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호의 시론]가계부채에 어른거리는 회색 코뿔소

  • 문화일보
  • 입력 2023-06-28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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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호 논설고문

두 달 연속 가계부채 늘어나고
서울 아파트 값·거래량 반등
‘회색 코뿔소’ 외면하는 징조

“미 상업용 부동산 붕괴” 경고
자영업 대출 연체율도 1% 넘어
알고 당하는 위기가 더 위험


세계적 큰손 투자자와 싱크탱크들이 가장 신경을 쓰는 지표는 미국 소비자물가와 실업수당 청구 건수다. 시장 영향력이 크고 중요하기 때문이다. 요즘 이들이 눈여겨보는 또 하나의 지표는 한국의 무역수지다. 세 가지 이유에서다. 무엇보다 신속성이다. 한국의 수출입은 전자결제시스템(EDI)으로 자동화돼 있어 하루 만에 통계가 나온다. 또 반도체 비중이 20%여서 세계 경기에 가장 예민한 지표다. 대중국 수출 비중이 23%나 돼 중국 경제 동향도 간접적으로 짚어볼 수 있다. 이제 한국은 ‘새우’가 아니다.

무역적자와 함께 한국이 도마에 오르는 단골 이슈는 가계부채다. 특히 총부채상환비율(DSR)이 뇌관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한국을 콕 찍어 가계부채 4대 위험 국가로 지목하면서 12%를 넘는 DSR을 걸고넘어졌다. 미국·일본·독일 등은 절반 수준인 6∼7%대다. 국제결제은행(BIS)도 국내총생산(GDP) 대비 102%를 기록한 세계 최고 수준의 가계부채 비율에 적신호를 보냈다. IMF의 기타 고피나스 제1부총재는 공개적으로 “한국은 기준금리를 더 높여야 한다”고 압박했다. 동네북 신세다.

한국 경제가 순항하려면 2∼3%대 성장, 물가상승률 2%, 무역수지 흑자가 필요조건이다. 어느 것 하나 삐걱대도 탈이 난다. 지금처럼 기초체력이 약해진 상태에서 금리까지 오르면 가계부채가 경제를 짓누르는 이른바 ‘회색 코뿔소’가 될 수밖에 없다.

해외의 회색 코뿔소라면 단연 미국의 상업용 부동산이다.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최고경영자는 “상업용 부동산 시장이 빠르게 붕괴 중”이라며 “심각한 위기가 닥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베스트셀러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의 저자인 로버트 기요사키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뛰어넘는 최악의 오피스 빌딩 폭락 사태가 온다”고 경계했다. 특히 올해 만기가 도래하는 1400억 달러(약 181조 원) 규모의 상업용부동산저당증권(CMBS)이 태풍의 눈이다.

흔히 말이 씨가 된다고 한다. 실제로 고정 금리 중심의 미 주택 시장과 달리 변동 금리 위주의 상업용 부동산은 고금리 직격탄을 맞고 있다. 작년 초만 해도 3%를 밑돌던 대출 금리가 7∼8%로 치솟으면서 임대사업자들이 월세로 이자를 감당하기 어려워졌다. 미국 1분기 오피스 공실률은 12.9%, 5월 CMBS 연체율은 3.62%나 된다. 상업용 부동산 대출의 70%를 차지하는 미 중소은행들에 비상벨 소리가 요란하다.

지난 3월 실리콘밸리은행 파산을 능가하는 미국 부동산발(發) 뱅크데믹(은행+팬데믹)이 언제 태평양을 건너올지 모른다. 문제는 한국의 위기 불감증이다. 지난 2개월 연속 가계대출이 늘어났다. 정부의 특례보금자리론(장기저리주택구입자금) 확대로 40조 원이 단계적으로 풀려나가면서 서울 아파트값은 4개월 연속 상승하고 거래량도 늘어났다. 금융감독원이 대출금리를 6%에서 4%대로 낮추도록 압박한 것도 시장에 잘못된 ‘부동산 불패’ 시그널을 불어넣었다. 너무 일찍 허리띠를 푸는 조짐들이다.

그나마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꾸준히 금융 불균형과 부동산 대출 연체 위험을 경고하고 있다. 좋은 말로 금융 불균형이지, 가계부채가 줄기는커녕 늘어나는 게 보통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실제로 1분기 말 국내 자영업자 대출은 1034조 원에 이르고 연체율은 8년 만에 가장 높은 1%를 기록했다. 저축은행은 5%까지 치솟았다. 벼랑에 몰려 제2금융권 자금까지 끌어쓴 자영업자들이 더 이상 버티지 못한 것이다. 3개 이상 금융회사에서 돈을 빌린 다중채무자의 ‘빚 돌려막기’식 대출도 737조 원을 넘겼다. 여기에다 9월에 코로나 대출 상환유예조치까지 종료되면 한계선상의 자영업자들은 더 이상 비빌 언덕이 사라진다.

도무지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일이 일어나는 것을 ‘블랙 스완’이라고 한다. 2008년의 미국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나 2020년 코로나 사태 등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검은 백조보다 더 무서운 게 알고도 당하는 ‘회색 코뿔소’의 습격이다. 눈에 잘 띄는 코뿔소는 미리 거리만 잘 유지하면 피할 수 있다. 문제는 한번 돌진해오면 어찌해야 할지 몰라 무방비로 더 크게 당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회색 코뿔소가 미국 상업용 부동산과 한국의 가계부채를 향해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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