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리역서 화약운송 열차 폭발… 사상자만 1400명 人災[역사 속의 This week]

  • 문화일보
  • 입력 2023-11-06 09:00
  • 업데이트 2023-11-06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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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1977년 11월 11일 화약류를 실은 화물열차가 폭발해 일어난 ‘이리역 폭발사고’로 폐허가 된 이리역(현 익산역) 일대 모습. 연합뉴스



■ 역사 속의 This week

1977년 11월 11일 밤 9시 15분. TV에서는 한국 대 이란의 월드컵 예선전이 중계되고 있던 그때, ‘쾅! 쾅! 쾅!’ 15초 간격으로 천지를 뒤흔드는 세 번의 폭발음과 함께 거대한 불기둥이 전북 이리역(현 익산역)에서 솟아올랐다. 건물 천장이 무너지고 유리창이 깨지면서 파편이 날아들었다. 익산역 주변은 순식간에 아비규환이 됐다.

놀란 이리 시민들은 전쟁이 난 줄 알았지만, 이리역에 정차 중이던 다이너마이트와 전기 뇌관 등 40t에 달하는 고성능 폭발물이 실린 화물열차가 폭발해 발생한 사고였다. 30㎞ 떨어진 전주까지도 폭음이 들렸고, 이리역에는 지름 30m, 깊이 10m의 커다란 웅덩이가 생겼는가 하면 열차 파편이 700m까지 날아가 가옥을 부술 정도로 강력한 폭발이었다. 59명이 사망하고 1343명이 다쳤으며 1674세대, 7873명에 달하는 이재민이 천막에서 추운 겨울을 나야 했다. 국내 최대 대형 폭발사고였다.

인천에서 출발해 광주로 가던 화약운송 열차가 이리역에 도착한 것은 사고 전날인 10일 밤이었다. 원래 화약류 같은 위험물은 곧바로 통과시켜야 하는데 철도 직원들이 당시 관행적으로 이뤄지던 급행료를 요구하며 20시간 넘게 열차를 붙들어뒀다.

대기가 길어지자 호송원은 술을 마신 뒤 화물칸에서 양초를 켠 채 잠이 들어버렸다. 촛불이 화약 상자에 옮아 붙자 호송원은 “불이야!”를 외치며 뛰쳐나갔고, 근처에 있던 철도 검수원들은 불이 난 곳으로 달려왔다. 이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필사적으로 모래를 뿌리며 진화하려 했지만, 화차는 결국 대폭발을 일으켰다.

참사의 와중에도 구명의 용기를 보여준 이들이 있었다. 폭발에 정신을 잃었다가 깨어난 역무원 송석준 씨는 1㎞를 내달려 역으로 들어오는 특급열차를 향해 옷을 흔들어 긴급 정차시킴으로써 승객 600여 명을 구했다. 이리역 가까이에 있던 삼남극장에서 공연을 하던 가수 하춘화의 목숨을 구한 사람은 코미디언 고(故) 이주일이었다. 당시 무명의 진행자였던 그가 극장이 무너져내려 의식을 잃고 쓰러진 하춘화를 업고 병원으로 뛰어가 살려낸 이야기는 유명하다.

이리역 폭발 참사는 안전 불감증과 부정부패가 빚은 인재였다. 당시 복구비용으로만 200억 원이 넘게 투입됐고, 2년간의 복구 작업을 통해 이리시는 처참했던 모습과 아픔을 딛고 새롭게 탈바꿈했다. 1995년 익산군과 통합하면서 ‘이리’라는 지명은 사라졌고 ‘익산시’로 바뀌었다. 철도 교통요충지로 2004년 KTX가 개통된 익산역에는 이리역 폭발사고를 기억하고 희생자를 기리기 위한 추모탑이 세워져 있다.

김지은 기자 kimjieun@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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