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윤석열과 2년 전 윤석열[이철호의 시론]

  • 문화일보
  • 입력 2023-10-16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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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호 논설고문

국회 식당 찾아가 야당 만나고
중도 확장하겠다던 대선 약속
실제로는 대결과 배척의 정치

“선거 패인 그대로 분석해 달라”
이번 참패 국정 변곡점 삼으면
내년 총선 오히려 야당에 악몽


국민의힘 지도부가 서울 강서구를 현역 국회의원 3명 모두 민주당이라며 ‘험지’라 우기는 것은 뻔한 출구전략이다. 17%포인트 참패와 민심 이반을 가리려는 핑계일 뿐이다. 강서구는 김성태 전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2008년 18대부터 내리 3선을 한 곳이다. 그것도 각각 민주당의 현직 구청장, 호남 3선 중진, ‘문재인의 호위무사’를 제압했다. 강서구가 험지라면 국민의힘에는 영남 빼고 전국이 ‘사지(死地)’다.

여당이 ‘수도권 위기론’을 부인하기 어려운 것은 김남국 코인 사태, 송영길 돈 봉투 사건 등 악재가 넘쳐나는 민주당에도 밀렸기 때문이다. 안철수·나경원 등 정치 자산을 총동원했는데도 참패했다. 아무 소용이 없었다. 이대로 가면 내년 총선에서 ‘국민의힘 103석’은 마지노선이 아니라 ‘희망 의석’이 될지 모른다. 여당은 임명직 친윤·영남 당직자들을 사퇴시키고 온갖 위원회와 기획단을 띄우는 수습에 나섰지만 별 메아리가 없다. 그 이유는 따로 있다. 전설적 미국 대선 표어를 빌리자면 딱 한마디로 상징된다. “바보야, 문제는 대통령이야.”

꼭 2년 전인 2021년 11월 당시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거대 야당 인사가 청와대에 올 수 없다고 하면 내가 밖으로 찾아가 만나겠다. 국회의사당 식당도 좋다.” “내가 당원투표에서 홍준표 후보에게 23%포인트 정도 이겼고 여론조사에선 10%포인트 졌다. 이런 격차를 줄여나가기 위해 중도 확장에 나서겠다.” 돌아보면 아찔한 거리감이다. 지금 윤 대통령과 2년 전 윤 후보는 같은 인물, 전혀 다른 느낌이다.

우리 사회는 문재인 전 대통령에게서 다중(多重)인격의 해악을 집단 경험한 적이 있다. 그는 취임사에서 “주요 사안은 대통령이 직접 언론에 브리핑하겠다” “불가능한 일을 하겠다고 큰소리치지 않겠다” “잘못한 일은 잘못했다고 말씀드리겠다”고 했지만 말짱 거짓말이었다. 딱 하나, 지킨 약속이라면 부동산 실패·소득주도성장·탈원전으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것뿐이다. 쓰라린 배신이었다.

이런 해리성 장애 트라우마 때문에 2년 전 누구도 윤 후보의 약속을 선뜻 믿지 못하는 분위기였다. 실제로 윤 대통령도 변했다. 집권 1년 반은 ‘대결 정치’로 기억된다. 상대를 적(敵)으로 규정해 거칠게 몰아붙였고, 국회 식당을 찾아 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만나지도 않았다. 당내에서도 의견이 다른 정치세력은 ‘내부 총질’이라며 제거 대상으로 삼았다. 이준석 전 당 대표는 당규까지 바꿔 윤리위를 통해 쫓아냈다. ‘당원 100% 투표’로 당헌을 개정해 유승민·나경원·안철수를 차례차례 제거했다. 포용의 자리를 ‘배척’이 대신했다.

이번 참패도 ‘합치면 이기고 쪼개지면 진다’는 선거 불변의 법칙을 재확인시켜줄 뿐이다. 역대 정권 치고 야당의 공격에 의해 지지율 급락이나 위기를 맞은 적은 없다. 항상 승리를 만들어준 선거 연합을 스스로 해체하면서 위기를 자초했다. 이준석을 포용한다고 내년 총선에 이긴다는 보장은 없지만, 그를 끌어안지 못하면 패배할 게 분명해지고 있다. 대체재였던 김병민·장예찬 최고위원은 2030 유권자를 잡지 못했다.

“국민의힘 문제는 영남권 관점으로 수도권을 본다는 것”(윤상현 의원) “대통령 얼굴만 쳐다보고 사는 여당”(김종인 전 비대위원장) “윤 정부가 너무 이념형으로 간다”(안철수 의원)…줄줄이 쏟아지는 해법들이다. 문제는 윤 대통령이 국정 운영 방식을 확 바꿀지 누구도 자신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그나마 이명박·노무현 대통령도 지지율 바닥에서 중도·실용으로 방향을 틀면서 국정 동력을 회복했던 기억이 남아있다. 민주당은 이 대표 구속 영장 기각으로 사법리스크가 지연됐을 뿐, 해소된 게 아니다.

내년 총선 향방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진짜 구도는 지금의 윤 대통령과 2년 전 윤석열 후보와의 대결일지 모른다. 이번 참패를 국정 변곡점으로 삼을지가 변수다. ‘차분하고 지혜로운 변화’는 지혜로운 처방이 아니다. 2년 전 승리의 방정식으로 돌아가는 게 중요하다. 윤 대통령이 내부를 포용하고 중도·수도권·청년층을 중시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꾸면 민주당에는 그야말로 악몽이다. 중도의 시간이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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