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 큰조카가 군대 휴가때 찾아왔다고 반겨 주시던 고모님[그립습니다]

  • 문화일보
  • 입력 2023-09-27 08:54
  • 업데이트 2023-09-27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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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1965년 2월 고모와 고모부의 약혼기념 사진. 오래된 앨범 속에서 찾아냈다.



■ 그립습니다 - 고모 이도순 (1938∼2023)

정년퇴직한 지도 어언 5년이 지나고 내 나이 벌써 60대 후반을 향하고 있다. 수십 년 동안 다니던 직장에서 퇴직하며 우울함과 스트레스도 참 많이 받았다. 그래도 다행히 1365자원봉사센터와 사회공헌 일자리, 어르신 취업센터를 통해 자원봉사 활동도 해보고 사회공헌 일자리에 다니면서 용돈이라도 벌다 보니 하루하루가 보람 있고 즐겁다.

퇴직 이후에는 백팩에 간단하게 준비물을 담아 기차 타고 발길 닿는 대로 그동안 가보지 못했던 전국 여행을 해보는 것이 소원이었다. 그러나 그게 여의치 않았다. 두 딸이 결혼도 하지 않고 직장생활을 하다 보니 집에 있으면서 두 딸 뒷바라지와 운전도 해주고 있다.

이렇게 60대 후반을 보내고 있는데 몇 달 전에 부산에 사는 고모가 별세하셨다는 부고 문자가 왔다. 병원 진료로 부산까지 문상은 가지 못했지만, 막상 고모가 별세하셨다고 하니 눈물이 나고 너무 그립다.

고모는 첩첩산중 심산유곡의 땅, 쳐다보면 하늘만 보이는 고향에서 5남 2녀 중 셋째로 태어나 학교도 가보지 못하고 고생을 많이 하셨다. 부산에서 일하는 고모부를 만나 동래구 연산동 산기슭 달동네에서 어렵게 생활하셨다.

내가 강원도 동부전선에서 현역사병으로 군 복무를 할 때 푸른 바다와 초록빛 금수강산을 구경하고 싶어 속초에서 강릉, 삼척, 영덕, 포항을 거쳐 해안가로 달리는 버스를 타고 부산에 갔다. 가까운 친척이라고는 고모뿐이었다. 단출하고 청빈하게 사셨던 고모 집을 찾아가 고모 내외분과 사촌 동생들과 밤새도록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 가는 줄 모르게 하룻밤을 보냈다.

아버지는 장남이고 무뚝뚝하지만, 고모부와 고모는 자상해 저녁을 먹고는 연산동 달동네 산꼭대기까지 걸으면서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이야기들을 나눴다. 아름다운 항구도시 부산 시내의 야경을 바라보며 고모와 내 어린 시절을 추억 삼아 얘기했던 20대의 그 젊은 시간이 엊그제 같다.

그렇게 고모 집에서 하루를 보내고, 다음 날 순천까지 가는 고속버스를 타고 고향에 가려고 하니 고모 내외분이 같이 터미널까지 동행해 버스표를 끊어주셨다. 빈곤한 살림에도 친정 큰조카가 현역병으로 강원도에서 군 생활을 하면서 멀리 떨어진 부산까지 왔다고 얼마나 반가워하셨던지…. 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1980년 논산훈련소에서 5주간의 힘든 군사교육을 마친 후 부산에 있는 육군 병참학교에서 6주 동안 행정교육을 받을 때 아버지와 고모부 두 분이 면회를 오신 일도 생각난다. 딱딱하고 덜 익은 복숭아를 사서 검은 비닐봉지에 담아 오셨다. 이등병 계급장을 달고 왕성했던 패기와 군인정신으로 “멸공”이라고 우렁찬 목소리로 거수경례를 했다.

당시 면회를 오면 대부분이 어머니가 함께 와서 서로 얼굴 바라보며 가지고 온 음식을 먹으며 얘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그런데 남자 두 분이 면회 오면서 과일 자르는 칼도 가지고 오지 않아 어머니가 같이 면회 온 다른 병사들을 얼마나 부러워했던지. 지금도 그 당시를 회상해 보면 저절로 웃음이 나오는,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추억이다.

앨범을 뒤져보니 50여 년 전 두 분 약혼식 때 촬영했던 귀한 사진이 나와 추억이 되살아났다. 이제는 고모부와 고모 두 분 다 돌아가셔서 보고 싶어도 다시 뵐 수가 없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진다. 이렇게 빨리 떠나실 줄 알았다면 부산에 자주 놀러 가 즐거운 추억을 많이 만들었을 것을…. 이제 와 후회해도 너무 늦어 버렸다. 세월이 덧없이 흘러 정겨웠던 어르신이 한 분 한 분 떠나시니 슬프고, 보고 싶다. 우리네 삶이 무엇인지…. 추석 연휴에 몸 상태가 괜찮으면 부산에 내려가 고모 내외분 산소에 들러 술 한잔 올리고 오련다.

이응춘(전 공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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