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화웨이의 섣부른 반도체 굴기[이철호의 시론]

  • 문화일보
  • 입력 2023-09-15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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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호 논설고문

中 7나노 성공 과대평가 금물
EUV 없이 DUV로 양산 불가능
ASML, 대중 봉쇄 참가 불가피

EUV는 미·일·유럽 지식 합작
中 독자 개발 시도는 비현실적
한국엔 오히려 ‘위장된 축복’


화웨이가 7나노급 반도체를 장착한 ‘메이트 60’ 스마트폰을 발표하면서 중국에 ‘애국 소비’ 열풍이 불고 있다. 중국 정부는 공공 분야의 아이폰 사용을 금지해 ‘국뽕’ 기름을 부었다. 애플은 아이폰15 신제품 가격을 동결하는 극약처방으로 맞서고 있다. 그만큼 중국이 봉쇄망을 뚫고 7나노급 반도체를 생산한 것은 놀라운 일이다. 반도체 회로 설계 및 오류를 분석하는 전자설계자동화(EDA) 구축도 성공했다.

이에 대해 삼성전자의 반응은 쿨하다. 내부 보고서에 따르면 “대단한 발전이지만, 위협적이진 않다”는 분위기다. 미국은 2019년 네덜란드 ASML의 극자외선 노광기(EUV) 대중 수출을 금지했다. EUV는 심자외선 노광기(DUV)보다 파장이 14배 짧아 7나노 이하에는 필수 장비다. 그런데도 중신궈지(SMIC)는 구식 DUV로 7나노급 기린 9000s를 만들어 화웨이에 납품했다. SMIC의 량멍쑹 최고경영자(CEO)는 대만의 TSMC 출신이다. 2019년 TSMC가 DUV로 여러 번 나눠 식각하는 멀티패터닝을 통해 7나노 생산에 성공했던 것을 따라한 셈이다. 또, 중국은 3년 전 세계 EDA 시장의 90%를 장악한 미국 케이던스와 시놉시스의 임직원을 대거 스카우트했다.

‘화웨이 기적’ 뒤에는 4년 전 대만과 미국의 기술이 녹아 있는 것이다. 메이트 60이 상업적으로 성공할지도 의문이다. 전문가들은 TSMC 경험에 비춰 기린 9000s의 수율을 50%로 추산한다. 또, 멀티패터닝이 거듭되면 생산비용과 불량률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된다. 정부 보조금 없이는 양산이 어렵고, 손해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다.

앞으로가 더 문제다. 현재 노광장비 시장을 97% 장악한 ASML은 국적만 네덜란드일 뿐, 미국 캐피털그룹(15.28%)과 블랙록(7.69%)이 대주주다. 삼성전자도 0.7%의 지분을 갖고 있다. ASML이 처음에 미국의 대중 봉쇄에 반발했다가 결국 따라올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이에 맞서 중국도 화웨이·칭화대·중국과학기술원이 EUV 개발 동맹을 맺었다. 하지만 기술 독립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인류가 만든 기계 중 가장 정교한 장비’라는 EUV 뒤에는 글로벌 첨단 공급망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EUV의 부품 비중은 네덜란드 32%, 미국 27%, 일본 27%, 독일·프랑스·영국이 14%다. 미국의 광원 기술, 영국의 초진공 기술, 독일의 초정밀 반사광 거울이 없다면 작동이 불가능하다. 서방 세계 최일류 기술업체들의 교집합인 것이다. 설사 중국이 EUV 개발에 성공한들 미래가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시제품 제작은 몰라도 양산은 국제 경쟁력을 갖춰야 하는 또 다른 차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미 삼성전자와 TSMC는 3나노급 EUV 양산에 들어갔고, ASML은 2년 뒤 2나노용 하이렌즈 수차(NA) EUV 공급을 예고하고 있다. 머지않아 1나노용 EXE EUV 개발에도 착수할 예정이다. ASML의 재무 담당 로저 다센은 “누가 우리를 따라잡는다 해도 그때쯤 우리는 완전히 다른 곳에 가 있을 것”이라 장담한다.

중국의 7나노 자급자족이 대단한 일임은 틀림없다. 특히, 내구성과 신뢰성이 중요한 군사용·자동차용·가전제품용 반도체는 여전히 10∼30나노급이 대세다. 그렇다고 과대평가할 필요는 없다. EUV 없이 7나노 이하의 양산은 불가능하고, 구식 DUV도 정기적인 보수·관리 없이는 성능이 곤두박질한다. 아무리 보조금을 퍼부어도 생산비용과 불량률이 기하급수적으로 치솟을 수밖에 없다. 어쩌면 중국의 7나노 기적은 ‘마지막 정신승리’에 불과할지 모른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화웨이 쇼크에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다. 오히려 ‘위장된 축복’이라 여기며 가슴을 쓸어내린다. EUV 금수조치가 없었다면 중국이 무서운 속도로 추격해 왔을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화웨이의 섣부른 반도체 굴기로 미국의 경계감이 높아지고 제재 그물망이 더 촘촘해지는 게 다행스럽다는 분위기다. 그렇다고 마냥 안심하는 표정은 아니다. 언제 어디서 게임체인저가 툭 튀어나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만의 하나 탄소 나노 튜브가 현재의 실리콘 반도체를 대체할 수도 있고, 상온 초전도체가 개발되면 반도체 개념 자체를 완전히 뒤엎어 버릴 수도 있다. 반도체 업계의 긴장감이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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