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잘 버텨왔다”는 하정우, 그의 시간은 미래로 흐른다

  • 문화일보
  • 입력 2023-09-28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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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위기는 있다. 이 시기 몸을 잔뜩 웅크리는 이가 있는 반면, 당당히 맞서며 새로운 길을 닦는 이가 있다. 배우 하정우는 후자에 해당된다. 모두가 "영화의 위기"를 토로할 때 그는 여름 시장 ‘비공식작전’에 이어 추석 명절에는 ‘1947 보스턴’(감독 강제규)로 다시금 승부수를 띄운다. 성적은 기대에 미치지 못할 수 있다. 하지만 이기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이 싸움의 결과는 다음 싸움의 승패를 가르는 열쇠를 건넨다. 이렇듯 ‘영화인’으로서 하정우의 싸움은 충무로가 현 상황을 읽는 바로미터가 되고, 다음 개봉을 기다리는 영화들의 길잡이가 된다.

공교롭게도 하정우는 지난해에는 충무로가 아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플랫폼의 편에 섰다. 주연작인 ‘수리남’이 공개돼 글로벌 흥행을 누렸다. 그리고 이번에는 충무로의 편이다. 그 중책을 맡은 하정우를 추석 연휴 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우리나라만 극장 관객수 회복이 잘 안 되고 있다고 하더라. 한 번에 회복되긴 쉽지 않지만 조금씩 빌드업이 되고 쌓여나간다면 또다시 좋은 기회가 찾아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예전처럼 관객들이 극장에 찾아오는 좋은 극장 문화가 회복되길 바란다. 드라마 16부작도 1시간 안에 몰아보고, 요약본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100분에 가까운 콘텐츠가 어떻게 살아남아야 하는지 심도 있게 고민할 시점이다."

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영화 ‘1947 보스톤’

하정우의 어깨가 더 무거운 이유는 27일 개봉한 ‘1947 보스톤’이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를 지나 광복 후 처음으로 태극마크를 가슴에 달고 뛰어 금메달을 목에 건 마라토너의 이야기다. 하정우는 극 중 ‘국민적 영웅’인 손기정 역을 맡았다. 그의 동료인 남승룡은 배성우, 제자 서윤복은 임시완이 각각 연기했다.

"단순한 마라톤 영화이기 이전에 손기정 선생님이나 서윤복, 남승룡 선생님이 올림픽에 출전하기까지 여정과 드라마가 크게 다가왔다. 국가대표 선수들이 태극마크를 달고 출전하면서 느끼는 책임감과 무게감은 대단하다. 그 태극마크를 달기까지의 고뇌와 과정을 시나리오를 통해 접하며 ‘엄청나다’고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역사적 기록을 스크린으로 옮기는 건 어려운 일이다. 이미 대중이 결과를 알고 있고, 자칫 애국심을 고취하는 과정에서 ‘신파’로 흐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미 감독으로서 연출을 해본 하정우이기에 그 고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그가 이 영화를 택한 이유는 강제규 감독이라는 존재 덕분이다.

"강제규 감독님과 작업하고 싶었다. 같이 학교를 다니진 않았지만 제 대학 선배님이시기도 하다. 어릴 적부터 ‘레전드’셨는데, ‘강제규 감독님이랑 작품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출연 자체만으로도 출세한 느낌이다. 소재나 느낌이 클래식하지만 결과물을 보니 세련됐더라. 감독님의 고민의 흔적이 많이 보였다."

손기정을 연기한다는 것도 커다란 산이었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일장기를 달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기에, 시상대에서 화분으로 가슴의 일장기를 가려야 했던 손기정의 고뇌를 영화로 표현한다는 것은 엄청난 숙제였다. 하정우 역시 이런 부담을 숨기지 않았다.

"그 장면을 표현한다는 게 부담스러웠다. 그 역사적인 순간을 제가 연기할 자격이 있나 싶었다. 그걸 찍을 때 이상하리만큼 굉장히 마음이 무거웠다. 표정 하나하나, 서 있는 느낌이나 화분으로 일장기를 가리는 모든 순간이 조심스럽고 어려웠다. 제가 이 장면을 연기해서 영광이기도 하지만, 조심스러웠고 부담스러웠다."

올해 개봉된 ‘비공식작전’과 ‘1947 보스턴’은 그가 팬데믹 종식 전 촬영한 작품이다. 그래서 숙성의 시간도 가졌다. 그만큼 애착이 컸다. 영화는 흥행 스코어만으로 판단할 수 없다. 그 기록은 충무로의 역사가 되고, 하정우라는 배우를 구성하는 빼놓을 수 없는 조각이다. 이제 무사히 개봉까지 마치며 훌훌 털어낸 하정우는 뚜벅뚜벅 다음 행보를 밟고 있다. 감독이자 배우로서 영화 ‘로비’를 준비 중이다. ‘롤러코스터’(2013), ‘허삼관’(2015)에 이은 3번째 연출 도전이다. 올해는 그의 데뷔 20년이기에 더욱 의미있는 다음 단계다. ‘걷기 전도사’다운 거침없는 걸음이다.

"20년이라…, 시간이 정말 빠르다. 잘 버텨왔다. 저는 과거를 생각하기보단 미래를 생각하는 부분이 크다. 앞으로 배우로서 어떤 작품을 선택하고, 감독으로서 어떤 작품을 만들어 나갈지 생각해야 한다. 12월까지 촬영하는 ‘로비’는 내년쯤 공개할 수 있을 것 같다."

안진용 기자
안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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