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든 사랑해주던 친구… 이젠 자신을 사랑해줄 세상으로 갔길[그립습니다]

  • 문화일보
  • 입력 2023-10-19 09:04
  • 업데이트 2023-10-19 09:08
프린트

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내 친구 희윤은 어떤 사람이든 소외되지 않고 서로 사랑을 나누는 세상을 꿈꿨다. 게티이미지뱅크



■ 그립습니다 - 김이희윤(1999∼2021)

“더럽지 않아요, 성소수자는.” 희윤이 생전 SNS에 마지막으로 남긴 글이다. 그는 연세대학교 성소수자 동아리 ‘컴투게더’의 회장이었고 서울퀴어문화축제에서 조직위원회 활동 등의 화려한 활동 이력이 있는 사람이다. 그는 사람들을 좋아했고 사람들을 위해 나서는 것을 좋아했다. 사람을 좋아했기에 사람이 사는 세상이 나아지길 진정으로 바라는 사람이었다.

희윤과 내가 인연을 맺은 계기는 특이했다. 그와 나는 SNS에서 같은 관심사를 이야기하다가 친구가 됐다. 그와 나는 슈퍼주니어를 좋아했고, 사회의 여러 인권 이슈에 관심이 있어서 그와 친구가 되는 건 쉬웠다. 서로 개인 메시지로 여성학이나 사회학 도서 따위를 추천하고 이야기를 주고받고는 했다. 그리고 그는 정말 인정이 지나치게 많은 친구였다. 그는 대학에 입학하기 전 일본에 살았는데, 일본에 살 때도 한국에서의 내가 힘들어하니 국제특송으로 일본의 과자들을 주며 이상한 사람들의 시선에 상처받지 말라는 따뜻한 편지를 보내줬다. 희윤은 인터넷에서 만난 사람에게도 쉽게 정을 주는 사람이었다. 실제로 슈퍼주니어 콘서트 때 처음으로 대면 만남을 진행했고, 나를 원래 한솥밥을 먹던 친구처럼 대해줬다.

그러나 그와 나는 공통점보다 차이점이 더욱 많았다. 나는 인권에 관해 이야기하는 책을 혼자 읽고 나만의 독서장에 기록하는 소시민적 삶에 그쳤다면, 그는 현장을 발로 뛰는 타입이었다. 그는 장애인 이동권 집회, 여성단체의 낙태죄 반대 운동, 성소수자 권리 증진 행동에 항상 참여했으며 시위의 선봉장에 있는 행동파였다. 글만 읽고 세상을 비관하는 것에만 그치는 무력한 나로서는 그를 이해 못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럼에도 나와 그는 여전히 친구였고, 그는 나처럼 다른 생각을 가진 이와도 어울려 사는 사람이었다. 그는 세상에 다양한 생각의 사람이 살 수 있으며 이 다양한 사람들이 같이 공존하는 것을 최대 가치로 삼았으니, 그의 친구들 또한 독특하고 이상한 사람들로 넘쳤다. 따뜻한 희윤에게는 사회에서 소외당하는 장애인, 성 노동자, 성소수자 등이 똑같은 친구였으니까 희한한 일은 아니다.

아무튼 희윤은 사회 다수의 비난이 아무렇지 않다는 듯, 주류에서 벗어난 이들의 목소리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뛰어갔다. 그냥 사람들이 ‘더럽다’라거나 ‘사라지라’고 말하는 비정상적 인간들에게 스피커를 쥐여줄 수 있다면 활동 단체의 깃발을 들고 행진하거나 독특한 헤어스타일과 의상으로 행인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희윤은 다수의 이상한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듯 보였으며, 자신이 움직이면 결국 사회도 약자에게 손을 내밀 것을 믿었다. 슈퍼주니어의 ‘2YA2YAO’ 중의 가사인 ‘이상한 시선도 가끔씩은 좋은 것 같아’를 SNS의 상태 메시지로 설정할 만큼 사람들이 칼을 꽂아도 상처를 안 받는 듯 보였으니까.

그러나 단단한 돌도 발에 계속 채면 가루가 되더라. 사회적 약자가 차별받지 않도록 차별금지법을 제정하자는 청원에 10만 명이 동의를 하기 바로 직전, 희윤은 눈을 감았다. 그가 세상을 뜬 당시, 나는 내 SNS 계정을 삭제해 그가 세상을 떴다는 소식도 접하지 못했다. 뒤늦게서야 그가 사랑했던 이상한 사람들이 그를 기리고 있는 모습을 보고 나서야 그의 죽음을 알게 됐다. 랜선 관계라 왜 그가 긴 여행을 시작했는지는 모른다. 그럼에도 나는 세상을 사랑한 그에게 세상은 보답하지 않았음을 안다. 사람을 사랑해 세상을 바꾸려는 그에게 세상은 사랑으로 보답해 주지 않았다.

그가 떠난 지 2년가량 지난 지금, 세상은 여전히 사회적 약자에게 매섭다. 성소수자는 여전히 더럽고 그들의 축제는 광장 사용을 불허받기도 했다. 그의 떠남이 무색하게 세상은 바뀐 것이 없어 그를 그리워할 명목이 없다. 언젠간 그의 말대로, 세상이 소수자를 더럽지 않다고 인식할 수 있는 날에야 그를 제대로 기릴 수 있을 것 같다. 그가 베푼 사랑을 세상이 보답하길, 그저 그를 그리워해도 부끄럽지 않을 세상을 그려보고 싶다. 누구든 사랑해주던 그가, 이제는 그를 사랑해주는 세계로 갔길 빈다.

소시민 ‘푸른솔’(대학생)

‘그립습니다 · 자랑합니다 · 미안합니다’ 사연 이렇게 보내주세요

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 이메일 : phs2000@munhwa.com  △ 카카오톡 : 채팅창에서 ‘돋보기’ 클릭 후 ‘문화일보’를 검색. 이후 ‘채팅하기’를 눌러 사연 전송 
△ QR코드 : 독자면 QR코드를 찍으면 문화일보 카카오톡 창으로 자동 연결 
△ 전화 : 02-3701-5261
▨ 사연 채택 시 사은품 드립니다.
채택된 사연에 대해서는 소정(원고지 1장당 5000원 상당)의 사은품(스타벅스 기프티콘)을 휴대전화로 전송해 드립니다.
주요뉴스
기사댓글
AD
count
AD
AD
AD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