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몰락한 집안서… 6남매 억척같이 키우신 어머니[그립습니다]

  • 문화일보
  • 입력 2023-11-02 09:20
  • 업데이트 2023-11-02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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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1988년 어머니가 손주 운동회 날에 도시락을 싸 들고 가셨다가 포즈를 취하셨다. 살포시 웃는 어머니 모습을 보니 나는 그리움으로 눈물이 난다.



■ 그립습니다 - 장말희(1925∼2019)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아흔넷 춘추에 연명치료 들어간 지 6년 만이다.

장례식날 형제 가족이 다 모여서 어머니를 보내드리는데 만감이 교차했다. 큰 올케를 비롯한 형제들의 애씀이 커서 속히 돌아가시기를 기다렸던 내 마음도 몹시 송구했다. 승화원에서 유골함을 받아들고서야 눈물이 앞을 가렸다.

어머니는 유달리 책을 좋아하셨다. 일제강점기의 소학교 땐 남학생들을 제치고 일등을 도맡아 하셨다 한다.

그즈음 가산이 제법 넉넉하여 머슴을 둘이나 거느렸던 할아버지는 2대 독자 외아들의 혼처를 찾는 중이셨다. 할아버지의 소원은 단 하나, 자손이 번성하는 것이다. 간신히 아들 하나를 얻어 장중보옥(掌中寶玉)으로 길러 공부시키고 손주를 보기 위해 혼사를 서둘렀다.

매파를 놓아 두루 알아보았더니 건넛마을 장씨댁에 참한 처녀가 있다는 말을 들으셨다. 무엇보다 자손이 번성한 게 욕심이 났다.

하루는 할아버지의 꿈에 그 처녀가 꽃가마를 타고 대문을 들어오더니 나붓이 절을 하는 게 아닌가. 할아버지는 하늘의 계시라 생각하셨다. 살구꽃 만발하던 봄날, 어머니는 가마를 타고 조씨 가문에 시집을 왔다.

혼인한 후 어머니는 아들 다섯에 딸 하나를 낳았으니 할아버지의 소원은 이루어진 셈이다. 할아버지는 손주들을 끔찍이 사랑하셨다.

어머니는 저녁마다 팔베개하고 어린 나와 동생들에게 동화를 들려주셨다. 나는 그 시간이 참 행복했다.

그런데 집안이 갑자기 몰락하게 되었다. 아버지가 사업을 하다 크게 실패한 것이다. 가을이면 노적가리가 산처럼 쌓이던 우리 집 마당엔 감나무 붉은 잎새들만 쓸쓸히 뒹굴었다.

큰오빠는 명문대에 합격했지만, 등록금을 마련할 길이 없었다. 할아버지는 선산의 땅을 매각하러 아버지를 보내셨고 우리는 학처럼 목을 늘인 채 아버지를 기다렸다. 그러나 아버지는 돌아오지 않았다.

아버지를 포기한 어머니는 억척같이 일하셨다. 닭도 키우고 비누도 만들고 홀치기에도 매달렸다. 홀치기는 흰 비단에 찍힌 점들을 실로 옭아매는 일이었다. 딸그락딸그락, 잠결에도 나는 그 소리를 들었다. 참 가슴 아린 소리였다. 어머니는 자식들을 공부시키려고 몸부림을 치셨다.

세월이 흘러 자식들은 결혼하고 손주들이 대가를 이루었다. 의사, 박사, 선생님도 나왔고 대기업에도 진출했다. 딸자식이 시인이 되고 첫 시집을 내자 무척이나 기꺼워하셨는데 어머니는 연명치료로 간신히 숨결만 유지하다 이승을 하직하신 것이다.

어머니의 웃는 사진을 보노라니 눈물이 핑 돈다. 한줄기 시린 그리움이 마음 갈피 적시며 조용히 흘러갔다.

조은설(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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