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은 이재명 생각하지 마[이현종의 시론]

  • 문화일보
  • 입력 2023-10-18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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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종 논설위원

세리머니 하다 1등 놓친 선수
정치도 오만하면 반드시 패배
여권은 마치 강자처럼 행동해

李는 지팡이 짚고 약자인척 쇼
회초리 맞고도 그대로인 與
총선까지 6개월 민생 챙겨야


항저우아시안게임에 참가한 롤러스케이트 한국 대표팀은 선두로 달리다가 결승선 코앞에서 성급하게 우승 세리머니를 하다 뒤따라 오던 대만팀에 0.01초 차이로 금메달을 놓쳤다. 끝까지 방심하지 말고 최선을 다해야 하는데 한순간 실수로 메달 색깔이 바뀌었다. 발을 뻗어 우승을 차지한 대만 선수는 “그들이 세리머니를 하고 있을 때 나는 계속 싸우고 있었다”고 의미 있는 소감을 밝혔다. 그런데 당시 우승했던 대만의 황위린 선수는 지난 13일 대만 전국체전 경기에서 자신이 우승 세리머리를 하는 바람에 뒤따라 오던 선수에게 1위를 내줬다. 아시안게임에서 자신과 똑같은 행동을 한 선수에게 역전패를 당한 것이다. 체험으로 확인한 교훈을 금방 잊어버린 셈이다.

스포츠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을 보면 정치판과 똑같다. 오만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정치인에게 유권자들이 표를 던지는 것과 닮았다.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패배는 이미 김태우 후보를 공천할 때부터 결과는 예정됐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 오거돈 전 부산시장이 성 추문으로 물러나면서 2021년 4월 7일 치러진 보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은 자신들의 귀책사유로 실시되는 재·보선에는 후보를 내지 않는다는 당헌·당규를 당원투표를 통해 개정, 무리하게 후보를 냈다가 대패했다. 이후 민주당은 선거에 연전연패했다. 이런 과거를 모를 리 없는 국민의힘은 김태우 전 구청장의 대법원 확정판결로 열린 보선에 김 전 구청장을 무리하게 사면·복권해 출마시켰다. 성 비위와 공익제보는 다르다고 강변했지만, 결론적으로 강서구 유권자를 우습게 본 것이다. 불과 얼마 전 상대가 했던 일을 그대로 답습할 정도로 망각의 힘은 강하다.

국민의힘은 지난 대선에서 0.73%포인트의 근소한 차이로 정권을 가져와 놓고 금방 이런 사실을 잊었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 이후 자신들이 ‘소수 여당’이라는 사실을 망각한 것이다. 이번 강서구청장 선거의 구호도 ‘힘 있는 여당 후보’였다. 대통령과 바로 전화할 수 있는 핫라인이 있는 구청장이라는 사실을 부각했다. 그러나 유권자는 국민의힘이 스스로 법안 통과 하나 못 하고 대법원장 후보자도 가결 못 하는 ‘힘없는 여당’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러면 국민에게 이런 점을 호소하고 다시 힘을 달라고 했어야 마땅하다. 반면, 압도적 의석으로 폭주하던 민주당의 이재명 대표는 24일간 단식하고 지팡이를 짚고 법원에 출석하는 약자 코스프레를 했다. 이 대표의 영리한 이미지 연출에 속수무책으로 당한 것이다.

국민의힘은 이 대표가 구속되면 모든 일이 다 될 듯이 당력을 집중했다. 이 대표만 구속되면 총선 승리는 따놓은 당상이라고 판단한 듯하다. 그러다 법원이 이해하기 어려운 법리이기는 하지만 영장을 기각하자 스텝이 급속히 꼬이기 시작했다. 이 대표 사법 리스크에 기대어 그럭저럭 버텨 가던 여권이 우왕좌왕하면서 갈피를 못 잡고 있다. 영남 일색의 지도부가 선거 전략을 짜니 정치적 험지의 분위기와는 맞지 않았다. 차출된 의원들은 선거 운동 시늉만 하고 SNS에 올리는 인증 샷만 찍었다.

이 대표는 이제 3개 사건이 기소돼 일주일 내내 재판을 받아야 할 처지다. 검찰의 시간을 지나 ‘법원의 시간’이다. 지루하지만, 이 대표의 정치적 운명은 법원에서 결정될 수밖에 없다. 이제 여당의 상대는 이재명이 아니라 내부의 적이다. “송파구청장 선거였으면 이겼을 것” “윤 대통령 잘하고 계신다”와 같은 중증(重症) 민심 불감증이다. 수도권에 집중하겠다고 해 놓고, 또 경북 출신 사무총장(이만희 의원)을 임명하는 무신경에 놀랄 뿐이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자신의 지역구(영천시장) 선거도 무소속에 뺏긴 인물이 전국 선거를 지휘한다는 것은 패배하기로 작정한 듯하다. 김기현 대표는 “내년 총선에 패배하면 정계 은퇴를 할 것”이라고 하는데 그의 정계 은퇴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다. 죽느냐 사느냐의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오직 자신만 공천받고 당선되면 된다는 안이함을 버리지 못하면 ‘강서구 선거의 전국화’가 이뤄질 게 뻔하다. 민생을 살려야 하는 윤 정권에 주어진 시간은 불과 6개월뿐이다. 조지 레이코프의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라는 말처럼 이재명을 생각하지 말고 오직 민생에 집중하는 게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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