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년前 25세 여기자, ‘72일 세계일주’ 도전… 편견 깨다[역사 속의 This week]

  • 문화일보
  • 입력 2023-11-13 09:11
  • 업데이트 2023-11-13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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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여성 기자가 드물던 시절 탐사 보도의 새 장을 열고, 1890년 1월 세계 일주에 성공한 넬리 블라이의 모습. 자료사진



■ 역사 속의 This week

130여 년 전, 미국의 25세 신문사 여기자 넬리 블라이는 쥘 베른의 소설 ‘80일간의 세계 일주’의 주인공보다 더 빨리 지구를 한 바퀴 돌겠다는 기획 취재를 제안한다. 회사는 처음엔 여자가 하기 어려운 일이라며 반대했다. “그럼 남자를 보내세요. 난 같은 날 다른 신문사 대표로 출발해 그 남자보다 반드시 먼저 돌아올 테니.” 결국 그는 1889년 11월 14일 세계 일주를 시작했다.

본명이 엘리자베스 제인 코크런인 그는 1864년 펜실베이니아주 시골 마을에서 태어났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정규 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글솜씨가 좋았다. 1885년 피츠버그 디스패치에 실린 ‘여자아이가 무슨 쓸모가 있나(What Girls Are Good For)’라는 제목의 성차별적인 칼럼을 읽고 반박문을 신문사에 보냈다가 기자로 채용됐다.

‘넬리 블라이’라는 필명을 쓴 그는 1887년 정신병원 실태 르포 기사로 유명해졌다. 정신이상자로 위장해 뉴욕 블랙웰스섬 정신병원에 들어가 열흘간 머물며 열악한 환경과 환자 학대를 몸소 체험했다. 병원의 끔찍한 실태를 낱낱이 폭로한 취재기는 ‘뉴욕월드’의 1면을 장식하며 큰 반향을 일으켰다. 정신질환자를 위한 복지예산이 대폭 증액됐고, 그는 탐사 보도의 새 장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신문왕 조지프 퓰리처가 세운 뉴욕월드의 열혈기자 블라이의 다음 도전은 최단 기간 세계 일주였다. ‘오거스타 빅토리아호’를 타고 뉴욕을 출발, 영국을 거쳐 프랑스에서는 ‘80일간의 세계 일주’로 영감을 준 작가 베른을 만나 인터뷰했다. 이어 이집트 스리랑카, 홍콩, 중국, 일본 등을 거쳐 뉴욕으로 돌아왔다. 중간에 경쟁자까지 등장했지만, 예정보다 3일 앞당긴 72일 6시간 11분의 기록으로 완주에 성공했고, 여행기는 신문에 게재됐다. 여성 기자는 주로 패션, 요리 같은 기사를 쓰던 시절에 이룬 성취는 엄청난 화제를 불러일으키며 그는 단번에 세계적인 유명인사가 됐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50세의 나이에 여성으로는 유일하게 동부전선 종군기자로 전장에 뛰어들었다. 이후 미국으로 돌아와 칼럼니스트로 글을 썼고, 58세에 폐렴으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보육원에서 아이들을 돌보며 사회사업가로도 활동했다.

130여 년 전 시대의 편견을 깨고 짐가방 하나 들고 홀로 세계 여행을 떠났던 블라이는 자신 앞에 놓인 장벽을 이유로 도전을 망설이는 이들에게 이렇게 용기를 준다. “나는 항상 올바른 방향으로 제대로 힘을 쏟으면 불가능한 일이 없다고 생각해요. 진심으로 원한다면 할 수 있어요. 문제는, 당신이 그걸 원하느냐는 거죠.”

김지은 기자 kimjieun@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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