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충남의 시론]인구 위기 대응이 근원적 개혁이다

  • 문화일보
  • 입력 2023-06-21 11:49
프린트

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김충남 사회부장

지난해 합계출산율 0.78명 충격
출산·육아·여성 고용 개선 없고
경제·사회적 요인에 ‘저출산 덫’

인구위기 대응 시간 많지 않아
획기적 정책에 3대 개혁 병행
미래 위해 정치권 적극 나서야


기자 생활 초년병 시절이던 2001년 태어난 첫아이는 거의 전적으로 아내가 키웠다. 주중 격무와 야근, 늦은 시간까지 이어진 취재원과의 술자리로 주말엔 밀린 잠을 때우기에 바빴다. 아이가 아프다며 귀가를 재촉하는 아내 말을 외면하고 술자리를 선택한 ‘간 큰 남자’이기도 했다. 이렇게 ‘독박 육아’에 지친 아내는 둘째를 낳고는 회사를 그만뒀다. 육아와 뒤늦은 학업을 병행하며 학위를 받기도 했지만, 돌아온 건 ‘경단녀(경력단절여성)’라는 딱지였다.

2022년 전 세계 최저인 0.78명의 합계출산율(여성 한 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출생아 수)이 보여주듯 우리나라는 초(超)저출산 시대를 살고 있다. 저출산의 직접적인 원인은 여성을 둘러싼 환경에 있다. 아직도 여성에게 편중된 육아, 믿고 맡길 수 있는 양육 시설의 부족, 남성들이 쓰기 힘든 육아휴직 제도, 미성숙한 가족 친화적 기업문화, 여성의 낮은 경제활동참가율(2021년 59.9%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31위) 등이 결혼과 출산을 꺼리게 한다. 호주국립대 사회학과 피터 맥도널드 교수는 특히, 고학력 여성의 사회 참여가 증가하는 만큼 남성의 가사노동과 자녀 돌봄이 더 늘어나야 한다는 가정 내 성(性) 평등 수준의 개선을 제언했다. 기자가 부끄러운 과거를 고백한 이유다.

심리적으로는 자녀 세대의 삶이 자신보다 더 못할 것이라는 자괴감을 저출산 원인으로 본다. 경제·정서적으로 자녀를 키울 준비가 되지 않으면 결혼과 출산을 연기 또는 포기하는 밀레니얼 세대의 ‘완벽한 부모 신드롬’(허지원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 때문이다. 치솟은 집값, 교육 양극화를 낳은 사교육비(지난해 기준 26조 원), 청년층의 구직난 등은 사회·경제적 원인이다. 수도권 집중에 따른 청년층의 치열한 생존 경쟁이 근본 원인으로 지목되기도 한다.

어떤 연구자들은 한국·중국·일본·대만 등 동아시아 국가에 두드러진 저출산 현상 원인을 서열·학벌 중시와 가부장제 문화를 특징으로 하는 유교주의에서 찾는다. 오는 29일 열리는 문화미래리포트(MFR) 국제포럼의 주제 발표자인 볼프강 러츠 오스트리아 비엔나대 교수는 ‘초저출산의 덫(low-fertility trap)’으로 개념화했다. 비혼·만혼·노키즈 등에 따른 저출산 인구구조로의 변화와 결혼·출산 인식의 악화, 사회·경제적 요인이 중첩돼 덫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는 것이다. 2006년부터 16년 동안 280조 원을 저출산·고령화 대응에 쏟아부었음에도 효과를 내지 못한 정책 실패도 빼놓을 수 없다. 백가쟁명식 진단이다. 사실 이 모든 요소가 상호 영향을 주면서 현재의 인구 위기를 가져왔다.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매년 20만 명대 출생아와 25∼59세가 전체 인구의 50% 이상을 유지할 수 있는 향후 10년을 인구 위기 대응의 ‘골든 타임’으로 본다. 하지만 치밀한 기획과 실행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곧 위기가 닥친다. 양육·돌봄, 일·가정 양립, 양성평등 및 가족복지, 여성 고용 등의 분야에서 저출산 완화를 위한 획기적 정책이 나와야 한다. 지지부진한 정부의 노동·연금·교육 개혁에도 과감한 드라이브가 걸려야 한다. 학령인구 급감에 대응해 공교육 정상화와 사교육비 경감, 대학 구조개혁 등을 통한 경쟁력 있는 글로벌 시민 양성 교육이 이번 ‘공정 수능’ 파문을 계기로 사회적 어젠다가 돼야 한다. 노동시장 유연성 확보를 위한 근로시간·임금체계 개편과 정규직·비정규직 등 근로 형태에 따른 노동시장 이중구조 완화 등 노동 개혁도 절박하다. 고령화 사회, 정년 연장 문제와 연계된 ‘뜨거운 감자’ 연금 개혁 역시 시간표를 앞당겨야 한다. 지방 소멸 대응과 수도권 집중 완화 정책, 안정적 주거를 위한 부동산 정책도 성공해야 한다.

다행히 인구 정책을 총괄하는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모든 문제를 망라한 범부처 ‘인구정책기획단’을 최근 발족했다. 인구 문제 대응을 계기로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한 총체적이고 강력한 개혁을 추진할 정치·사회적 여건이 조성된 것이다. 무엇보다 정치권이 대오각성해야 한다. 근본 개혁 과제에 정파적 이해관계와 표 계산을 앞세우지 말고 미래 세대를 위한 정책 숙의와 입법화에 머리를 맞대길 바란다.
주요뉴스
기사댓글
AD
count
AD
AD
AD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