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 옷 기워입으며 가족 건사한 어머니… 가을꽃 보니 더 보고싶어[그립습니다]

  • 문화일보
  • 입력 2023-10-10 09:09
  • 업데이트 2023-10-10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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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어머니(오른쪽)가 1986년 회갑을 맞은 아버지와 함께 케이크를 자르고 있다. 그립고 또 그리운 모습이다.



■ 그립습니다 - 조점분(1928∼2022)

밤새 잠을 설치게 했던 무더위도 지나고 풀벌레 울어대는 가을이 왔다. 아침저녁 불어오는 선선한 바람에 쓸쓸해진 마음은 그리움만 더해간다. 국화의 계절을 맞아 활짝 핀 색색의 꽃들이 향기로운 미소로 인사를 건네는데 정작 꽃을 좋아하셨던 어머니는 하늘나라로 자리를 옮겨 앉으셔 이 땅에 안 계시다. 비록 노환의 높은 연세로 가셨지만 떠나시고 나니 허전하여 마음 붙일 곳이 없고 세상이 텅 빈 것만 같다.

2022년 11월 18일 새벽 5시, 전화벨 소리에 불안한 맘으로 수화기를 들었다. “고모, 할머니가 숨을 안 쉰대…” 올 것이 왔나, 허겁지겁 짐을 꾸리며 언니와 동생들에게 전화하는데 떨리기만 할 뿐 눈물도 나오지 않았고 죽음도 믿기지 않았다. 바로 어제 엄마를 뵈었는데 그게 마지막이 될 줄이야. 유난히 날 한참 바라보시더니 내 손을 끌어다 엄마 손에 꼭 잡고 놓지를 않으셨다. 엄마는 내게 그렇게 작별인사를 하신 듯싶다.

“엄마, 잘 드셔야 해요. 입맛 없어도 조금만 더 드세요. 한 수저만 더…”

딸 넷에 아들 하나를 남부럽지 않게 잘 키우신 어머니는 아버지 사업 도탄으로 생계가 어려울 때도 오남매의 학업을 중단시키지 않으셨다.

부잣집 고명딸로 귀하게 자랐으나 우리들 키우시느라 갖은 고생을 마다치 않으셨다. 한번은 엄마 친구가 “딸들 인물 번번한데 이럴 때 돈이나 벌어오게 하지, 뭐에 써먹으려고 그리 아끼는지 모르겠네”라는 말을 했다가 엄마의 호통으로 우리 집에 발도 못 들여놓게 되었다. 마포 부자 소리를 듣던 우리 땅을 욕심내던 사람이 술 못 드시는 할아버지께 술을 먹인 뒤 서류에 도장을 찍게 하여 한겨울 집에서 쫓겨난 적도 있었다. 그때도 엄마는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대식구를 거느리고 작은 월세방을 얻어 억척스레 어려움을 헤쳐 나가셨다. 그때 아버지는 타국에 계실 때라 혼자 여자의 몸으로 우리 땅과 집을 되찾겠다고 법정에 드나들며 재판을 했지만 역부족으로 허사가 되고 말았다.

내겐 영화의 한 장면처럼 가끔 떠오르는 눈에 선한 모습이 있다. 엄마는 내의도 사 입지 않으시고 아버지의 헌 내의를 입으셨는데 상의야 그럭저럭 입으면 되지만 하의는 그대로 입을 수가 없어 터진 부분을 바늘로 꿰매야만 했기에 희미한 삼십 촉 백열등 아래서 바느질하던 모습. 그런 엄마가 너무 가슴에 아려 내가 직접 인도네시아 아버지 회사의 사장님께 편지를 보낸 적이 있다. 사장님께서 그 편지를 읽고 감동을 받아 엄마에게 초청장을 보내 동생과 엄마는 아버지 곁으로 가게 되었고, 할머니 할아버지 때문에 못 간 언니, 오빠와 나는 한국에 남게 되었지만 조금도 서운하지 않았다.

내겐 우상 같았던 엄마,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양산을 받쳐 든 엄마가 교문에 들어서면 운동장 전체가 환했다. 그런 엄마의 늙고 노쇠해 병든 모습은 인정하기 싫었다. 내가 등단하여 시인이란 이름을 얻었을 때 엄마는 “네가 어릴 적에 오른쪽 손바닥에 시라는 글자가 있다고 해서 보니 정말 그런 것 같더구나. 아마도 네가 시인이 되려고 그랬나 보다” 하시며 몹시 기뻐하셨다.

요양원에 가신 지 한 달, 매일 가는 딸보다 가끔 들르는 아들을 더 반가워하셨던 엄마, 그렇게 깔끔하신 분이 차츰 대소변 실수가 잦아져 갔다.

언제나 날 믿으셨고 통장 비밀번호도 내게만 알려주시고 종당에는 자식들 모두의 이름을 ‘애진’이라고만 부르신 엄마.

향년 94세, 노환이라고 오래 사셨다고 다들 호상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난 부모의 상에는 호상이란 없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오래 사셨어도 부모의 영면은 맘 한쪽이 떨어져 나가는 슬픔이니까.

딸 이애진(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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