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개면 나타났다 해 지면 사라질 무지개처럼… 분노, 노래로 풀자[주철환의 음악동네]

  • 문화일보
  • 입력 2023-09-25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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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철환의 음악동네 - 김수철 ‘일곱 색깔 무지개’

기억력 좋다는 칭찬을 들으면 경계심을 갖는다. “기억력이 좋은 게 아니고 좋은 걸 주로 기억하는 거죠. 취미 생활로 좋습니다.” 마음의 스트레칭을 위해서는 기억의 창고에 분노를 쌓아두지 말자. 마음속에 억울한 근육이 뭉쳐 있다면 노래로 푸는 방법도 익혀두자.

제목부터 ‘우린 풀 수 있어’(‘We Can Work It Out’)라는 노래가 있다. ‘너도 틀릴 수 있는데 여전히 넌 네가 옳다고 생각하잖아’(You can get it wrong and still you think that it’s alright). 전설의 비틀스가 내린 결론에 합창으로 대꾸하자. ‘친구야 인생은 아주 짧아. 소란만 피우고 싸움질할 시간이 도대체 어디 있냐. 그런 건 언제나 죄악이라고 생각해’(Life is very short, and there’s no time, for fussing and fighting, my friend, I have always thought that it’s a crime).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고? 그래서 노래가 필요한 거 아닌가.

나의 ‘좋은 기억 찾기’는 오늘도 노래 마을에서 출발한다. ‘젖먹이 때 목화밭 고향 집에서 엄마는 아기 바구니를 흔들어주셨지’(When I was a little bitty baby My mama would rock me in the cradle In them old cotton fields back home). 이 노래는 크리던스 클리어워터 리바이벌(CCR)이 1969년에 ‘리바이벌’한 곡이다.

하지만 내 기억의 회로에선 이분들보다 까까머리 중학생 하나가 먼저 등장한다. 교실마다 이른바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맡은 아이가 몇 명 있던 시절이다. 우리 반에서는 수용이가 단연 으뜸이었다. 별명이 ‘코튼 필즈’(Cotton Fields)였는데 이유는 단순했다. 오락 시간이면 불려 나와 ‘코튼 필즈’를 기가 막히게 잘 불렀다. 발음도 매끄러워서 혀에 기름을 바른 듯했다. 한편 나의 처지로 말할 것 같으면 ‘중2 때까진 늘 첫째 줄에 겨우 160이 됐을 무렵’(델리스파이스 ‘고백’)이었다. ‘미래의 노래채집가’답게 나도 도전장을 내밀었는데 비장의 카드는 영국 가수 클리프 리처드의 ‘얼리 인 더 모닝’이었다. 이 가수는 당시 한국 누나들의 가슴에 평지풍파를 일으킨 걸로도 유명하다. ‘고요한 내 가슴에 나비처럼 날아와서 사랑을 심어놓고 나비처럼 날아간 사람’(현철 ‘사랑은 나비인가 봐’). 아무튼 뜻도 잘 모르면서 그냥 발음만 따라 부르기에 급급했는데 나중에 의미를 알고 나서부터는 아침이 두 배로 든든했던 기억이 난다. ‘공기를 마시면 삶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 느끼게 돼’(When I feel the air I feel that life is very good to me).

얼마 전 ‘아침마당’(9월 19일)에 가수 김수철(사진)이 나왔는데 보자마자 내 입에선 ‘젊은 그대’보다 ‘코튼 필즈’가 먼저 새어 나왔다. 이유가 있다. 한때 선망의 대상이던 수용이의 친동생이 바로 김수철이기 때문이다. 숱한 히트곡이 있고 음악적 편력도 대단한 그의 신고식 무대는 1979년 6월 16일 TBC동양방송 주최로 열린 제1회 전국대학가요경연대회였다(1977년에 시작한 MBC 대학가요제를 의식하다 보니 이름이 좀 길어진 감이 있다). 한양대 야외음악당에 모인 각 대학 응원단을 흥분시킨 그 노래가 ‘일곱 색깔 무지개’다. 완성도는 물론 실험 정신이 돋보인 노래였고 금상까지 수상했다. 반복되는 가사는 고난의 유익함과 겸손의 중요함을 담고 있다. ‘비가 개면 나타나는 일곱 색깔 무지개 해가 지면 사라지는 일곱 색깔 무지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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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화밭’ 옆에는 ‘켄터키 옛집’이 있다. 그 노래 가사 중 일부(‘마루를 구르며 노는 어린 것 세상을 모르고 노나 어려운 시절이 닥쳐오리니 잘 쉬어라 켄터키 옛집’)가 김수철의 창작가요 ‘정신 차려’와 일맥상통한다고 느낀 적이 있다. 몇 번 따라 부르다 보면 정신을 잃은 사람들이 다시 목화밭에 나타날지도 모르겠다. ‘무엇이 그리도 크길래 욕심이 자꾸 커져만 가나 왜 잡으려고 하니 왜 가지려고 하니 자꾸 그럴수록 외로워져’(김수철 ‘정신 차려’).

작가·프로듀서· 노래채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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