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요한이 불러온 나비효과[이현종의 시론]

  • 문화일보
  • 입력 2023-11-10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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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종 논설위원

의사 출신 정치 초년생의 도발
메시지 쉽고 핵심 정확히 찔러
상대에 대한 칭찬과 유머 신선

전국 종횡무진하고 실천 빨라
구체적인 성과가 나와야 성공
투쟁적 정치문화 바꾸는 계기


브라질에 있는 나비의 날갯짓이 대기에 영향을 주고, 이것이 커져 미국 텍사스에 토네이도를 발생시킬 수도 있다는 이론을 ‘나비효과’라고 한다. 나비의 날갯짓 같은 작은 움직임이지만, 큰 사회적 변화를 몰고 올 수 있다는 의미인데 많은 사례가 있다.

의사 출신의 정치 초년생인 인요한 국민의힘 혁신위원장이 지난달 23일 임명되고 3주째인데도 매일 그의 일거수일투족이 언론을 장식하고 있다. 역대 어느 혁신·비대위원장에서 볼 수 없었던 파급력이다. 광주·부산·대구·제주 등 워낙 행보가 광폭이어서 담당 기자들이 애를 먹고 있다고 한다. 혁신위원회가 발족하기 전 결국 얼마 못 가 흐지부지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지만, 지금은 정반대다. ‘김은경 혁신위’ 실패 경험이 있는 민주당은 인 위원장이 등장하고부터 뉴스 중심에서 사라지면서 속수무책이다. 다시 탄핵 정국으로 회귀시켜 주도권을 잡고 싶겠지만, 여론의 반응은 싸늘하다.

겉모습은 미국인이지만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를 쓰는 영락없는 한국 사람인 인 위원장이 정치 고단수들이 해내기 어려운 일을 현재까지는 성공적으로 하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인 위원장이 몰고 온 나비효과가 단지 국민의힘에 한정되지 않고 더 커질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진흙탕 같은 여의도 정치권에서 인 위원장이 이렇게 주목받는 비결은 뭘까.

우선, 당 대표, 중진 의원들도 어려워하는 메시지 발신 능력이 탁월하다. 정치를 처음 해보는 인 위원장이 원고 하나 보지 않고 말을 하는데 귀에 쏙쏙 들어올 정도로 쉬우면서도 강한 인상을 남기고 있다. 취임 일성으로 고 이건희 삼성 회장의 말을 인용해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라”고 일갈했는데 말로만 그치지 않았다. 자신을 임명한 김기현 대표와 영남 중진 주호영 전 원내대표를 겨냥, ‘영남 스타’는 수도권으로 오라고 직격했다. “국민의힘에서 전라도 출신 대통령을 만들겠다”는 그의 발언에 앞으로 여당이 나아가야 할 ‘통합’의 목표를 명확히 담고 있다. 말이 쉬우면서도 전하고자 하는 뜻은 분명하다.

둘째, 우리 정치인들에게 부족한 유머와 상대방 칭찬이 풍부하다. 이준석 전 대표를 만나기 위해 부산을 찾아갔지만, 이 전 대표가 면전에서 영어로 말하는 것을 듣고 기분이 많이 상했을 법도 하다. 그런데도 “이 전 대표가 나보다 영어를 더 잘한다”고 웃어넘겼다. 이 전 대표가 “환자는 서울에 있다”며 윤석열 대통령과 ‘윤핵관’을 겨냥하자, 그는 “내가 의사여서 환자는 더 잘 안다. 환자는 부산에 있다”고 응수했다. 유승민 전 의원을 만나서는 ‘코리아 젠틀맨’ ‘애국자’라고 치켜세웠고, 홍준표 대구시장에게는 “귀여우시다. 유머가 너무 좋다”고 칭찬했다. 이 전 대표에게 그렇게 수모를 당하고도 “계속 만남을 요청하겠다”고 한다.

셋째, 놀라운 실천력이다. 자신의 임명 소식을 듣고 “국민의힘이 타락했다”는 혹평을 한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도 찾아가 칭찬했다. 매일 2∼3군데 언론과 인터뷰를 하고 광주·대구 등을 종횡무진하고 있다. 이 전 대표를 만나기 위해 그의 아버지에게도 연락할 정도로 열정적이다. 매일 당 중진들에게 전화를 걸어 ‘용단’을 촉구하고 있다.

아직 구체적인 성과가 나오기에는 시간이 더 필요해 보인다. 하지만 인 위원장의 행보가 정치권에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민주당이 인 위원장의 약점을 캐기 위해 그의 고향인 순천과 직장인 세브란스병원 측을 뒤졌지만, 별 성과가 없었다고 한다. 이젠 인 위원장의 혁신 바람이 민주당으로 넘어오지 않을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민주당의 이원욱·김두관 의원은 인 위원장이 던진 ‘험지 출마’를 이재명 대표에게 요구하고 있다.

인 위원장의 언행은 상대방을 공격하기에 여념이 없는 정치권에 상대를 칭찬하는 문화를 이식하고 있다. 상대방 모욕 주기, 비틀기 등으로 ‘여의도 금쪽이’라는 별명이 붙은 이준석 전 대표의 ‘영어 사건’이 여론의 뭇매를 맞는 것이 상징적이다. 내달 끝나는 인 위원장의 혁신이 성과를 내고 해피 엔딩이 될지는 아직 미지수이지만, 모처럼 국민에게 정치를 지켜보는 재미를 주고 있다. 인요한의 날갯짓이 여의도 정치권을 흔드는 태풍이 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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