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 오르면 늘 생각나는… 아버지의 처연한 눈물방울[그립습니다]

  • 문화일보
  • 입력 2023-10-12 08:56
프린트

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 그립습니다 - 신문기자 출신 이학주 (1934~2018)

5년 전 세상을 뜨신 아버지는 깐깐한 ‘꼰대’이자 오만한 신문기자셨다. 우리 경제가 부흥하기 시작한 1960·70년대에도, 아버지는 물질적 풍요에는 관심 없이 올곧은 청빈만을 삶의 가치로 생각하셨다. 이처럼 경제적 윤택함은 자못 부족했으나, 당신의 그 정신은 늦가을 서릿발 같은 기자 근성으로 똘똘 뭉쳐, 투박하게 표현하자면 평생 까칠한 삶을 살아오셨다.

3남 1녀의 자식들은 당연하거니와, 어머니는 물론 두 분의 삼촌과 두 분의 고모에게도 매우 엄격하셨다. 가족들에게만 그러했던 건 아니었다. 행여 우연히 길거리에서라도 젊은 청춘들의 치기와 잘못된 행동을 보면 때와 장소를 상관하지 않고 나무라고 가르치려 하셨다. 그야말로 ‘라떼’를 입에 달고 살았던 엄격한 꼰대였으며, 아무리 억울하고 슬픈 일을 마주해도 눈물 한 방울 보이지 않는,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는 독하디독한 분이셨다. 하여, 당연히도 우리 4남매에게 아버지는 늘 경외의 대상이었다.

그렇게 무섭고 두려웠던 아버지, 그 아버지가 설악산에 오면 늘 생각이 난다. 젊은 시절, 그러니까 내 나이 스물네댓살 무렵 아버지와 단둘이 설악산에 올랐을 때 목격한 당신의 쓰리고 처연한 눈물방울, 내 기억으로 당신께서 떨군 평생 단 한 번의 눈물방울이 눈앞에 떠오르기 때문이다.

당시 아버지는 모 언론사에서 자리를 옮겨 한 경제신문에 재직 중이셨다. 아마 1981년 언저리가 아닐까 싶다. 자세한 연유는 알 수 없으나, 그때 아버지와 단둘이 설악산에 오게 됐다. 지금 돌이켜보건대 오색약수 쪽에서 새벽에 출발해 대청봉을 지나 공룡능선을 거쳐 비선대 쪽으로 하산하는 무박의 좀 빡빡한 산행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하늘은 차디찬 얼음처럼 맑고 투명했으며 대기는 날 선 칼날처럼 시리고 선연한 깊은 가을이었다. 그날, 붉은 물결로 뒤덮인 공룡능선을 지나며 마주한 핏빛 단풍의 짙고 진한 붉은빛은 손에 잡힐 듯 아직도 눈에 선하다.

젊은 혈기를 주체 못해 엉덩이에 뿔 난 못된 송아지처럼 이리저리 날뛰던 20대 중반 아들이 나이 50을 넘긴 중년의 아버지와의 동행은 딱히 신날 일은 아니려니와 그날의 산행은 유별나게 길고 지루하고 답답했다. 가끔씩 고개를 들어 능선 저쪽 먼 하늘을 바라보는 선친의 표정은 어두웠고 긴 시간 산행이 이어지는 내내 침묵으로 일관하셨다. 그 이유를, 난 짐작도 못하고 있었거니와 산행이 끝나고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당시 그 언론사에 새로 취임한 사장과 아버지의 갈등 때문이라는 것을.

이제 와 돌이켜보건대, 산행을 하며 선친은 나름의 결정을 하셨던 듯하다. 저편 산등성을 응시하던 아버지의 두 눈엔 결기가 서려 있었고, 이윽고 늦가을 새벽이슬처럼 처연한 눈물 한 방울이 흘러내렸다. 아버지는 감추고자 하셨으나, 아뿔싸 그만 나는 아버지의 눈물을 보고야 말았던 것이고, 이후 이어진 설악산 산행은 견디기 힘든 갑갑함과 지독한 어색함의 연속이었다.

지금으로선 당시 산행이 어떻게 마무리되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귀경 후 나는 아버지의 사직에 따른 절차를, 역시 당시 그 언론사에 근무했던 작은 이모부를 통해, 아버지 대신 마무리했다. 아버지는 그 언론사가 있는 쪽은 얼씬도 하기 싫다고 하셨고, 실제로 향후 한참 동안은 함께 근무했던 동료 기자분들과의 만남도 꺼리셨다.

오늘, 설악산의 한 능선을 오르며 그 당시 아버지의 쓰리고 막막했을 심정을 돌이켜 헤아려본다. 한평생을 지탱해온 자존감과 어쨌거나 한 집안의 생활을 책임져야 했던 가장이자 4남매의 아버지로서 가져야만 했던 현실이라는 선택지를 앞에 두고 행했던 근 10시간 가까운 산행 과정은 아버지에게는, 내게는, 우리 가족에게는 무엇이었을까?

하지만 마침내 아버지는 현실과의 타협 대신 자신의 자존감을 지키는 데 표를 던졌고, 삶의 마지막까지 당신 뜻대로, 고집대로, 느끼고 생각하고 사시다 가셨다. 그리고 아버지의 자존감을 밑거름 삼아 살아온 나는 지금 여기 설악산에 홀로 서 있다. 문득 눈을 들어 저쪽 먼 하늘을 바라보노라니, 오늘따라 유독 먼저 가신 아버지가 사무치게 그립다.

이우용(동반성장위원회 전 홍보실장)

‘그립습니다 · 자랑합니다 · 미안합니다’ 사연 이렇게 보내주세요

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 이메일 : phs2000@munhwa.com  △ 카카오톡 : 채팅창에서 ‘돋보기’ 클릭 후 ‘문화일보’를 검색. 이후 ‘채팅하기’를 눌러 사연 전송 
△ QR코드 : 독자면 QR코드를 찍으면 문화일보 카카오톡 창으로 자동 연결 
△ 전화 : 02-3701-5261
▨ 사연 채택 시 사은품 드립니다.
채택된 사연에 대해서는 소정(원고지 1장당 5000원 상당)의 사은품(스타벅스 기프티콘)을 휴대전화로 전송해 드립니다.
주요뉴스
기사댓글
AD
count
AD
AD
AD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