고의 러닝백으로 이름을 날린 미식축구 스타로 1985년 명예의 전당에 올랐고, 영화배우로도 활동하며 인기를 끌었던 O J 심슨이었다. 경찰은 100㎞를 뒤쫓은 끝에 그를 살인 혐의로 체포했다.

닷새 전인 12일 밤, 심슨의 전처 니콜 브라운과 그녀의 남자친구 론 골드먼이 로스앤젤레스(LA) 고급 주택에서 온몸이 흉기에 찔려 숨진 채 발견됐다. 심슨의 양말에 브라운의 혈액이 묻어 있었고, 그의 차 안에서도 혈흔이 검출됐다. 현장에 떨어진 피 묻은 왼쪽 가죽장갑에서 심슨과 브라운, 골드먼의 DNA가 확인됐고, 나머지 한 짝이 심슨의 집에서 발견되는 등 여러 정황과 증거들이 그를 범인으로 지목하고 있었다.

기소된 심슨은 1000만 달러를 들여 ‘드림팀’ 변호인단을 꾸렸고, TV로 중계된 세기의 재판에서 무패 에이스 검사팀과 치열한 법정 공방을 벌였다. 검찰 측이 사건 현장에서 채취된 DNA가 심슨의 것과 99.99% 확률로 일치한다고 하자 변호인은 나머지 가능성 0.01%를 LA 인근 지역 인구 300만 명에 적용하면 300명이 일치할 수 있다는 점을 부각시켰다. 게다가 검사가 껴보라고 한 결정적인 증거물이던 가죽장갑이 심슨의 손에 너무 작았고, 변호사 조니 코크란은 “맞지 않으면 무죄다”라고 외쳤다.

변호인단은 살인 사건을 인종차별 문제로 몰고 갔다. 당시는 2년 전에 일어난 LA 폭동의 여파가 아직 가시지 않은 시기였는데 피 묻은 장갑을 발견한 형사가 인종차별주의자임이 드러났다며 증거 조작 의혹을 제기한 것이다. 또한 증거물 확보와 보존에서 경찰 수사의 허점을 지적해 유력한 물증들은 빛을 잃었다. 12명 중 흑인이 9명인 배심원단은 사건 발생 1년이 지난 1995년 10월 증거 불충분으로 심슨에게 무죄 평결을 내렸다. 평결 이후 ‘유전무죄’라는 비판과 함께 배심제에 대한 논란이 일기도 했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O J 심슨 사건’은 결국 미제 사건으로 남게 됐다. 형사재판에선 이겼지만, 유족이 제기한 민사소송에선 살인 혐의가 인정되면서 패소해 3350만 달러의 배상금을 지급하라는 명령이 내려졌다. 이후 심슨은 2007년 강도와 납치 혐의로 검거돼 이듬해 33년형을 선고받았고, 9년간 복역한 뒤 가석방됐다가 2021년 가석방 기간이 끝나면서 74세에 완전히 자유의 몸이 됐다.

김지은 기자 kimjieun@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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