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프로야구 전설’ 장훈 은퇴… 깨지지 않는 ‘3000안타’[역사 속의 This week]

  • 문화일보
  • 입력 2023-10-30 09:08
  • 업데이트 2023-10-30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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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일본 프로야구에서 유일하게 3000안타를 기록한 재일한국인 장훈 씨가 지난 2018년 서울에서 열린 소장품 기증식에서 요미우리 자이언츠 유니폼을 입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연합뉴스



■ 역사 속의 This week

‘안타제조기’로 불리며 1960∼1970년대 일본에서 최고의 타자로 활약한 재일교포 장훈(일본명 하리모토 이사오·83). 20여 년 동안 2752경기에 출전해 통산 타율 0.319, 3085안타, 504홈런, 319도루라는 신화를 써 내려간 그는 1981년 10월 31일 은퇴를 발표했다. 그가 세운 3000안타 기록은 일본 프로야구에서 아직도 깨지지 않았다.

장훈은 1940년 히로시마(廣島)에서 태어났다. 네 살 때 후진하는 트럭에 부딪히면서 오른손이 모닥불 속으로 들어가 약지와 새끼손가락이 붙어버렸다. 이듬해인 1945년 8월에는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떨어져 큰누이가 목숨을 잃었고, 장훈과 가족들은 피폭자가 됐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처음 접한 야구는 지독한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한 유일한 희망이었다. 오른손잡이였으나 장애로 인해 왼손잡이로 바꾸고 굳은 손바닥에서 피가 날 정도로 타이어에 배트를 휘둘렀다. 고교 3학년 때 프로야구팀 도에이 플라이어즈에서 입단 제의가 들어왔다. 구단주는 양자 입양을 제안했다. 당시 한 팀에 외국인 선수를 2명으로 제한했는데 이미 2명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단호했다. “조국을 팔면서까지 야구 선수가 될 필요 없다.” 결국 구단은 새 규정을 만들어 그를 영입했다.

프로야구에 데뷔한 1959년 19세로 최연소 4번 타자가 돼 신인왕을 차지했고, 이후 7차례 수위타자에 등극했다. 1976년 요미우리 자이언츠로 이적해 왕정치(오 사다하루)와 ‘O-H포’를 형성하며 팀에 우승컵을 안겼다. 그러나 3000안타까지 39개 남겨두고 롯데 오리온스로 트레이드됐다. 일본 야구의 자존심 요미우리에서 한국인이 대기록을 달성하는 것을 원치 않았던 것이다.

1980년에 홈런으로 장식한 3000안타는 뼈를 깎는 노력으로 이뤄낸 결과였다. 야구를 하기 힘든 자신의 오른손을 사람들에게 보여준 건 은퇴한 후였다. 그라운드를 떠나서는 우리나라 프로야구 탄생과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그는 한국프로야구가 출범했을 때가 1990년 일본 프로야구 명예의 전당에 올랐을 때보다 더 기뻤다고 했다. 배트 대신 마이크를 잡고 팔순의 나이까지 일본 방송에서 야구 평론가로도 활동했다.

일본 프로야구의 전설 장훈은 여러 차례 귀화 제의를 받았지만, 끝까지 대한민국 국적을 지켰다. 그는 한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얘기했다. “한·일 친선 고교야구 출전으로 한국에 처음 왔을 때 공항에서 사람들이 아리랑을 부르는데 가슴이 찡했습니다. 국적은 종이 하나로 바꿀 수 있지만, 민족의 피는 바꿀 수 없습니다.”

김지은 기자 kimjieun@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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