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탄핵 대상은 국회다[이현종의 시론]

  • 문화일보
  • 입력 2023-07-28 11:45
프린트
이현종 논설위원

李 행안, 헌재 전원일치 기각
민주당의 습관성 탄핵소추病
한동훈 원희룡 이동관도 별러

재난·참사 법안은 손도 안 대
政爭 법안만 죽기살기식 투쟁
민생·재난 법안에 열정 쏟아야


국무위원으로서는 처음으로 탄핵 소추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9명 재판관 전원 일치로 기각 결정을 내림으로써 167일간의 장관 공백이 끝났다. 이미 야당이 탄핵안을 낼 때부터 내부에서조차 인용될 것이라고 예측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래도 진보 성향 재판관 몇 명은 인용할 것이라는 기대도 있었지만 엇나가고 말았다. 결정문에서도 이 장관의 부적절한 발언이 공무원의 품위 유지를 위반했다고 지적한 일부 재판관도 직을 그만둘 만큼은 아니라는 것이 공통된 의견이다. 탄핵은 공직자가 헌법과 법률의 명백한 위반이 있을 때 하는 것인데 이미 특별수사본부가 이 장관에 대해 무혐의 처리를 내리는 등 정무적 책임은 있지만, 법적 책임을 묻는 것은 무리라는 것이 법 상식이다.

그런데도 야당이 무리하게 밀어붙인 것은 당시 대장동, 성남FC, 쌍방울 대북 송금 사건 등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대한 검찰 수사가 한창 진행 중이라는 정치적 상황이 크게 고려됐다. 또, 세월호처럼 핼러윈 참사가 윤석열 정권을 흔드는 유용한 수단이 될 것이라는 판단도 있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심판 결정문에서 ‘모든 법 위반을 이유로 공무원을 탄핵한다면 국정 공백, 국민 간의 갈등 등으로 국익에 반한다’라며 탄핵 소추에 신중해야 한다는 경구(警句)도 민주당엔 들리지 않았다. 168석과 친야 무소속 등을 합하면 개헌과 대통령 탄핵을 빼놓고는 뭐든지 할 수 있는 힘을 주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장관 공석 167일 동안 대형 수해가 발생하는 등 국정 공백이 있었지만, 야당의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았다.

이재명 대표는 전원 일치 기각에도 “책임지라고 요구한 것이 그렇게 잘못됐습니까. 이렇게 뻔뻔한 정권 보셨습니까. 후안무치에도 정도가 있습니다”라고 되레 큰소리쳤다. 마치 각종 사법 리스크와 주변인들의 잇단 극단적 선택·구속에도 대표 자리를 지키고 있는 자신에게 한 얘기처럼 들린다. 무리한 탄핵 소추에 대한 반성과 사과는 찾아볼 수 없다. 나아가 민주당은 ‘검수완박’ 헌재 결정을 비판한 한동훈 법무부 장관, 서울∼양평 고속도로 사업을 중단시킨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에 대한 탄핵을 공공연하게 주장한다. 심지어 이동관 대통령 특보가 방송통신위원장이 되면 바로 탄핵안을 내겠다고 벼르고 있다. 이젠 민주당에서 탄핵은 습관성 고질병이 돼 버렸다.

야당은 이 장관이 재난총괄 책임자로서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탄핵 소추까지 했다. 그렇다면 국회에서 제1 당인 민주당은 자신들의 직무를 얼마나 잘 수행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핼러윈 참사 이후 최근까지 여야 국회의원들이 재난 및 안전 관련 법안을 제출한 것이 약 40건에 이른다. 이 중 20건 이상이 핼러윈 참사처럼 인파 재난 예방과 관련된 것이다. 수해 관련 법안도 지난 3년 동안 30여 건이 발의됐다. 그러나 대부분 법안이 상임위에 계류 중이다. 이번 수해가 심각하니까 몇몇 법안을 부랴부랴 처리하고 있는데, 그때뿐이다. 수해 소관 국회 상임위인 민주당 소속 박정 환경노동위원장은 이 와중에 베트남 외유를 떠났다가 하루 만에 돌아왔다. 장관에게 그렇게 호되게 추궁하던 이들이 정작 자신들의 입법 임무는 내팽개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 장관에게 들이댄 잣대를 적용한다면 직무유기를 한 국회가 탄핵감이다.

민주당은 진짜 재해나 참사에 필요한 법안은 무시하고 ‘이태원참사특별법’ 처리에만 집중하고 있다. 지난 9년 동안 세월호 참사에 대한 검찰·경찰·감사원·특검 등 각종 조사가 9차례 진행됐지만, 특별히 새로운 내용이 밝혀진 것은 없다.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는 무려 4년 가까이 547억 원의 예산을 쓰고 지난해 9월에야 활동을 마무리했다. 심지어 해난 사고는 더 늘어난 것이 현실이다. 이태원특별법도 세월호와 똑같은 궤적을 밟아갈 가능성이 크다.

재난이나 참사가 발생하면 법과 제도를 고쳐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고, 그저 ‘재난의 정치화’로 이득만 보려는 행태가 문제의 핵심이다. 민주화유공자법처럼 정쟁 이슈는 죽기 살기로 단식·농성까지 하면서 관철하려는 열정의 10분의 1이라도 민생과 재난에 쓴다면 보다 나은 세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이현종 논설위원

주요뉴스
기사댓글
AD
count
AD
AD
AD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